[전고필 터무니를 찾아서]고래 찾아 떠난 반구대행

백악기 공룡이 거닐었던 암반.
백악기 공룡이 거닐었던 암반.

울산의 장생포를 가야 하는 길이다. 한국문화원연합회의 어르신 문화프로그램 사회활동 지원사업이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어 현장을 돌아보고 프로그램 강사와 남구문화원 관계자, 참여자들과 진행상의 어려움과 향후 계획 등을 상의해야 하는 일이다. 

언제나 장생포로 가는 길은 즐거움이 가득했다. 꼭 무언가가 기다린다는 느낌, 아니 그곳이 나더러 오라고 손짓하는 느낌 같은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실 장생포라는 말에는 이 땅의 고래들에 대한 기억이 가득 베어 있는 탓이다. 제대로 고래의 몸짓을 본 적도 없으면서 그곳에 가면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언제나 나를 설레게 했다. 

지난 토요일에도 그러했다. 오전 10시에 만나기로 했고, 광주에서 출발하면 3시간 반이면 가니 여섯 시경에 출발하면 좀 여유롭게 도착하리란 계획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평소 같으면 5시쯤 뜨여져야 할 눈이 이날 따라 3시경에 번쩍 뜨였다. 다시 끄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어 주섬주섬 옷을 입고 길 위에 선다. 혹여 잠이 오면 가는 길 고속도로 휴게소 같은 곳에서 눈을 붙이면 될 터이니. 

날씨는 아래로 곤두박질하여 실외온도가 0도를 가리킨다. 아침과 낮의 온도차는 안개를 곳곳에 흐르게 만들어 석곡, 주암, 섬진강 지나 순천, 광양, 하동, 사천, 진주, 함안에도 그득하다. 여명이 터오는 창원쯤 지나니 차가 조금씩 늘어나지만, 평소 같진 않다. 상습 정체 구간일 정도로 이 길은 분주했다. 

반구 아래 새겨진 수많은 각자들.
반구 아래 새겨진 수많은 각자들.

한반도 고래의 시원마냥 각인

역시 새벽길이 좋긴 하다. 시간을 보니 울산에 너무 일찍 도달할 것 같고, 해찰할 무언가가 떠오른다. 그래 언제나처럼 밀린 원고를 쓰는 것이야. 무슨 버킷리스트같은 것이 아니고 내 잠재태 안에 꿈틀거리는 고래를 보고자 하는 열망까지 여기서 해결해 보는 것이 어떤가라는 생각으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차는 도착 예정지인 장생포의 새미골에서 울주 반구대로 방향을 바꾸어 주행하기 시작했다. 

사실 한반도 고래의 시원처럼 각인된 반구대 암각화를 아직 한 번도 찾아보지 못한 불경스러움에 대한 반성도 있었다. 러시아 바이칼 호수의 알혼섬은 수없이 얘기하면서도 정작 우리 역사의 시원과 같은 곳은 말하지 않는 일들이 너무 많은 세상을 나는 건너가고 있었던 것이다. 가끔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시리에게 부탁해 목적지를 변경하고 언양 지나 울주로 접어들었다. 한적한 국도와 지방도를 거쳐 산마루 넘어 신선골로 접어갔다.

차를 두고 걷는 길. 습지와 대숲이 예사롭지 않다. 인적도 없는 새벽 강가를 홀로 걷는 호사스러움은 날씨 따위가 건드릴 게재가 못 된다. 한 귀퉁이 돌 때마다 펼쳐지는 풍경의 면면들은 걸음의 진도를 더디게 했다. 이 공간에서 400여 편의 시와 겸재 정선의 반구라는 진경산수가 탄생되었음이 현실로 인정되는 순간이었다. 

자꾸 다가오라는 풍경의 유혹을 물리치고 주제에 충실하고자 찾은 반구대 암각화는 정작 관망 포인트에서 물리적 거리가 너무 멀었다. 직경으로도 300여 미터 정도는 더 들어가야 하고, 설사 들어가더라도 저 흐르는 강물이 또 차단하고 있는 곳이었다. 물론 지금은 갈수기라서 그렇지만 울산시민의 생명줄로 사용된 사연댐의 수위가 차게 되면 이때는 침수와 노출이 반복되는 비운의 생애를 가졌다. 

장생포 할머니의 고래 그림.
장생포 할머니의 고래 그림.

1965년 완공된 사연댐이 1971년 12월 25일에 발견된 이 유적의 운명을 좌지우지 하고 있는 형편이다.(사실 마을 주민들은 이곳에 호랑이 그림과 거북이 그림, 고래 그림이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위쪽의 천전리 각석에 환호하는 동국대 조사단에게 저 아래쪽에도 유사한 바위가 있다고 알려주면서 다음 해에 본격 조사 보고된 것이다. 수몰된 곳에도 이런 흔적이 있다는 주장이 아직도 존재한다). 

사연댐 수위 따라 침수·노출 반복

학계와 시민단체의 수많은 건의와 주장이 쉽사리 수용되지 않으며 풍전등화 같은 운명을 지닌 반구대 암각화 앞에 도달했지만 마주하진 못했다. 다행히 거치된 망원경이 있어 아침 이슬을 잔뜩 머금은 렌즈를 마스크로 닦고 눈을 대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고래는 내 눈앞으로 오지 않았고 손만 자꾸 곱아질 뿐이었다.

다시 잠깐 뒤로 물러 주위를 보니 암각화 전경을 담은 안내판과 사각의 모니터가 보였다. 일단 핸드폰에 안내판을 찍고 모니터처럼 생긴 곳으로 가니 디지털 확대경이었다. 서툰 조작법으로 이리저리 조정하다 보니 망원경보다 더 나아진 정경이 들어온다. 각진 사람의 모습. 사슴을 쫓는 호랑이. 그렇지만 그 곁에 있어야 할 고래는 도통 보이지 않는다. 

다시 또 떨어져 주위를 보니 “안 보이신다고 마모된 게 아니냐고 물으시는데 햇볕이 바위에 비치는 오후 3시경에 눈에 들어옵니다”라는 안내 글이 보인다. 

해는 암각화를 품고 있는 산자락 위로 솟아오르고 역광의 씬이 드러나기 직전. 문화관광해설사분이 출근하셔서 주변을 가지런히 정리하신다. 

더 늦기 전에 선뜻 손을 내밀었다. “선생님 고래가 보고 싶어요. 광주에서 왔어요. 고래 볼려구.” 

300여 동물과 인간이 새겨진 암각화 안내판.

다가오셔서 그 먼 길을 오셨다며 디지털 망원경으로 이곳저곳에 배율을 높여 설명해 주신다. 도판에도 나오지 않은 곳까지. 카메라로 그 모습을 담으려는데 쉬이 드러나지 않고 설명과 육안 사이에는 존재하는 묘한 시간을 십여 분이나 누렸다. 

오전 아홉 시 반과 오후 3시 저 철문을 개방하여 근접해서 볼 수 있도록 한다는데 30여 미터 앞에서도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다고 말씀하신다. 도판으로 가서 망원경으로 보았던 모습을 확인하고 감사 인사 여쭙고 돌아 나온다. 아무래도 반구대 박물관이나 장생포의 고래 박물관에 가야 더더욱 저 그림의 실체와 마주할 수 있을 것인데, 장생포의 박물관에는 여러 차례 갔던 터다. 게다가 워낙에 유명한 반구대다 보니 저 그림들의 어지간한 순서나 내용들은 해석 가능하다.

`햇볕이 바위에 비치는 오후 3시’를 기약해야

이를테면 이 바위에 그림이 새겨진 것은 신석기 시대에서 청동기 시대로 추정되며 그 목적은 몇 가지로 추정되어 전하고 있다. 배워왔던 대로 늘 다산과 풍성한 사냥을 축원하는 것이다 라는 것에서 시작하여, 8명의 사람들이 등장하고, 그 안에는 샤먼이나 나팔 부는 사람, 해체하는 사람 등등 각자의 역할 등이 나뉘고, 고래의 사냥과 관련해 일련의 과정이 나타나는 것을 보며, 교육용이라는 점까지 얘기되고 있다. 신석기의 사람들이 면을 새기었다면 청동기의 사람들은 선을 새기며 무려 300여 종의 육지 동물과 바다 동물을 담아내며 자신들의 소망과 삶의 지혜를 후손에게 물려주는 거대한 작업을 한 것이다.

수천 년이 지났음에도 오늘까지 볼 수 있는 비결은 바로 암각화를 새긴 바위 면이 거대한 암벽의 내부 쪽으로 들어가 있어 눈보라와 비바람을 막아주는 천혜의 대피소 같은 곳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글이 등장하기 이전의 사회에서 당연히 그림이 언어의 모태가 되었다는 점 또한 철저하게 인정되는 장소가 바로 이곳 반구대라 할 수 있다. 

반구대 가는길.
반구대 가는길.

머릿속에 향고래나 새끼를 등에 데리고 가는 귀신고래, 몸을 뒤트는 듯한 긴수염고래가 지나가는데, 결국 도판으로밖에 확인 못 한 것이 아쉽지만, 남은 시간은 아까 뒤로했던 풍경을 즐길 차례다.

오솔길 한켠 오래된 정자 집청정과 바로 앞의 벼랑 그리고 벼랑 위에 자라는 나무들 사이로 햇볕이 쏟아진다. 저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물가로 나섰다. 물줄기가 두 번이나 여울지는 곡류 대곡천의 풍경은 참으로 감탄할만했다. 

물소리에 빠져도 좋고 풍경에 취해도 좋은 이런 장면이 이 땅 곳곳에 있을 터인데 서둘러진 삶이 그로부터 얼마나 많이 나를 격리했는지. 아니면 내가 포기했는지 싶은 생각이 일순 스쳐 갔다. 

그곳 바위 벼랑에도 시인 묵객들의 글씨들이 곳곳에 드러난다. 방명록같이 새긴 이름과 풍경과 풍류에 젖어 호방하게 시를 연찬했던 이들의 성지. 그 가운데 학을 새긴 그림도 있다는데 묘한 여운이 든다. 저 아래에서는 공동체의 어로와 수렵이, 여기에는 선비들의 이상이 저 물길에 하나가 되어 흐르고 막힌다는 점. 강물은 제 스타일로 흘러야 하고, 사람은 스스로의 열망으로 살아야 하는데, 지금 우리는 가로막힌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물소리에 빠져도, 풍경에 취해도 좋아라

이제 돌아서야 할 시간. 울산 남구문화원의 어르신 문화 활동을 만나러 장생포로 향했다. 새미골 마당에는 국화에 물 주는 심영보 국장이 여전하고 3층 온돌 공부방에 85세의 할머니들이 옹기종기 앉아 계신다. 해오셨던 체험활동들, 도수 높은 막걸리 만들어 할매 술고래주점을 운영하신 얘기. 그릇을 분청으로 만들어 술도 내고 전도 내고 잔도 내었다는 도자기. 고래관광선을 타고 고래 구경갔다 돌아와서 그린 그림들. 

호랑이와 사슴.
호랑이와 사슴.

이것저것 오지게 문화적으로 잘 놀았고 다음 주에 전시하려니 억수로 좋다 하신다. 그러고 보니 새벽에 내가 만나려 했던 고래는 이미 할머니들의 그림 속에 들어와 날 기다리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으로 맺어지는 것은 뭘까. 

두어 시간 할머니들과 권주운 선생님과 말씀 나누고 점심 한 그릇 먹고 칠공주 할머니 카페에서 솥뚜껑에 볶은 커피 보온통에 담아 마시며 집에 오니 토요일 오늘도 참 오지게 잘 돌아다닌 하루였다. 
  전고필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 8권역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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