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책방 우리 책들] 요시타케 신스케의 ‘이게 정말 천국일까?’
특정한 종교를 가진 사람이 아니더라도 현대인의 머릿속에는 이미 천국과 지옥에 대한 감각이 자리잡혀 있을 것이다. 잘 살면 천국엘, 잘 못 살면 지옥엘 간다는 단순한 연결점이 바로 그것이다. 천국은 마침내 안식을, 지옥은 끝없는 업보 청산을 상징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요시타케 신스케의 그림책 ‘이게 정말 천국일까?’(2016, 주니어김영사)에는 평범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아이들이 천국을, 그리고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있다.
‘이게 정말 천국일까?’는 주인공인 어린 아이가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유품을 발견하면서 시작한다. 할아버지는 죽기 전에 천국에 대한 기록을 남겨두었는데, 그것은 당신 본인의 미래를 향한 질문들이었다. 죽음 이후의 영혼은 어떻게 될지, 천국에 갈 땐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어떤 수호천사를 만나고 싶은지, 이승에 남은 사랑하는 이들을 어떻게 지켜볼지…
장난스럽고 귀여운, 어린아이 같은 묘사들이 넘쳐난다. 유령 센터에 가서 영혼을 투명하게 바꾸고, 몰래 다른 존재로 이승에 나타나 살아있는 가족들을 관찰하고, 서로가 칭찬만을 주고받는 천국의 모습을 상상한다. 허무맹랑하지만 그럼에도 누구든 한 번쯤은 꿈꿔보았을 이야기들이다. 뒤이어 발견할 아이와 가족들을 배려한 것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허나 단순히 남겨진 사람들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주인공은 사후세계에 대한 희망찬 묘사를 보고 처음엔 할아버지가 죽음을 기대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내, 그 기대하는 마음이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한 방법일 수도 있다는 것을 느낀다. 할아버지를 떠나간 존재가 아니라 자신과 똑같이 살아가던 존재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할아버지는 죽음을 생각하면서 무엇을 느꼈을까? 죽는다는 건 무엇일까? 이게 정말로 천국의 모습일까? 이런 ‘일반적’이지 않은 질문은 아이들의 머릿속에서 더욱 솔직하게 빚어지기 마련이다.
아빠가 말했어요.
“사람은 언젠가는 죽는단다. 그게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말이야.
그렇다면 죽은 다음에는 어떻게 지낼까 생각해 보거나
남은 가족에게 바라는 걸 떠올려 볼 수도 있겠지?
그걸 누군가에게 말해도 좋고 공책에 적어 봐도 좋아.”
‘이게 정말 천국일까?’ 중에서.
할아버지의 공책엔 많은 것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자신이 떠난 뒤의 현실을 생각하는 부분으로 ‘무덤’과 ‘기념품’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언젠가 죽음을 맞이한 뒤에 자신의 무덤이 재치있거나, 아이들이 놀 수 있거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형상이길 바랐던 것 같다. 죽은 자신을 기억하는 방식이 슬픔이나 애도보다는 유용한 쪽이기를. 기념품으로 열쇠고리나 티셔츠, 심지어는 할아버지 얼굴이 브랜드 시그니처인 라면까지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할아버지는 자기 죽음을 크게 불행하거나 두려운 일이 아닌, 기억하고 또 기념할 만한 사건으로 여기고자 노력했을 것이다. 주인공은 그 노력 덕분에 아주 먼 자신의 미래, ‘죽음’을 아주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죽음 이후의 미래를 상상하는 데엔 현재의 아쉬움이 녹아있음을 알아차린다.
나는 죽은 뒤의 일을 생각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살아 있는 지금 하고 싶은 일들만
자꾸자꾸 떠오르지 뭐예요.
아, 생각할 게 너무 많아요.
‘천국에서 뭐 할까?’ 공책과
‘오늘은 뭐 할까?’ 공책을
함께 만들면 좋을 것 같아요.
‘이게 정말 천국일까?’ 중에서.
죽음 이후를 상상할 때 기분을 좋게 하는 ‘천국’은 환상의 공간이다. 상상만 하던 마법적인 일들이 일어나는 공간. 그것은 결국 내가 이루어내지 못한 것을 할 수 있게 해준다는 데에서 오는 만족감이다. 그렇다면 그것이 ‘못할 줄 알았는데 결국 이루어낸 것’에 대한 만족감과 어떻게 다른가?
아이의 입장에서는 한참 뒤인 죽음 이후의 허상보다도 자기 손으로 직접 무언가를 이루어내는 일을 상상하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아이는 당장 시작할 수 있다. 할아버지와 세상이 말한 천국에서의 즐거움만큼, 오늘 도전한 일을 성공함으로써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죽음을 이런 식으로 기억해야 할지도 모른다. 현실이 천국과 지옥의 결과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천국과 지옥이 현실을 돕는다. 나는 어떤 천국을 원하고 그것을 어찌하면 현실에서 이뤄낼 수 있을지, 나는 어떤 지옥을 원치 않고 그것을 어찌하면 현실에서 피해갈 수 있을지를 상상하는 것이다.
닿을 수 없는 곳에 존재하는 천국을 그리고 있자면, 닿을 수 있는 곳의 현실을 그리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일이 된다. 미래를 현재로 상상하는 힘. 요시타케 신스케의 그림책은 우리에게 그런 힘을 준다.
문의 062-954-9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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