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고샅길 따라-12
안마당에 피었던 꽃. 담벼락 바깥으로 옮겨 심었더니 고샅을 환히 밝히고 있다.
“이삔께 같이 볼라고.” 임남순(83·보성 조성면 봉능리 봉산마을) 할매 말씀.
대문 나와서 몇 발짝 길을 건너면 바로 밭이다.
“내 푸접이제. 밭 요것 한 쪼각 지서. 밭 없어. 팽생 일해도 팽생 놈의 일만 했제, 장만을 못했어. 애를 쓰고 일해도 땅을 못 사. 애초에 없응께. 소도 어덕이 있어야 문대제. 나는 어덕이 없이 팽생을 살아. 일도 일도 나같이 몸썰나게 한 사람 있으까. 내 밭으로 내 논으로 가문 더 재미지제.”
할매는 그 재미를 못 누리고 살았다.
“몸땡이는 째깐해도 일을 잘해. 긍께 내 별명이 ‘이앙게’여. 모 잘 숭근다고. 보지런하다고 ‘볼보리’라고도 부르고. 일을 가문 그 집 쥔네가 좋아라 해. 좀 쉬었다가 하라고 맨나 그 소리를 들어. 옆엣사람은 ‘얼릉얼릉하라’는 말 들을 적에.”
어덕 없이 살아온 할매의 어덕은 스스로 보지런한 것이었다.
“우산각 쪽에 있는 밭도 벌초해주고 지서묵었는디 인자 힘이 들어 못하고 요것만 지서. 아칙마다 대문 열고 젤로 몬자 보는 것이 요 밭이여. 폿 숭구고 콩 숭구고 꽤도 숭구고….”
영감님 돌아가신 지 벌써 수십 해.
“그 냥반도 일만 일만 애쓰고 하고. 팽생 놀아보도 못하고 갔제.”
“저하고 나하고 둘 살아”라고 할매가 말하는 식구는 ‘메리’라고 부르는 개.
“딸 둘 아들 둘인디 아들 한나가 작년에 요때 가불었어. 저 개도 우리 아들이 나도 없고 어매 혼자 살문 쓸쓸하다고 작년에 갖다준 거여. 개만 봐도 더 아들 생각이 나. 내가 대신 갔으문 얼매나 좋아. 내가 가고 지가 살고.”
빨간 꽃 이쁘게 핀 그 고샅 대문 너머, 할매가 혼자 가슴에 품고 견디는 아픔과 그리움이 있다.
“사람이 살자문 다 사연 많애, 누구든지.”
그 너머를 모르고 산다.
글=남신희·임정희 ‘전라도닷컴’ 기자
사진=박갑철 ‘전라도닷컴’ 기자
※이 원고는 월간 ‘전라도닷컴’(062-654-9085)에도 게재됐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