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중고마을의 겨울-01] 동네 한바퀴

너른 들녘에 목숨줄 기대어 살아왔다.
너른 들녘에 목숨줄 기대어 살아왔다.

마을 들머리에 거북이 받들고 있는 표지석에 ‘고성(古城)의 중심’이라고 새겨져 있다.
전라병영성이 지척인 중고마을(강진 병영면 중고리).

1417년에 광산현(광주 광산구)에 있던 병영을 지금 터인 당시 도강현(道康縣)으로 옮기면서 병마도절제사 마천목 장군이 쌓았다는 성이다. 조선조 500년간 전라도와 제주도 등 53주 6진을 총괄한 육군의 총지휘부였던 병영성은 ‘설성(雪城)’ 혹은 ‘세류성(細柳城)’이라고도 했다.

<하멜 표류기>의 주인공인 네덜란드인 하멜 일행의 발자취도 남겨져 있으며 동학농민군들의 염원이 서린 싸움의 현장이기도 했다.

중고를 비롯, 상고, 하고, 중가, 발천마을까지를 아울러 ‘고성 5리’(古城五里)라 불렀다. 오랜 역사 서린 창연한 이름이다. 마을 앞에 펼쳐진 논이 드넓다. 그 들녘에 목숨줄 잇대어 살아왔다. 일미칠근(一米七斤)이니, 세세년년 거기 흩뿌려져 쌓여온 땀의 근수가 얼마랴. 여름날 쟁글쟁글한 땡볕을 이고 일하느라 땀을 됫박으로 흘렸을 이들을 품어온 나무그늘이 있다.

나이 많이 잡순 느티나무들이 들녘 앞에 둥그스름하게 둘러섰다. 중고마을 당산숲이다. 그 중 제일 큰 나무는 400살, 키는 20미터에 달한다. 해마다 여름이면 나무는 그늘농사를 넉넉하게 지어 동네 사람들을 불러들인다. 나무와 짝하여 비로소 여름집의 서늘한 풍모를 갖추는 모정도 그 아래 자리했다.

나이 많이 잡순 느티나무들이 둥그스름하게 둘러섰다. 중고마을 당산숲.
나이 많이 잡순 느티나무들이 둥그스름하게 둘러섰다. 중고마을 당산숲.

동무가 있고, 나눔이 있고, 품앗이가 있는
“여름에 엄청 시원해. 아무리 더운 날도. 그늘이 얼매나 큰께.”

지금은 이파리 다 떨구었다. 하지만 빈 가지만으로도 거대한 초록의 위용을 그려보기 어렵지 않다.

“나이 많이 잡순 양반들은 못 걸어온께 회관에서 놀고, 걸음 더 잘 걸고 나이 덜 잡순 양반들은 여그로 오제.”

회관이냐 모정이냐가 나이를 가른다. 채정자(79) 어매는 “나? 나는 여그도 왔다가 거그도 갔다가”라고 말한다.

“각시도 됐다가, 할매도 됐다가, 하하.”

모정은 동무가 있고, 나눔이 있고, 품앗이가 있는 곳. 먹을 것도 일거리도 들고 나와서, 내남없이 나누고 손길을 보태는 자리.

“옛날에는 여름에 여그서 다 모탰제. 그때는 동네에 사람이 엄청 많애서 늦게 오문 자리 차지도 못했어. 인자 자리가 남아돌아.”

한창 많을 때는 150여 가구에서 지금은 50여 가구 정도로 줄었다.

“요 앞에 질을 맨듬서 사장나무를 많이 비어불었제. 그네 맨 나무도 비어불었제. 각시 때는 그네 많이 뛰었어. 발 뻗으문 나무 끝에까지 닿아불어. 그때는 그런 것이 재미제.”

최정심(85) 어매 말씀이다.

예전에는 정월대보름이면 이곳에서 당산제가 치러졌다. 당산제가 끊긴 지는 오래 됐다. 양회준(77)씨는 “옛날에는 풍물도 치고 정월보름날은 들썩들썩했어”라고 추억한다.

“줄다리기도 하고. 한 마을에서 골목골목 편을 나눠서 해. 알데미(아랫데미) 울데미(웃데미)로. 그때는 사람 수가 많애. 사람숫자 정하는 거 아니라 많이 붙으문 이기고. 지문 집집이 사람들 모시고 나와갖고 다시 하고. 이기든 지든 한바탕 재미졌제.”

그 종이 땡땡땡 울릴 일은 없었어야 했으리. 예전 마을회관 쪽에 오래된 풍모의 종이 걸려 있다. 위급한 일에 마을 사람들 모두 항꾼에 힘을 모태 이겨냈던 흔적이다.

지난 시절엔 소임이 막중했다.

“옛날에는 유용했제. 불나고 급한 일 있으문 종 쳤어. 불났다고 땡땡땡 급하게 치문 자다가도 이녁집에서 싸악 바께쓰 갖고 달려나와서 불을 꺼. 에지간하문 다 꺼불어. 순전히 동네사람들 힘으로.”

높은 가지끝 매달린 감들이 초겨울의 하늘을 환히 밝히고, 까치들이 그 ‘밥’을 먹다 후두둑 난다.
높은 가지끝 매달린 감들이 초겨울의 하늘을 환히 밝히고, 까치들이 그 ‘밥’을 먹다 후두둑 난다.

갑장은 든든하고 각별한 존재

“우리는 날만 새문 서로 딜다봐. 둘이 갑장이여. 소띠. ㅤ멫 년 전까지만 해도 갑장 많았제.” 최정심(왼쪽), 장소제 어매.
“우리는 날만 새문 서로 딜다봐. 둘이 갑장이여. 소띠. ㅤ멫 년 전까지만 해도 갑장 많았제.” 최정심(왼쪽), 장소제 어매.

집집이 감나무를 품고 섰다. 높은 가지 끝에 남은 감들이 초겨울의 하늘을 다숩게 밝히는 그 고샅을 걸어가는 두 어매.

“바를 정(正)에 마음 심(心)자. 이름을 고러코 해놔서 남편이 나한테 이름하고 똑같이 산다고 그래. 우리 친정아버니가 지어준 이름이여. 근디, 지금 시상은 너무 정직하고 착하문 손해여. 그래도 어찌꺼요. ‘정심’으로 살아야제. 이사람 이름은 소제. 내 이름보다 부르기도 더 숴랍고 더 보드랍고.”

최정심(85) 어매는 ‘그 이름 부러운’ 장소제(85) 어매와 함께 마실중이다. 장소제 어매가 “긍가? 가져가, 내 이름” 하며 두 손 모아 바치는 시늉을 한다. 하하, 웃음이 인다.
“모태야 웃음 나제. 혼차 있으문 웃을 일 없어. 둘이 갑장이여. 소띠. 친구는 둘이만 남았어. ㅤ멫 년 전까지만 해도 갑장 많았제.”

사람수 졸아져가는 마을에서 갑장은 든든하고 각별한 존재.

“우리는 날만 새문 서로 딜다봐. 성제간 같이 살아. 한 동네로 시집와서 이때까 살고 있응께.”

꽃각시적 고운 얼굴들을 기억하고, 한 고샅 안에서 살아온 날들 속에 서린 눈물과 기쁨을 서로 안다.

대문 여는 법

김미순 어매 집 대문간 풍경. 너른 지붕 아래 켜켜이, 수납의 미학이 빛난다.
김미순 어매 집 대문간 풍경. 너른 지붕 아래 켜켜이, 수납의 미학이 빛난다.

활짝 열린 대문은 무언의 환대다. 돌이든 무어든 괴어서 그저 삐긋이 열어둔 대문도 있다. 그 작은 틈새만으로도 안과 밖이 통한다.

열아홉 살에 돈벌러 고향 떠나 타향살이 하다 일흔일곱 살에 돌아왔다는 이한테 다시 돌아온 고향에서 새로 배운 것을 듣는다.

“여그로 이사온 지 얼마 안됐을 때는 모르고 문을 잠그고 다녔어. 근디 친척 누님이 문을 열어놓고 다니라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대문 여는 것을 배왔제.”

김장 채비중인 마당

“올해는 하느님네가 잘 지어줬어. 올해 우리 배추가 좋아.” 김장 앞둔 오양란 어매네 마당.
“올해는 하느님네가 잘 지어줬어. 올해 우리 배추가 좋아.” 김장 앞둔 오양란 어매네 마당.

이맘때 총출동하는 것들이 있다. 김치통이다. 김미순(72) 어매네 마당에 김치통들이 층층이 쌓였다. 김장 채비가 시작됐다.

“김장할라고 통을 시쳐놨어. 아들네들 딸네들 주고 동생들도 줘. 다음주에 김장해. 요걸로는 부족해. 인자 즈그들이 통을 더 가지고 오꺼이요.”

“세상에서 가장 귀한 꽃은 사람이 각자 필요로 하는 꽃이옵니다. 굶주린 사람에게는 벼꽃이 귀하겠고, 약방의 사람에게는 감초꽃, 솜옷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목화꽃이 귀하겠지요.”(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 중)

“세상에서 가장 귀한 꽃은 무엇이겠느냐?”라는 물음에 대한 어떤 이의 답은 그렇다.
그집 마당에서 “배추꽃 봐라”는 소리를 듣는다. 오양란(74) 어매네 마당은 밭에서 방금 실어온 배추로 가득 찼다.

“올해는 하느님네가 잘 지어줬어. 올해 우리 배추가 좋아. 배추가 다 꽃 올라왔어. 쏘복쏘복하니 꽃이 다 보여. 난장에서 키운 배추라 집안터의 배추 맛하고는 틀려. 밖에서 큰 배추는 슴슴하들 않고 배춧대가 달아.”

겨울 내내 자식들 밥상에 올려질 김치다.

“자식들 줄란께 많이 하제 나 묵을라고 많이 하겄어. 그전에는 150포기. 인자 힘에 부친께 올해는 130 포기.”

손이 일 많이 했다고 말해준다.

김치통들이 층층이. 김미순 어매네 김장 채비다. “김장할라고 통을 시쳐놨어. 울 애기들이 인자 통을 더 가지고 오꺼요.”
김치통들이 층층이. 김미순 어매네 김장 채비다. “김장할라고 통을 시쳐놨어. 울 애기들이 인자 통을 더 가지고 오꺼요.”

“볼쎄 돌아가신 영감이 일욕심이 겁나 많앴제. 그란께 내가 삭신이 아파죽겄어. 영감도 새끼들 믹여살리고 갈칠라고 그랬겄제.”

“그래도 젊었을 때가 존 시상이제. 일 많이 하던 그때가”라고 말하는 양춘임(88) 어매는 ‘그때’와 ‘지금’을 명쾌하게 가른다.

“그때는 아퍼도 자고 나문 다 나서. 지금은 자고 나문 더 아퍼.”

“그때는 자고나문 나사분께 일을 하고 또 하고, 몸 애낄 줄을 몰랐어”라고 한탄하는 지금도 여전히 일을 보듬고 산다.

“인자 째까여. 밭도 다 놈 줘불고 쪼까 벌어. 오늘은 싱건지 잔 담아볼라고. 지까심 배추는 아직 속이 안들어서 좀 지달렸다 짐장 해야겄어. 놈의 것은 잘 들었던디, 내가 정성을 덜 딜였는가.”

진인사(盡人事). 배추 한 포기 앞에서도 내가 들인 정성을 먼저 요량하는 어매인 것이다.
글=남신희 ‘전라도닷컴’ 기자 
사진=박갑철 ‘전라도닷컴’ 기자, 최성욱 <다큐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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