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중고마을의 겨울] 중고마을 큰샘

겁주려는 마음따위 전혀 없는 넉넉한 웃음. 삿되고 해로운 것들을 물리치며 중고마을 큰샘을 지키는 소임을 오랜 세월 해온 용.
겁주려는 마음따위 전혀 없는 넉넉한 웃음. 삿되고 해로운 것들을 물리치며 중고마을 큰샘을 지키는 소임을 오랜 세월 해온 용.

겁주려는 마음따위 전혀 없는 넉넉한 웃음이다.

어서 오라고 반기는 듯하다. 삿되고 부정하고 해로운 것들을 물리치며 중고마을 큰샘을 지키는 소임을 오랜세월 해온 용.

두 눈 부릅뜨지 않고도 할 바를 다해 왔다. 용모를 볼짝시면, 퉁방울눈에 주먹코에 헤벌쭉한 웃음을 짓고 있다. 이 용두(龍頭)를 만들었을 석수의 다순 마음이 전해진
다. 위엄과 권위는 진즉에 내려놓은, 소탈하고 이무로운얼굴이다.

이 동네 할매 어매들을 대대로 지켜봐왔을 터. 아침마다 물 길어 나르고 푸전가리 씻고 이불빨래 하는 묵묵하고 고단한 일상의 노동의 곁을 지켜온 오래된 벗이다.중고마을 큰샘은 성벽을 둘러친 듯 견고한 둘레를 지니고 있다. 수문장처럼 입구에 선 나무들도 샘을 바깥의 눈길로부터 보호하는 동시에 아늑함을 더한다. 네모진샘 앞의 양쪽에 자리한 용은 샘을 청정하게 지키는 상징.

용은 예로부터 비와 물을 관장하는 수신(水神)으로 여겨졌다.

이 동네 할매 어매들을 대대로 지켜봐왔을 터.
이 동네 할매 어매들을 대대로 지켜봐왔을 터.

“온 동네가 다 묵었제” “생전 안 보타”

이 모든 것이 샘은 ‘신성한 영역’임을 일깨운다. 동네사람들이 함께 먹는 샘이란 그토록 소중한 것이었다.

“온 동네가 다 묵었제. 옛날에는 모다 요 큰시암 한나갖고 살았어. 이 동네가 많할 때는 한 150가구나 되았어. 그때는 각시들도 많앴제. 시암에 가문 각시들이랑 이약이약하는 재미도 좋았제.”

그 많은 동네사람들을 먹여살린 공덕을 모두 기억한다. “물이 깨깟하고 진짜 좋았어. 생전 안 보타.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도 안해.”

각시 시절을 그 샘과 더불어 보낸 어매들의 샘이야기도 아직 보트지 않았다.

“물이 사시사철 많이 나.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다숩고. 겨울 아침에 시암에 가문 짐이 뭉게뭉게 나. 그란께 손이 안 시러.”

“온 동네가 다 묵었제. 옛날에는 모다 요 큰시암 한나 갖고 살았어.” 중고마을 큰샘.
“온 동네가 다 묵었제. 옛날에는 모다 요 큰시암 한나 갖고 살았어.” 중고마을 큰샘.

내남없이 깨끗하게 지키고 살뜰히 건사

샘에서 뽀짝 가까운 집에 사는 양춘임(88) 어매는 “옛날에는 우물 가차운 복도 컸제”라고 말한다.

“항아리로 질어 나르다 다음에는 양철동우가 나왔제. 양철동우는 안 깨지고 좋제. 근디 나는 항아리 깨져도 야단칠 시어무니가 안 계셨어.”

자박자박 발자국 소리 찰박찰박 물소리 그치지 않았던 샘은 고적해진 지 오래.

“집집이 물독아지 큰 거 놔두고 새복마다 물 질어서 그 독아지 채우던 시절이 흘러가불었어. 인자 안 쓴지 오래 되았제. 그 물 한나 갖고 온 동네 묵고 빨래하던 물인디 인자 암것도 안한께 아까와. 안 쓴께 자꼬 이끼가 쪄불어. 옛날에는 한 달에 한번썩은 동네사람들 나와서 시암물을 품으제. 속에 들어가서 바닥에 독도 깨깟하니 시치고.”

김미순(72) 어매의 말씀처럼, 내남없이 깨끗하게 지키고 살뜰히 건사했던 샘이다.

‘마을 동(洞)’의 ‘동(洞)’자는 같은 물을 쓴다는 의미. 공동우물은 동네의 중심이었다. 공동체란 마음도 한데 길어올렸다.

정월 대보름이면 마을 앞 당산숲에서 이뤄진 당산제와 더불어 시암제도 지냈다고 한다.

“지사 지낼 때는 시암 물을 딱 덮어불어. 한 이틀은 채알(차일)도 치고 시암 주위에다 빨간 황토를 깔아놔. 출입도 하지 말고 조심하라는 뜻이여. 해온 내력이 있응께 다 잘 지캐. 지사 모시는 사람만 거그서 물 떠다가 지사 지낼 음식을 장만하고.”

최정심(85) 어매는 용 앞에서 삼가던 마음들을 말한다.

“상구 오래 되았어. 잘 생갰제. 용이라고 존경하는 맘으로 살았제. 용 옆에 돌에는 더런 것도 안 올리고 깨깟하니 빤 것만 올리고 물동우만 올리고. 함부로 발도 안 딛고.”
중고마을 큰샘은 2003년 샘 위에 유리덮개를 만드는 등 새단장을 했다. “좋게 뀌민다고 돈 딜여 곤쳤는디, 몬야보다 못한 성싶어”라고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있다.

정확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으나 757년 도강현의 치소가 있었던 수백 년 전부터 써 온 것으로 추정되는 역사성이나 네모난 형태의 샘 양쪽에 우물을 지키는 용머리가 조각돼 있다는 점 등이 특별해서 지난 2004년 강진군 향토문화유산 제24호로 지정됐다.
글=남신희 ‘전라도닷컴’ 기자 
사진=박갑철 ‘전라도닷컴’ 기자, 최성욱 (다큐감독)
※이 원고는 월간 ‘전라도닷컴’(062-654-9085)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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