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대영의 영화읽기]광해, 왕이 된 남자

팩션의 매력은, 역사적 사실이나 실존인물의 이야기에 작가의 상상력을 덧붙여 역사를 재창조하는 재미가 있다는 것이다.

‘왕의 남자’가 조선왕조실록의 연산군 편에 있던 공길이라는 광대에 대한 한 줄의 이야기에서 시작되었듯이, ‘광해, 왕이 된 남자’ 역시 조선왕조실록의 광해군일기 중 “숨겨야 할 일은 조정의 기록에 내지 말라 이르다”라는 기록이 출발점이 되었다.

그러니까 기록에 없는 15일 간을 작가가 마음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친 결과가 ‘광해, 왕이 된 남자’인 셈이다.

때는 광해군 재위 시절, 매일 밤 암살 위협에 시달리고, 먹는 음식마다 의심을 할 수밖에 없는 살얼음판 같은 궁에서 살아가는 군주 광해(이병헌). 광해는, 소유한 농지에 따라 세를 부과한다는 대동법과 가가호호 신원을 파악해 부역을 정한다는 호패법을 밀어붙이려 했고, 이에 지주와 결탁한 반대파 신하들은 충신에 대한 모함과 중전(한효주)의 폐위 요구로 맞서 있다. 이 난국에서의 목숨 부지를 위해 광해는 허균(류승용)을 시켜 자신의 대역을 찾아보라고 명한다. 이내 허균은 광해를 쏙 빼닮은 광대인 하선(이병헌)을 찾아내어 ‘가짜 광해’ 노릇을 하도록 종용한다.

문제는 광해나 허균이 생각했던 대로 상황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양반의 횡포와 백성의 고난을 몸소 경험한 하선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자리만 지켜 달라”던 허균의 지시를 어기고 잇따라 돌발적인 행보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처음엔 흉내였지만 어느새 하선은 왕 노릇을 욕망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이 영화의 가장 통쾌한 지점은 바로 여기다. 광대로 살면서 민초의 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하선이, 조정의 돌아가는 꼴을 보니 정의롭지 못한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에 왕의 이름으로 하선은 앞뒤를 재지 않고, 민중의 편에서 정치하기를 주저하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광해, 왕이 된 남자’는 80여 일을 앞두고 있는 대한민국의 대선정국을 염두에 두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이 바라는 대통령은, 군림하고 지배하는 존재가 아니라 백성의 편에 서서 고통을 어루만져 주는 지도자일 것이다. 이 영화에서 보여지는 조정의 반대파는 현재 한국의 기득권층이나 부패한 관료집단, 재벌과 밀착한 권력을 표상한다. 반대파를 혁파하고 백성과 직접 소통하는 지도자에 대한 갈망은 급기야 팩션을 통해 현실의 꿈이 이루어지도록 했던 것이다.

이 영화는 이렇게 노골적으로 국민관객의 열망을 담아내려고 노력한 측면이 있다.

그렇다고 ‘광해, 왕이 된 남자’가 국민들의 염원만을 담아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랑과 정, 믿음과 신뢰의 이야기도 하선을 통해 투영시키기 때문이다. 이런 차원에서 보자면 광대인 하선은 관객들이 바라는 인간됨됨이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물일 수 있다.

하선이 중전을 생각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광해가 채워주지 못하고 있는 부분을 대신하고 있다고 느껴질 정도이며, 궁녀인 사월이(심은경)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인간적인 정으로 대하는 장면 역시, 왕의 모습에서 인간적인 면모를 보고 싶어 하는 관객들의 마음을 반영한 결과일 것이다.

이와 함께 하선과 도부장(김인권)의 에피소드에 배어있는 믿음과 의리에 대한 이야기 역시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여낸다. ‘삼국지’에서 유비가 제갈량의 마음을 사 천하를 얻었듯이, 하선 역시 지혜의 말로 자신을 의심했던 도부장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추창민 감독은, 그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과 정에 대한 이야기를 줄곧 다뤄왔다. ‘광해, 왕이 된 남자’는 감독이 추구했던 주제의식이 좀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있는 경우이다.

조대영 (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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