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대영의 영화읽기]‘007 스카이폴’
007시리즈는 영화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되고 많이 만들어진 시리즈이다.
1962년 ‘007살인번호’에서 시작된 이 시리즈가 ‘007스카이폴’에 와서 50주년을 맞이했고, 23탄이라는 숫자를 기록하기에 이른 것이다.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번째 007영화인 ‘어나더데이’에 와서는 007영화의 활력을 잃어버리며 관객들의 외면을 받는 상황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007시리즈는 유사 액션영화들인 ‘미션 임파서블’시리즈나 ‘본’시리즈를 의식해야 하는 국면에 놓이게 된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007시리즈만의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묘안이 없음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영화인 ‘007스카이폴’이다.
우선, ‘007스카이폴’은 007영화의 강박에서 한없이 자유롭다는 느낌을 준다. 몇 가지 사례만 들어도 그 긴장이 이완되어 있음을 쉽게 느낄 수 있다.
그간의 시리즈마다 섹시 아이콘으로 화제를 불러 모았던 ‘본드걸’의 활약이 미비하다는 점이 우선 꼽힌다. 여기에다 기상천외한 상상력이 바탕이 된 최첨단 무기 등을 전시하지 않는 것도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초반부에 지붕 위를 질주하는 오토바이 추격 장면의 액션 말고는 압도적인 활극이 없는 것도 007영화의 기대치를 반감시킨다.
그러니까 ‘007스카이폴’은 차와 포를 떼고 장기를 두고 있는 모양새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새로운 007은 기존의 방식, 그러니까 섹시한 본드걸과 최첨단 신무기, 눈을 못 때게 만드는 액션으로는 시리즈를 계속해서 이어나가는 것이 벅차다는 것을 간파한 것이 아닌가 싶다. 007탄생 50주년이자 새로운 50년을 준비해야하는 반환점에서 할 수 있는 고민의 결과일 것이다.
하여, 23탄의 연출자는 샘 멘데스에게 주어졌다. 일찍이 ‘아메리칸 뷰티’로 두각을 나타냈던 그는 007을 허황된 이야기가 아닌 드라마로 접근한다.
영화 초반부에 제임스 본드(대니엘 크레이그)와 이브(나오미 해리스)는 도망치는 적을 오토바이로 뒤쫓는다. 추격에 이어 달리는 기차의 지붕위에서 본드와 적의 대결이 이어진다. 이때, M(주디 덴치)은 본드의 신변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브에게 저격을 명한다. 결과는 본드의 천 길 낭떠러지행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본드를 믿지 못하고 사격을 명령한 M의 선택과 냉혹함이다.
그러니까 ‘007스카이폴’은 영화의 서두에서 조직의 안녕을 위해 어미가 아들을 과감히 희생시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것을 명확히 한 셈이다.
실체를 알 수 없는 적은 MI6 본부를 폭파하는 등 계속해서 조직을 위협해 오고, 본드는 복귀하여 적에게 접근한다. 그리고 결국 실바(하비에르 바르뎀)가 강력한 적이라는 것을 파악하기에 이른다. 눈여겨 볼 것은 실바라는 인물이 왜 도발을 감행하는가 하는 점이다. 그 이유를 안다면 이 영화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가 밝혀질 것이기 때문이다.
실바는 MI6 본부의 전직요원으로 자신의 상사인 M에게 배신을 당했던 인물이다. 악당이기 이전에 모욕감과 상처를 갖고 있는 인간이 바로 실바인 셈이다.
실바는 거대한 탐욕자가 아니라 자신의 원한을 갚기 위해 한 개인을 응징하고자 거대한 폭력을 준비했던 것이다. 007의 이야기치고는 맥 빠지는 이야기지만 50주년을 기념하는 스토리는 이렇게 인류 구원이 아닌 개인의 인정심리에 대한 것이다.
007시리즈는 이제 초창기 세계정복의 야욕을 불살랐던 이야기에서 개인의 안위를 고민하는 관심사로 안착한 것이다.
조대영 (영화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