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대영의 영화읽기]‘늑대소년’

미국에서 단란한 가족을 꾸리고 있는 순이(이영란)에게 한국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그 전화를 받은 할머니는 강원도 산골의 별장에 도착하여 47년 전을 회상한다.

그러니까 ‘늑대소년’은 현재에서 과거로 여행을 떠났다가 다시 현실로 복귀하여 과거의 유산과 만난다는 낯익은 구조의 영화다.

이 영화가 흥미로운 것은, 47년 전으로 돌아가서 만나는 대상이 인간과 동물의 모습을 함께하고 있는 늑대인간이라는 점이다. 6·25때의 전쟁고아가 늑대인간이 되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력의 발로가 참신한 지점이다.

그렇다고 이 설정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아이가 야생에서 길러지는 이야기는 그간 많은 영화나 소설 속에서 마주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늑대소년’의 이야기 전개도 진부하긴 마찬가지다. 야생에서 자라난 늑대인간이 소녀의 보살핌과 훈육을 통해 점차 사람의 꼴을 갖춰간다는 설정을 하고 있고, 이 과정에서 서로가 사랑하게 된다는 것도 짐작할 수 있는 요소다. 여기에다 이들이 잘되는 것을 방해하는 악역의 역할이 배치될 것이라는 것도 예상할 수 있는 수순이다.

그렇다면 이 빤한 이야기가 다수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낭만적 사랑에 대한 신화를 극대화 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야생의 늑대인간을 길들이는 소녀의 무기는 칭찬이다. 소녀의 무한 칭찬은 늑대인간도 춤추게 하고 그렇게 두 사람은 사이를 좁혀가는 것이다. 그러나 극적인 영화가 되려면 이들에게 장벽이 존재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여 이들을 갈라놓기 위한 방해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을 것이고 영화 역시 그런 장치들을 마련해 놓는다.

결국 순이(박보영)는 철수(송중기)를 뒤로 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이때 순이는 철수(늑대인간)를 살리기 위해 “기다려. 나 다시 돌아올께”라는 내용을 적은 쪽지 하나만 남기고 그를 두고 떠나 버린다. 이 영화의 기적은 바로 이 열 글자를 믿고 47년을 기다리는 늑대인간의 순정에서 발생한다.

“나는 그 동안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이렇게 늙었는데 넌 아직 잊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구나”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을 인간이 아닌 늑대인간이 대신해 줄 때 관객들은 펑펑 울어 버리는 것이다.

속도가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사랑의 수명이 1년도 버티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한데도 늑대인간은 47년을 충직하게 기다렸고, 여기에다 신비한 영원성까지를 간직하고 있다는 이 판타지의 세계는 분명 관객들을 매료시키는 구석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늑대소년’은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낭만적 사랑의 이데올로기를 극한까지 밀어붙여 관객들이 맛보고 싶어 하는 목 메이고 아름다운 그것을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늑대소년’은 사랑의 영원성이라는 허구를 전하기 위해 존재하는 영화인 것이다. 변하는 것이 사랑일진데, 이 영화는 그렇지 않은 사랑이 여기 있으니 와서 보라고 유혹하고 있는 셈이다.

‘늑대소년’은 엉터리장면과 설정을 여럿 발견할 수 있음에도 태연자약의 모습으로 일관하며 이상한 뚝심을 발휘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숲속 장면에서 눈이 내리는데 숲속으로 더 들어가면 눈에 대한 흔적이 사라지고 없다. 그러니까 이 장면은 시간을 달리해 찍은 것을 이어붙인 것이다. 한 씬 내에서 시공간을 통일시키지 못한 명백한 실수를 이 영화는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가 버리는 것이다.

결국 태연자약의 일관성은 순이와 철수의 47년 만의 꿈같은 상봉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못하도록 하는 힘을 발휘한다. ‘늑대소년’은 묘한 구석이 있는 영화다.

조대영 (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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