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대영의 영화읽기]‘26년’

강풀의 만화는 그간 영화로 많이 만들어졌다. 그림체는 별로라는 평을 듣는 강풀의 만화가 경쟁력이 있는 이유는 이야기의 힘 때문이다. 그의 스토리텔링은, 일급작가에 비해 서툴러 보이는 그림체를 상쇄시키고도 남는 저력을 입증해 내는 것이다.

‘26년’의 원작인 동명의 웹툰만 해도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오월광주’의 희생자 가족들이 전두환 암살 작전을 수행한다는 상상력은 분명 매력적인 이야기인 것이다. 이 웹툰의 영화화는 한 차례 시도되었다가 무산되었고, 18대 대통령을 뽑기 직전에 공개되며, 영화 스스로가 정치적인 자리에 서는 것을 주저치 않는다.

조근현 감독은 강풀의 만화를 대폭 수정하여 자신의 이야기로 소화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야기 전달 솜씨가 흡족하지 않았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시작은 나쁘지 않다. ‘마당을 나온 암탉’의 오성윤 감독이 참여한 도입부의 애니메이션은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 속의 인물들의 사연을 함축적으로 담아냈기 때문이다.

갓난아이인 미진(한혜진)을 업고 이름을 지어주던 어미는 진압군의 총에 횡사하고, 정혁(임슬옹)의 누이는 계엄군의 총에 맞아 내장을 토해낸 채 죽어간다. 진배(진구)와 진배 어머니(이미도)는 망월동의 시체더미에서 아비를 찾아내어 울부짖고, 도청진압에 나섰던 진압군 갑세(이경영)와 상열(조덕제)의 사연까지가 설득력 있고 충격적으로 제시되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실사로 넘어 오면서 길을 잃고 헤맨다.

‘그 사람’(장광) 암살 플랜을 주동하는 갑세와 주안(배수빈)이 ‘그 사람’에게 사죄를 받기 위해 준비한 계획은 어딘가 허술하고, 미진은 사죄 받기를 기다리지 않고 직접 저격에 나서는 등 ‘그 사람’을 처벌하기 위해 모인 팀치고는 팀워크가 튼튼하지 못한 것이 우선 걸린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들이 ‘그 사람’을 처단하기 위해 ‘그 사람’의 저택에 모여드는데, 어떤 계획을 어떻게 사전에 협의하였는지를 생략해 버렸거나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는 점이다.

갑세와 주안(배수빈)이 비장하게 ‘그 사람’을 방문하고, 진배는 광주의 아들들이라고 우기는 어깨들을 관광버스에 태운 채 ‘그 사람’에게 향하며, 미진이 건물 옥상에서 저격을 준비하는 장면들이 서로의 연관성 없이 혹은 합의된 바 없이 나열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내러티브영화로서의 기본이 무시되어 있다. 이를 무마시키려고 영화가 준비하는 것은 숨가쁘게 전개되는 화면의 이동이다.

운 좋게도 영화는 관객들에게 허술함을 들키지 않은 채, ‘그 사람’의 저택과 골목 그리고 600m 떨어진 건물의 옥상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각자들은 ‘그 사람’을 향해 총구와 연장을 겨누는 것이다.

‘26년’이 짜증나는 것은, 두 인물의 모호한 태도가 충분히 설명되지 못하고 있는 것에서도 발생한다. 금남로에서 누나의 끔찍한 죽음을 목격한 바 있는 정혁은 경찰로 살겠다며 ‘그 사람’의 처단에서 한 발 물러나고, 도청 진압 때 진압군으로 참여해 시민군을 살해하고 한 쪽 귀를 잃었던 상열이, 다시 ‘그 사람’의 경호실장으로 활약하다 ‘그 사람’을 지켜 자신의 살인을 정당케 하겠다는 의지 역시 급작스럽긴 마찬가지다. 잘 만들어진 영화는 어떤 인물일지라도 그 캐릭터가 살아있음을 목격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의 영화에서 정혁과 상열에게서 캐릭터의 활력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영화를 구원하는 것은 엔딩장면의 사려 깊음 때문이다.

오늘 아침에도, 교통통제의 도움을 받은 검정색 고급승용차의 행렬이 서울의 도심을 유유히 행차하며, ‘그 사람’이 죽지 않고 뻔뻔하게 일상을 살아간다는 암시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오월 광주’의 트라우마가 ‘그 사람’을 죽인다고 치유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사람’을 저격하는 것은 영화적으로 통쾌함을 줄지는 모르나 그것은 거짓 위안에 다름 아닐 것이다.

조대영(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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