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대영의 영화읽기]‘라이프 오브 파이’
국내에도 번역 출간되어 여러 독자들을 매료시킨 ‘파이 이야기’(원제: Life of Pi)는 담고 있는 내용이 쉽게 믿기지 않을 법하다. 그 내용인즉슨, 열여섯 살 인도 소년 ‘파이’가 사나운 벵갈호랑이와 함께 구명보트에 몸을 싣고 227일 동안 태평양을 표류한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소년과 호랑이가 일곱 달 이상을 구명보트위에서 공존한다는 이야기는 쉬이 이해되지 않지만, 작가인 얀 마텔은 이를 설득력 있게 표현해냈고, 독자들은 다소 허황되지만 그럴듯한 소설에 매료되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 이야기를 영화로 옮기는 것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인간이야 연기가 되지만 호랑이는 연기가 안 되니 CG의 막강한 기술력을 요구할 것이고, 문장으로는 가능했던 것을 이미지로 보여 주기엔 벅찬 설정들이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어려움 때문이었는지, 이 원작은 오늘의 영화에 이르기까지 두 명의 연출자를 거친 후에야 이안 감독의 몫이 되었다.
한 명은 ‘에이리언4’와 ‘아멜리에’의 장 피에르 주네였고, 다른 한 명은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의 알폰소 쿠아론이었다. 그러니까 쉽게 결정이 되지 않았던 영화화가 이안 감독에 와서야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이안 감독의 영화 행보는 그 폭과 깊이가 종잡을 수 없을 정도였다. 대만과 홍콩에서 ‘음식남녀’나 ‘결혼피로연’같은 가족드라마를 찍다가 할리우드의 부름을 받았고, ‘센스 앤 센서빌리티’와 ‘아이스 스톰’의 사회드라마를 거쳐, ‘라이드 위드 데블’과 같은 서부영화와 그 유명한 ‘와호장룡’을 찍었다. 급기야는 블록버스터인 ‘헐크’에 손을 댔고, 한 숨 돌리면서 ‘브로크백 마운틴’을 연출하더니, 농도 짙은 섹스신이 일품이었던 ‘색,계’로 화제를 모았다. 말 그대로 이안 감독은 닥치는 대로 영화를 찍는다는 느낌을 주었다.
허나, 난삽해 보이는 감독의 영화이력의 핵심은 코스모폴리탄이라는 점이다. 지역과 국가에 연연하지 않고, 범세계적인 영화철학을 견지하려고 노력했음을 각각의 영화 속에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인정한다면, ‘라이프 오브 파이’는 그의 코스모폴리탄적인 영화 세계가 우주와의 교감으로까지 확장하고자 하는 열망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인간과 호랑이의 227일간의 구명보트 체류기를 보여주기 위해 이안 감독이 선택한 것은 3D기술의 수용이다.
이는 망망대해에서 자연과 대결하는 파이(수라즈 샤르마)의 입장이 되도록 관객들을 위치시키고, 관객들은 가족을 잃고 호랑이와 한 배를 탄 채 태평양을 표류하는 파이의 사투를 본인의 일인 양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 극한의 상황에서 감독은 파이가 살아남는 방법에 방점을 찍는다.
구명보트에 함께 탄 호랑이는 무섭다. 이에 파이는 사고를 전환하여, 생존에 지장을 주는 맹수가 아닌, 위기를 함께 해쳐나갈 동반자로서 호랑이를 생각했던 것이다.
감독은 파이의 지혜가 범우주적임을 애써 강조한다. 어릴 적 파이가 인도의 국교인 힌두교 외에도 천주교, 이슬람교를 받아들이며, 유일신이 아닌 다양한 신을 섬긴 것은 파이의 열린 마음에 대한 암시다. 여기에다 망망대해에 떠 있는 구명보트의 배경으로 우주가 오버랩 되게 연출한 것도 이유 있는 장면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파이’라는 이름역시 무한한 우주를 의미하는 원주율 파이(π)를 의식한 이름이라고 볼 수 있다면, 분명 감독은 파이를 범상치 않은 인물로 그리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파이의 역할은 분명해진다. 신자유주의 혹은 금융자본주의의 시스템은 각각의 인간들에게 무한경쟁의 함정에 빠지도록 종용한다.
이 영화는 바로 그 구렁텅이에서 허우적거리는 관객들에게, 인간과 짐승이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깨달음 한줄기를 던지고자 했던 것이다.
조대영 (영화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