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대영의 영화읽기]‘신세계’

흥분해서 말하자면, ‘신세계’는 걸출한 영화다. 그것도 고전을 수용하여 동시대성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한국영화의 작은 축복이라 할만하다.

‘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슬로건을 박훈정 감독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여 ‘신세계’는 기존의 영화들을 창조적으로 받아들인다.

감독이 참조한 영화텍스트는 크게 세 편이다. ‘무간도’에서는 내용을, ‘대부’시리즈에서는 형식을, ‘영웅본색’에서는 주제의식을 자신의 신작 속에 녹여내기 때문이다. 반가운 것은, 이 차용이 창조적으로 용해되어 개별적인 작품으로 태어났다는 점일 것이다.

이자성(이정재)이 경찰인 강과장(최민식)의 지령을 받고 깡패조직에 잠입하여 정청(황정민)의 오른팔이 된다는 이야기는 분명 ‘무간도’를 참고한 것이다. ‘무간도’에서 서로 다른 조직에 숨어 들어간 이들이 갈등을 겪었듯이, 이자성 역시 경찰과 조폭의 경계에서 8년을 버티며 정신적인 분열을 겪는다. 이자성의 정체성 혼란이 영화의 주요 뼈대를 구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세계’는 ‘무간도’의 영향권에 있다는 것이다.

또한, ‘신세계’는 ‘대부’시리즈의 품격을 본받으려 노력하고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범죄의 재구성’이후 한국의 대중영화는 속도경쟁을 벌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데 ‘신세계’는 보란 듯이 영화의 호흡을 가다듬으며 품위를 유지한다. 쉽게 말해, 빠르게 화면을 전개시키지 않고 대상과 상황을 관조한다는 말이다. 이는 배우들의 연기력을 믿고 연기자들에게 자유를 허용한 것과 영화의 형식을 고민한 연출의지의 소산일 것이다.

더구나 영화의 종장에서는 ‘대부’시리즈의 전매특허인 교차편집을 빌려오며 프란시스 포드 코플라에게 경의를 표한다. 풀어보자면 이런 것이다. 어떤 인물이 최고의 자리에 오르려는 상황에서, 동 시간 다른 곳에서는 방해자들이 처단되는 장면을 교차시킨 배치를 말한다.

무엇보다도 ‘신세계’는, ‘영웅본색’의 주제의식인 ‘의리’에 강한 강조점을 찍는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경찰의 수뇌부인 강과장의 행동을 유심히 살필 필요가 있다. 그는 조폭집단을 일망타진한다는 일념하에 권모술수와 계략을 꾸민다. ‘스파이’를 심어 상대조직의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해 활용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실제로 그는 입수된 정보를 토대로 조폭들을 이간질 시킨다. 여기에서 희생되는 것은 부하직원인 스파이들이다. 강과장은 자신이 심어 둔 프락치들의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곤경을 이용해 협박하고, 자신의 목적과 조직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부하 조직원을 벌레 보듯 하기 때문이다. 이는 남을 밟아서 자신을 입신하려는 우리시대의 우울한 초상이 반영된 설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신세계’는 배신의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전개되는 영화는 배신에 배신을 거듭하며 우리 시대가 불신시대임을 선언하고, 상대를 속이기 위해 골몰하는 인간군상들의 격전장을 전시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골드문의 넘버2 정청이 빛난다. 양아치처럼 행동하고 건들거리긴 하지만 정청은 자신이 믿음을 준 사람은 끝까지 안고 가는 의리를 지켜낸다. 관객들은 정청의 의리에 감읍되며, 강호의 의리가 땅에 떨어진 시대를 속으로 울음 운다. 여기에 덤으로 따라붙는 것은, 선악의 구분이 의미가 없어진 시대에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전언을 달게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는 세상이 나빠졌음을 에둘러 피하지 않고 곧바로 내지르고 있다는 말이다.

박훈정 감독은 자신이 각본을 담당한 ‘부당거래’에서도 부패 되어버린 현대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기탄없이 써냈었다. ‘신세계’에서도 ‘부당거래’는 멈추지 않고 계속되고 있음을 재차 확인시키며 선한 의지가 실종된 세상을 품격 있게 고발한다.

조대영 <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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