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속으로’(2009, 비룡소)
지난 3월 22일 새벽, 그림책 작업을 꾸준히 이어온 이수지 작가가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을 수상했다. 대통령이 그를 축하하고 많은 매체에서도 인터뷰를 청했는데, 그 중 본인의 작품 세계에 대해 이야기한 부분이 흥미롭다.
“최근 느낀 것은, 제가 ‘그림책 예술’이라는 말을 정말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가까이 있는 예술이 정말 좋은 예술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말을 하는 것 같다. 특히나 아이들을 향하는 예술이라고 하면 단번에 그림책이 떠오르게 됐으면 좋겠다. 독립적 장르로서 그림책이 예술이 되었으면 한다. 저는 예술이 되고자 하는 그림책의 작가인 것 같다.”
(인터뷰-이수지 작가 “그림책이 예술이 됐으면”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035964.html)
‘그림책’을 주제로 글을 쓰던 와중 참 반갑고 또 감사한 말이었다. 그림책은 아이들을 위한 쉬운, 심지어는 유치한 책으로 받아들여질 때가 많았다. 아직도 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수지 작가는 이것을 예술이라고 표현하고 또 그렇게 되는 것 바라기를 서슴지 않는다. 그가 수상한 안데르센 상 역시 하나의 작품보다 작가가 구축해온 작품 세계를 통틀어 평가하는 상이다.
그의 작품 ‘거울속으로’(2009, 비룡소) 역시 아이들을 위한 예술이다. 이 책에는 특이한 점이 몇 있다. 글 없이 그림만으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는 점이 그렇고, 또 책의 내부가 현실과 거울 두 면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점이 그렇다. 책을 펼치면 서로 마주 본 양쪽이 완벽한 대칭을 이룬다. 독자들은 책장을 넘길 때마다 거울 속으로 들어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맨 첫 번째 장에서 주인공 아이는 홀로다. 왼쪽 페이지는 하얗게 비어있고 주인공은 오른쪽 페이지 구석에 웅크려 다리를 끌어안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다. 외로움,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얼굴이 보이지 않는 바람에 어떠한 감정도 확인할 수 없는 공허함이 느껴진다.
그러나 페이지를 넘기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갑자기 책의 제본 크기와 정확히 동일한 거울이 생겨난다. 주인공은 거울 속 자신을 보고 놀라 벌떡 일어난다. 어떠한 테두리 추가도, 배경색의 변화도 없는데 독자는 곧장 알 수 있다. 이것은 거울이구나. 그럼 어느 쪽이 ‘진짜’지? 이쪽인가? 저쪽인가? 생각하는 사이 주인공은 혼자 자신과 동일하게 생긴 이 낯선 이방인을 이해하려 고군분투한다. 놀라는 것은 잠시, 웅크려 곁눈질 하다 슬쩍 일어나 쭈뼛거린다.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어보기도 하고, 거울 속 ‘자신’에게 수줍게 손을 뻗어보기도 한다.
그리곤, 우와! 화려한 데칼코마니 무늬와 함께 두 주인공은 춤을 춘다! 물감이 양쪽 페이지에 온통 가득하고, 몸의 움직임은 자유로워 보인다. 두사람은 방방 뛰고 즐겁게 돌다가 거울의 경계를 넘어버리기까지 한다. 두 주인공은 모두 잠시 “존재하지 않게” 된다. 직후 다시 나타난 주인공들은 여전한 모습이지만 뭔가 이상하다. 더 이상 거울이 없는 것처럼 대칭되지 않는 모습으로 춤을 춘다. 이쪽은 이렇게, 저쪽은 저렇게, 각기 다르게 춤추다가 ‘진짜’ 주인공인 아이는 화가 난다. 토라져 몸을 돌렸다가, 거울을 밀어 넘어뜨린다.
쨍그랑! 두 아이의 얼굴에 모두 공포가 비친다. 거울은 깨졌고 주인공 아이는 다시 혼자 남아, 처음과 같은 자세로 웅크린다…….
그림책이라는 장르가 예술로 느껴질 수 있는 데에는 그 한계 없음이 큰 역할을 한다. 글이 적을수록 그러한데,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정해진 시야 속 형상들을 그려내고 독자들은 그 안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찾아내기 때문이다. 간혹 이야기는 중요한 것이 아니되, 작가가 작품의 시야각을 구성하는 방식은 중요한 것이 된다. 그것은 이야기의 중심이 어디에 있어야 할지를 결정한다.
종종 그림책 속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교훈을 주곤 한다. 너무 빨리 성숙해진, 혹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정확히 모르는 상태로 천진한 모습이 마음을 울리는 식이다. 교훈을 얻고, 어른으로서의 내가 무엇을 해야할지 생각하게 한다. 하지만 <거울속으로>의 주인공 아이는 철저히 자기 내면에서 움직인다. 이수지 작가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주인공으로 세우면서도 이 아이가 ‘아이라는 사실’보다 어떤 감정을 느낄지에 집중했다. 이것은 세상을 관찰하는 아이를 어른으로서 읽는 작품이 아니다.
‘쟤’는 누구야? ‘나’는 누구지? ‘진짜’는 누구고 나는 왜 외로우며 또 무섭지? 혼란 속에서 스스로를 믿거나 불신하고, 파괴하고 후회하는 일을 반복하는 일은 누구나 겪어온 일이며 어쩌면 아직도 겪고 있을 일이다. 굳건하지 못한 내 안의 거울을 부수는 일은 나이에 상관 없이 누구나 경험한다. 이것을 쉽고 정확히 그려내는 일이야말로 작가의 예술세계가 우리에게, 또 언어로 닿을 수 없는 세계 곳곳을 향해 내미는 선물이리라.
문의 062-954-9420
호수 (동네책방 숨 책방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