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책방 작은책들]유키코 노리다케의 그림책 ‘형제의 숲’
[작은책방 우리책들]유키코 노리다케의 그림책 ‘형제의 숲’
엄격한 방역지침의 끝이 보이는 시기에 결국은 확진 판정을 받았다. 전염병의 특성 때문에 집 안에 갇혀 지내는 동안 할 수 있는 것은 두런두런 떠다니는 생각을 하나씩 붙잡는 일이다. 가령 이보다 증상이 심한 사람들은 일상이 어떠할지, 누군가에게는 이것이 죽음의 병일텐데 나는 그 가능성을 알고도 이토록 평안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지,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말했던 ‘애초에 이 병이 생긴 이유’가 무엇일지 같은 것들 말이다.
전염병―특히 끝없이 변이하는 이와 같은 바이러스는 다양한 방법으로 생겨난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언론과 지식인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것은 결국 인간의 행위로 인해 자연스러운 생태 사이클을 침범당한 자연 요소들이다. 인간의 침범은 효율적이기에 유지된다. ‘다음’과 ‘발전’에 기반한 생각들. 유키코 노리다케의 그림책 <형제의 숲>(봄볕, 2022)은 이것이 우리의 삶에 무엇을 주고 무엇을 빼앗는지 알려주는 단정한 이야기다.
나무가 무성하니 우거진 숲에서 빨간 머리카락과 흰 원피스를 휘날리는 여인이 나타난다. 그는 자연과 함께 한 형제에게 다가왔다. 형제의 머리색이 각각 검정과 노랑으로 다르다는 것만 제하면 별다른 점이 없으나, 이 두 만남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펼쳐진다.
검은 머리 형제는 ‘여기 있기, 그대로 좋아서’라는 문구와 함께 빨간 머리와 손을 잡고 함께 숲 속을 거닌다. 노란 머리 형제는 ‘다음을 생각하기’라는 문구와 함께 나무를 거침없이 베어넘긴다. 빨간 머리 존재는 놀라 주춤주춤 뒷걸음질 친다.
검은 머리 형제는 여기 머물고 싶어하고, 숲을 해치지 않는 방법을 선택한다. 최소한의 자원만을 이용해 숲에서 얻은 재료로 집을 짓고, 숲이 끝나는 곳에 자리한 바다를 자신의 생활 안으로 받아들인다. 숲을 완전히 바꿔놓지는 않으나 자신만의 방법을 찾는 것이다. 빨간 머리 여인과 함께하는 생활은 언제고 그리 크게 변화하지 않는다. 낚시를 하고, 직접 먹을 수 있는 식물을 작은 텃밭에서 기르고, 이렇다 할 자극 없이 순환에 따라 ‘그대로 좋아서’ 살아간다. 그와 같은 생각을 하는 자들은 종종 조금 거리를 둔 숲의 한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자전거를 타고 서로의 집을 오가는 모습이 보인다.
노란 머리 형제는 여기 머물고 싶어하고, 가장 좋은 방법을 선택한다. 최대한의 자원을 이용해 ‘바깥’에서 온갖 물건과 방법을 들여온다. 콘크리트와 철근, 벽돌로 집을 짓고, 바닷가 앞을 메워 수영장을 만든다. 바다보다도 파란 수영장에 어울리도록 집은 화려하게 꾸며지고, 반짝이는 조명과 주차장이 생기니 사람들은 모여든다. 노란 머리 형제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신의 방법을 전해준다. 그것이 좋으니까! 숲은 점점 빠르게 깎여나가고, 평평한 땅은 더 많은 사람들을 불러모은다. 도로가 놓이면 숲은 이내 인간들의 주거지가 된다. 알록달록한 집들이 숲의 나무들만큼 무성히 모여있다.
<형제의 숲>에는 그닥 많은 활자가 있지 않다. 점점 변해가는 숲과 사람들을 크게 보여주고 한두마디를 덧붙이는 식이다. 그래서 작가는 어떤 머리색을 가진 형제가 더 ‘올바른 선택’을 한 것인지 확정하지 않는다. ‘결과에 감탄하기’와 ‘결과를 자랑하기’ 사이에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있는가. ‘거둬들이기’와 ‘불러 모으기’ 사이에는? ‘먹고살기’와 ‘부자 되기’는 또 어떤가? 하지만 커다란 종이 위에 선명한 색감으로 그려지는 그림들을 함께 보자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분명해진다.
‘여기’가 그대로 좋아서 머무르는 사람들은 자신이 사랑한 숲 사이에 파고든다. 숲이 그들의 집 자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현재에 만족하지 않는다. 언제나 더 나아갈 곳이 있고, 계속해서 나아가다 보면 지금이 아닌 어떤 것이 변화라는 만족을 가져다줄거라 믿는다. 그래서 숲은 사라지고 땅은 납작해지고 개발이 이루어진다. 이곳에는 어떤 ‘종착지’도 없다.
종착지 없는 끝없는 변화는 결국 허상의 만족을 위한 지금의 불만족을 낳는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더 편안한, 더 깔끔한, 더 괜찮은 세상을 고민하다 ‘우리’ 외의 존재들은 모두 잊고 만다. 숲에서 숨쉬는 나무들, 나무와 함께하는 새들, 작은 동물들, 벌레들… 그리곤 그들이 사라진 곳에 채워질 것들을 두려워한다. 기후위기, 생물종 다양성의 위기, 그리고 바이러스가 그것이다.
그림책의 마지막 장에서 작가는 아무 말도 없이 두 개의 풍경을 나란히 보여준다. 빼곡한 나무 사이 종종 집 몇 채가 보이는 숲, 그리고 숲이란 것은 어디에도 없이 안정적이고 잘 꾸려진 도시의 모습이다. 두 풍경 모두 참 아름답다. 달콤한 색감과 부드러운 윤곽을 보여준다. 하지만 진정으로 ‘만족’하여 머무를 수 있는 곳은 이미 정해져 있다. 두 형제의 각기 다른 마음이 보여주듯, 만족은 환경의 변화가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호수 (동네책방 숨 책방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