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봄-02]

큰 소나무가 굽어보는 자리, 김선이 어매는 오늘도 밭에서 오늘치의 공력을 다 기울이고 있다.
큰 소나무가 굽어보는 자리, 김선이 어매는 오늘도 밭에서 오늘치의 공력을 다 기울이고 있다.

“오매 인자 자기 밭에 나옴서도 마스크를 써야 하는 시상이 되아불었소. 코로나는 안 끝났어도 봄 와서 따솨진께 좋구만. 징역살이 조깨 풀려난 것 같구만.”

흙밭에 앉은 김선이(85·담양 대덕면 운암리) 어매는 “여그가 내 병원이요”라고 말한다.

“이러코 일을 해야 맘이 핀하고 좋아.”

어매네 밭은 길 건너 소나무가 듬직하게 굽어보는 자리다. 키 29미터에 수령은 350년. 몽한각(夢漢閣, 양녕대군의 증손인 이서의 재실) 들머리의 250살 잡순 또 다른 소나무와 더불어 ‘담양 매산리 소나무’(전라남도기념물 제242호)로 불린다.

“나 열아홉 살에 시집온게로 그때도 이 솔나무가 꼭 요로코 커갖고 있었어. 팽생 여그서 날마다 보제. 훤칠하니 잘 생기셨어. 하래 두 번 시 번씩 쳐다봐. 나 죽드락 보제. 나 안 보이문 그 할망구 어디 갔는고 하시겄제.”

소나무가 저만치서 항시 지켜보는 밭에서 어매는 오늘도 꼼지락꼼지락 일을 하고 있다.

“둘이 몽그려서 밭을 사고 사고”
“아파서 잘 걸어댕기도 못해. 일을 내가 많이 했어, 허기는. 팽생 꾀병을 못해. 지금도 꾀병을 못해.”

이유는 “엄살 하문 누가 받아준다요. 받아주는 사람이 있어야 엄살도 부리는 것이제.”
“집에서 십 분 걸어서 요 밭으로 와. 보행기 밀고 살살 걸어와.”

밭은 이 봄날 어매가 ‘젤로 오고자운’ 곳이다.

“인자 요거 남았어. 다른 밭은 나이를 묵어서 인자 못 하겄길래 못 가겄길래 아들한테 말했어, 팔아라. (밭을) 벌 사람이 없어. 이참에 설 안에 팔았어.”

‘팔아라’. 어매한테는 무겁고 힘든 한마디였다.

“우리는 땅이라문 눈물나고 부러뵈는 시상을 살았제. 전에는 땅 늘려가는 재미가 젤로 컸어. 영감이 온동네 논이야 밭이야 토옹 쟁기질 해갖고 벌고 놈의집살이해서 벌어서 한 마지기 한 마지기 보태나왔제. 둘이 고생고생해서 몽그려서 논 사고 밭 사고.”

영감님은 65살에 먼길 가셨다.

“맨 쟁기질만 하다 가셨제. 핀하게 밥 한끄니를 못 묵고 일만 일만 하다가. 일하는 모습으로만 떠올라. 소 갖고 하릿내 놈의 밭이야 논이야 다 갈아주고.”

해마다 봄이면 영감님과 더불어 쟁기질하던 소와 마지막으로 작별했던 날도 기억한다.

“쥔이 죽어불고 없응께, 인자 쟁기질 할 사람 없응께 담양장 소전으로 팔러갈라고 소차가 왔는디 소가 눈물을 펄펄 흘리고 차로 안 올라갈라그래. 겨우 실어갖고 갔는디 담양장에 내려노문 딱 걸어들어가야 한디 차에서 물팍을 꿇고 인나도 안했다요. 아들이 속상해서 얼릉 싸게 폴고 와불었어. 아들도 울고 왔제. 한 식구인디, 항. 소가 울던 얼굴도 아들이 울던 얼굴도 눈에가 시방도 환하제.”

“잠을 자도 풀이 어른어른거려서 잠이 안와. 일을 해불어야 개안하제.”
“잠을 자도 풀이 어른어른거려서 잠이 안와. 일을 해불어야 개안하제.”

“잠을 자도 풀이 어른어른거려서 잠이 안와”
“거그를 인자 집을 두 채 지슨다요. 한 보름 전에 마지막 농사 지은 시금추 캐러 갔제.”

마지막이란 말에 서운함이 서린다.

“못 댕기겄능께 팔기는 팔았는디 맘이 서운하제. 몽그리고 사갖고 영감이 땀흘리던 땅인디. 날마다 내 손으로 따듬던 밭인디.”

“나, 마지막으로 왔소”라고 그 밭에도 고하고, 돌아가신 영감님께도 고했다.

“아들은 맨나 일하지마라그래. 호맹이도 내불고 밭이 안 보이는 디로 고개 돌리고 댕기라고 쳐다보도 말고 댕기라고 근디, 나는 잠을 자도 풀이 어른어른거려서 잠이 안와. 뽑아불어야 개안하제. 일을 해야 시원하제. 인자 요리는 꽤 숨꼬 저 욱으로는 꼬추 숨꼬 고구마 땅콩 숨꼬….”

빈밭에 어매의 계획이 옥잘옥잘 심어진다.

“아직 이녁땅이라고 말할 땅이 있응께 좋제. 손발에 흙을 몬쳐야 존 것이여. 사람이 삼시롱 공력을 들임시롱 살아야제 놀기만 하문 재미가 없제.”

글 남신희 기자 사진 박갑철 기자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드림투데이(옛 광주드림)를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드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