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봄-03]

-“인자 농사 시작이제. 촌은 시방 숭굴 때여. 머이든 숭그문 차차로 되아가는 거 보는 재미가 좋제.” 자동떡.
-“인자 농사 시작이제. 촌은 시방 숭굴 때여. 머이든 숭그문 차차로 되아가는 거 보는 재미가 좋제.” 자동떡.

“시금추 잔 주까아?”

낯선 얼굴을 보고 암시랑토 않게 그 말이 첫인사인 자동떡(85·담양 대덕면 장산리).
“인자 밭일 시작했어. 망옷 내놨응께 농사 시작이제. 촌은 시방 숭굴 때여. 요맘때문 흙이 사그락사그락 보드라와져. 땅 녹으문 할 일이 따뿍 찼제. 인자 요놈 망옷 깔아서 ㅤㄲㅙㅅ두럭 쳐야제. 땅콩도 숭그고. 머이든 숭그문 차차로 되아가는 거 보는 재미가 좋제.”

“사람 중헌 줄 아는 디서 살아야써”
“쪽파가 기운이 없이 물짜더니 인자 쪼깨썩 깨나요. 강한 것들이여. 그 춘 것을 다 전디고. 다 애를 쓰고 전디고 살아.”

애쓰고 저를 스스로 살리고 지키고 사는 생명들에 바치는 찬사.

“요런 것들이 막 깨난디 어찌고 방에 들앙거 있겄어. 딜다 보러 오제. 봄 돌아오문 다 깨나. 죽었다가 살아나. 사람도 그러문 얼매나 좋으까. 몬자 간 사람들이 봄 따라 돌아오문 얼매나 좋아.”

영감님은 가신 지 오래.

“우리 영감은 육십아홉에 가고, 시어무니는 아흔시살 잡솨서 돌아가셌어. 시어무니가 아들을 몬자 보낸 거제. 죽고사는 것을 맘대로 하가니. 나 스무 살 묵어서 시어무니 만났는디 정이 들었제. 오래 같이 사노라니 의지가 많이 되았어. 좋은 분이었제. 맘씨가 좋아. 나는 시집살이 안하고 살았어.”

‘좋은 사람’이란 어매 말에 따르면 “나한테만 말고 누한테든지 좋은 사람”.

“부자나 땅 있제, 전에는 땅이 얼매나 있가니. 그래도 시어무니랑 시집 사람들이 존께 살았어. 애래서 시집와서 애기같이 살았는디, 나를 귀하게 봐줘서 시집살이를 안했어. 돈도 필요없어.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인디, 무엇보다 사람 중헌 줄 아는 디서 살아야써. 돈 많애갖고 천덕꾸러기 대접 받으문 뭐혀.”

“사람을 귀허게, 중허게 아는 것, 나도 시어무니한테 고런 것을 배왔제”라고 말하는 어매는 “나도 물짠 사람이 아니여”라고 단언한다.

“놈한테 독하게 하고 놈 듣기 싫은 소리 해싸꼬 그러들 못혀. 못 그려. 놈이 허자그문 허자근대로 하고 도라글문 도라근대로 주고.”

“그러코 살았더니 내 맘에 맺힌 디가 없어”라며 웃는 어매.

“요것은 안할 것을 했어”라고 말하는 것은 눈썹 문신이다.

“내가 눈썹이 없다고 외솔려(외손녀)가 이것을 히줬어. 나를 히준다고 지랄하길래 안 한다고 ㅤㅎㅣㅆ는디 너모나 꺼매갖고 부끄롸. 너모 꺼먼께 징그라. 빼도란께 못 뺀갑서. 요까짓것이사 뭐 째까 후회되다 말제. 나는 인생에 후회 없어.”

“팽생 손에서 흙이 안 떨어졌어.”
“팽생 손에서 흙이 안 떨어졌어.”

“팽생 눈앞에 젤로 가찬 것이 땅이고 흙이여”
“나는 기우른 사람 싫어. 할 일은 기언치 해불어야제. 옛날에는 젊은께 일하고 애기들 갈치고 그것이 재미였제. 어찌케라도 해서 애기들 배는 안귐길라고 애를 썼어. 그래도 학교 갈 때 돈 도라글 때 못줄 때는 많앴제. 도라글 때 못 줘서 울고 가문 걸리제. 부모들은 다 그래.”

자식이 흘린 눈물은 평생 못 잊노라는 어매.

“그래도 땅이 있었기에 자식들 오남매 갈치고 믹이고. 요로코 존 놈을 믹힐 수가 없어. 아까운께 지어야제. 땅이 있는디 어찌코 안하고 살아. 믹히문 안되는 책임은 없는디, 믹히문 보기 싫제, 항. 아그들은 하지 마라근디….”

일을 놓지 못하는 것도 욕심이라 말한다.

“욕심이제, 항. 근디 욕심 버리기가 쉽가니.”

이유는 또 있다.

“애기들 줄라고 하제 나만 묵고 살라문 뭐더러 혀.”

아무 것도 없는 데서 뭐이라도 만들어내고 키워내는 그 재미, 자식들한테 보내주는 그 재미를 포기 못해 어매는 올 봄에도 밭고랑에 앉았다.

“벵원에 안 둔너 있고 밭에 있은께 좋제. 팽생 손에서 흙이 안떨어졌어. 우리는 팽생 눈앞에 젤로 가찬 것이 땅이고 흙이여.”

글 남신희 기자 사진 박갑철 기자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드림투데이(옛 광주드림)를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드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