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대영의 영화읽기]‘감시자들’
‘감시자들’은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생각나게 하는 영화다.
얽히고설킨 드라마를 배제한 채, 형사(박중훈)가 범인(안성기)을 뒤쫓는 단출한 이야기를, 영화적 시각화의 힘으로 극복했던 성공사례가 ‘인정사정 볼 것 없다’다.
‘감시자들’은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성공한 실험을 참고한 영화처럼 보인다. 튼튼한 플롯을 기본으로 하는 안전한 영화보다는, 남들이 하지 않은 것을 실행하려는 도전정신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감시자들’의 이야기는 단조롭다. 범죄자집단이 있고, 이를 추적하는 감시자들이 이들을 소탕하는 것이 주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감시자들’은 대중영화의 성패를 결정짓는 주요 요소들을 배제하는 용기를 실천하며 다른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먼저 주목을 요하는 것은, ‘캐릭터’와 연관된 것이다. 중심인물의 성격구축에 있어서 이 영화는 플래시백으로 인물들의 과거를 설명하는 법이 없이, 그때그때의 상황 속에서 인물이 살아있도록 집중하며 기존의 영화와 선을 긋는 것이다.
남녀 간의 연애전선을 형성시키지 않는 것도 이 영화가 앞선 영화들과 확실한 구별점을 갖고자 하는 시도일 것이다.
또한, 신파적인 요소를 극도로 제안하고 있는 것도 차별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다람쥐(이준호)가 제임스(정우성)의 일격에 비명횡사 했을 때의 연출이 대표적인데, 이때의 연출톤은 건조함을 유지하며 관객들에게 억지눈물을 강요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감시자들’은 앞서서 만들어진 수많은 한국의 대중영화들이 안전판으로 숨겨두었던 장치들을 거둬낸 채 용맹정진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감시자들’은 차포(車包)를 떼고 장기를 두고 있는 셈이다. 그 차포의 부족분을 매우는 것은 쉴 새 없이 움직이는 활극의 율동성과 배우들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도시를 감시하는 감시카메라를 빼놓을 순 없을 것이다. 이 영화가 상상해낸 가상의 경찰 특수조직인 감시반은, 범인들의 위치를 파악할 수만 있다면 CCTV는 물론 휴대폰 위치추적 장치 등을 동원하여 범죄자들을 추적하고 있는데, 이는 감시기구들이 우리시대의 판옵티콘(Panopticon)임을 영화적으로 선언하는 순간인 것이다.
이밖에도, 이 영화가 서울이라는 도시를 액션영화의 공간으로 살려내고 있는 점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제임스의 지휘하래 일당들은 은행을 털고, 이를 저지하려는 경찰들의 추격전이 국제도시의 복판에서 펼쳐지는 형국은 분명 시청각적 쾌감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감시자들’은 기존의 익숙한 것들과 결별하고 새롭게 도전해 보겠다는 의지로 충만한 영화다. 한데 그 도전정신이 무르익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제임스 일행이 은행을 털면서 펼쳐졌던 도입부의 액션신은 분명 산뜻한 일격이었다. 이 회심의 한 방은 다음에 무엇을 보여 주려나 하고 관객들의 기대심리를 한껏 높였다. 한데도 이후에 전개되는 액션신은 도입부의 강렬함을 극복하지 못한다. 그리고 감시자들을 곤혹스럽게 해야 할 일당들이 예상 가능한 수준에서 일망타진되며 이야기의 동력을 잃어버린 점도 아쉽다. 또한 제임스의 최후가 관객들을 매료시킬 만큼 절박하지도 못하다. 멋진 악당에게는 절절한 사연이 필요한 법이다.
‘감시자들’은 플롯의 열세를, 차별화된 영화적 장치로 만회해 보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한 영화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이야기의 힘을 극복하려고 부단히 노력했지만 결국 이야기의 중요성을 곱씹게 만드는 영화가 ‘감시자들’이다.
조대영 (영화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