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봄-04]

박옥자 어매한테 이 봄은 ‘쑥의 시간’. 걸음걸음 쑥을 찾아가는 행로가 날마다 이어진다.
박옥자 어매한테 이 봄은 ‘쑥의 시간’. 걸음걸음 쑥을 찾아가는 행로가 날마다 이어진다.

<다들 살아 있었구나./ 너도,/ 너도,/ 너도,/ 광대나물/ 너도,// 그동안/ 어디 숨어서/ 죽은 듯/ 살아 있었느냐…>(김형영 ‘봄봄봄’ 중)

봄 들녘엔 호명할 것들이 지천이다.

낮게 쭈그려 앉으면 ‘너도, 너도, 너도…’라는 반가운 눈마주침의 연속.

양지바른 자리마다 봄까치꽃도, ‘나발쟁이’나 ‘장구재비’라 부르는 광대나물도 한데 어우러져 ‘나도, 나도, 나도…’라고 안부를 외친다.
어긋나는 것 많은 세상에 어김없이 오는 봄이 볼긋볼긋. 푸른 아우성처럼 쑥도 쑥쑥.

봄날의 쑥이 설에 손지들 세뱃돈이 되고
“아이갸. 나를 머더러 찍어. 요 쑥 보시요. 쑥 찍으시요.”

물리치는 말이 ‘아이갸’라는 나물처럼 순한 감탄사인 박옥자(80·담양 대덕면 운암리) 어매가 한 줌 쑥을 꽃처럼 내어민다.

“따숩구레 나와봤어. 허리가 굽어갖고 돌돌이(보행기) 갖고 댕기제만 봄 온께 맘이 활발해지제.”

겨우내 봄을 기다렸노니.

“사람은 일한 디다 추미를 붙여야 살아. 인자 한하고 들판에 엎드려 살아. 사방 디를 기어댕김서 쑥을 모태. 해마다 캐제.”

어매한테 이 봄은 오롯이 ‘쑥의 시간’. 걸음걸음 쑥을 찾아가는 행로가 날마다 이어진다.

“쑥 캘 때는 날마다 나와. 그래야 모트제. 캐다노문 우리 영감님이 옥상에다 몰래. 몰리는 데도 공력이 들어가제. 파싹파싹 몰래서 담고 담고 한께 오져. 한 푸대에 스무 근씩을 담은디 작년에 푸대가 열세 개 나왔어. 용달차로 한나여. 사람들이 떡 할라고 사가. 그놈 벌어서 설 쇠고 손지들 세뱃돈 준께 오집디다.”

봄날의 쑥이 설에 손지들 세뱃돈이 되었다.

자루처럼 큼지막한 주머니 달린 앞치마를 허리춤에 차고 나서는 것이 어매의 봄날 행장이다.

“요 주머니 다북다북 채와가는 재미가 있제.”
다른 욕심은 채울 겨를 없다.

“요 주머니 다북다북 채와가는 재미가 있제.”
“요 주머니 다북다북 채와가는 재미가 있제.”

“땅 없어. 팽생” 온 들녘을 내 땅처럼
“내가 오남매 막둥이여. 친정에서는 고생 안하고 살았제. 시집 온께 땅이 하나도 없어. 끄니 때문 시아바니가 당신 배가 불러서가 아니라 꼭 절반만 잡숫고 정제로 밥을 갖다줘. 행이나 미느리 배 곯을깨비. 꼭 당신 밥그륵에서 절반을 갖다줘. 미느리를 생각하고 냉개다준 것이제. 참으로 존 양반이셨제.”

‘밥그륵의 절반’. 내내 식지 않을 그 따순 마음을 며느리한테 남겨두고 가셨다.

“우리는 땅 없어. 팽생.”

그래서 어매는 봄마다 논둑밭둑 온 들녘을 내 땅처럼 걷고 또 걸으며 쑥을 캐고 모튼다.

“옛날에는 봄이문 쑥 캐서 쑥밥도 해묵고. 쑥 삶아갖고 뽈깡 짜서 밥 욱에다 엉거. 옛날에 불 때서 밥할 때는 초벌 때놨다가 밥 퍼지라고 나중에 또 한 벌 때. 밥을 재짓는다고 그래. 그때 뽈깡 짠 쑥을 밥에다 엉거서 포옥 쪄. 소금을 섞으든지 양님장 찌클어갖고 비베묵제.”

쌀이 부족한께 밥양을 늘쿨라고 쑥밥을 해묵던”

그 시절 봄날의 기억도 쑥 캐는 들녘에서 다시 돋아난다.
“식품공장도 댕기고, 넘들 밭에도 일하러 댕기고. 애를 쓴다고 써도 사는 것이 푸지들 못했어. 애기들이 학교 댕길 때도 차비를 못 준께 여그서 창평까지 걸어서 댕갰어. 넘의집 애기들은 버스 타고 갈 때. 시상에 그 돈을 못 대서 그 고생을 시키고. 근디 애기들이 다 착하고 얌잔해. 엄마 고생했다고 엄마배끼 몰라. 그거이 눈물나.”
글 남신희 기자 사진 박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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