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봄-05]

봄볕 봄꽃 환한 자리. 바구리 속에도 봄이 한가득.
봄볕 봄꽃 환한 자리. 바구리 속에도 봄이 한가득.

봄햇살은 온통 여기로 모여들었나. 쟁글쟁글 부산스럽고 환하다. 깔끄막진 작은 밭, 온식구가 나물 캐기에 나섰다. 구례 계산리 유곡마을에 사는 안종택(91), 차양순(86) 부부.

“설에 부산 딸들네 가서 내∼ 있다가 인자 집에 왔어.”

두 달만에 돌아온 집. 왔더니 집에 봄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러코 큰중 몰랐더니 아조 많이 컸소. 오진꼴 보요.”

집 앞의 둔덕에 머위가 수런수런 피어나 있었다.

“머구 묵어야 입안에 봄이 오제. 너무 애린 것은 아직 쓴맛이 안 난께 맛이 없고, 너무 쇠아불어도 보드랍들 않제. 지금이 마치 좋아.”

딸한테 들려보낼 머위 보따리 채우기에 온식구가 나섰다. 손이 여럿이라 금세 수북수북.

“머구 싸서 보낸께 좋소. 어매 아부지 모셔다드린다고 사우랑 딸이랑 같이 와서 다시 부산으로 돌아갈 참인디. 봄에 온께 줄 것이 있어서 좋소.”

“우리 딸한테 머구 싸서 보낸께 좋소.” 안종택 어르신.
“우리 딸한테 머구 싸서 보낸께 좋소.” 안종택 어르신.

“나한테 앵긴 사람은 다 주고자와”
“여가 지픈 산골이요. 평생 안떠나고 살아왔제. 옛날에는 찻질도 없고 쫍장한 논두럭새로 걸어댕갰어. 장도 멀고 한나절내 걸어가야 읍에 가고. 등거리에 지게자국 생기도록 지게로 지고 댕갰소. 지게로 농사져묵고.”

지게자국 배기도록 짊어졌던 고생으로 오남매를 키워 세상으로 내보냈다.

“젊었을 때는 일만 일만 하니라 서로 벌로 살았제. 늙어지문 서로가 중한 줄 알아.”
무탈하니 함께 머구잎 뜯는 이 봄날 하루의 소중함을 안다.

“옛날에는 봄에 산천에 돋아나는 것은 다 해묵었제. 묵을 거시 없응께 봄 돌아오문 반가와. 쑥도 뜯어묵고 너물이라도 묵응께.”

“한 주먹 갖다 잡사”라며 기어이 들려주는 머위. 한 주먹이 한 자루다.

“나한테 앵긴 사람은 다 주고자와. 처음 보나 두 번 보나 사람은 다 똑같애. 똑같이 귀하제.”

오늘 처음 마주친 낯선 행인을 ‘귀인(貴人)’으로 보듬는 말씀.

“한 주먹 갖다 잡사. 나한테 앵긴 사람은 다 주고자와.” 차양순 어매.
“한 주먹 갖다 잡사. 나한테 앵긴 사람은 다 주고자와.” 차양순 어매.

“머구이파리는 쌍곰하니 된장에 무쳐묵으문 맛나. 너무 매 삶지 말고 샛포랗게 말캉하니 삶아갖고 꼬옥짜서 털어서 쌈싸묵어도 맛나. 봄너물은 다 약이라요. 약은 쌉씨름한 법이제. 쓴맛으로 묵어. 오래 산 사람들은 그런 맛을 알제. 애린 사람들은 그 지픈 맛을 모르제. 쓴맛 단맛 다 저꺼봐야 인생이여.”

“미나리 먹고 컸소? 머위 먹고 컸소?”
<…이가 나기 전부터 미나리를 먹은 아기들은 쓴맛에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그 아이들은 나중에 “쓰기로 치면 인생 같은 미나리”라고 말할지도 몰랐다. 이가 나기 전부터 머위를 먹은 아기들은 미나리를 먹으면 너무도 행복해했다.…진저리를 치며 머위를 먹어 본 아이들은 쑥이 얼마나 고소한지를 알고 있었다. 쓰디쓴 머위에 비하면 미나리는 어찌나 달고 쑥은 어찌나 고소한지.>(공선옥 ‘세상의 쓴 것’ 중)
그 글의 끝은 <바로 이 맛이야, 쓰기로 치면 인생 같은 머위라, 아 달다!>
이 봄날, 묻는다.

“미나리 묵고 컸소? 머위 묵고 컸소?”
글 남신희 기자 사진 박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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