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책방]‘구름의 나날’ (2022, 오후의 소묘)
[동네책방]‘구름의 나날’ (2022, 오후의 소묘)
우울한 감정을 이야기하기는 쉽다. 물론 본질까지 파고들어 솔직하고 내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어렵겠으나, 축축 처지고 무기력하고 파괴적인 생각들을 그림이나 활자로 표현해내는 것은 어느 분야에서든 창작을 하는 사람이라면 수십 수백 번쯤 시도해온 것이다. 그리고 제법 많은 경우, 불행을 “소재”로만 사용한다는 한계를 넘지 못하고 비판받는다. 그러한 불행은 해결되거나 직시하는 기회를 얻지 못한 채 불쾌감으로만 남는다.
알리스 브리에르아케의 <구름의 나날>(2022, 오후의 소묘)는 이렇듯 창작자의 구미를 돋구고 또 위험에 빠뜨리는 우울한 감정을 구름으로 표현한 짧은 그림책이다. 전체적으로 무채색에 가까운 색감을 띤 이 책은 주인공이 아침에 잠에서 깨는 장면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조금 이상한 날들이 있어요.
일이 풀리지 않고
이유도 알 수 없는.
<구름의 나날> 중에서.
벽에 걸린 시계는 7시를 가리키는데 손목시계는 그에 맞지 않는다. 주인공은 태엽을 돌려 제대로 맞추려다 결국 손목시계를 풀어둔다. 하루 일을 시작하려는데 머리통 위부터 중안부까지 흐릿한 구름이 가로막고 있다. 주인공은 앞을 볼 수 없다. 우울이 찾아온 것이다. 축축하고 흐릿한 것이 눈앞을 가로막는 감각으로 작가는 우울을 표현한다. 제목이 우울의 나날이 아니라 구름의 나날인 것도 그런 연유다.
구름은 거기 계속 머물러있다. 주인공은 그것을 조용히 무시하기로 한다. 기분을 좋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에도 ̄그가 바이올린을 연습할 때도, 반려 고양이와 함께 있을 때도 구름은 떠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곧이어 주인공 주변의 고양이에게도, 바이올린에도 구름이 옮겨붙는다.
넘어질 수도 있어요.
멈추어 기다리는 게 나을 거예요.
<구름의 나날> 중에서.
주인공은 눈물을 조금 흘리고 잠자리에 들지만 구름 역시 멈추지 않고 따라온다. “깊은 밤 폭풍으로 천둥으로 악몽으로 바뀌”면서 주인공을 괴롭힌다. 문밖에 나란히 앉은 고양이들은 주인공을 돕지 못한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어보니 구름이 걷혀있다. 주인공은 다시 바이올린을 집어 들고 연주를 시작한다. 꽃이 피고, 아름다운 것들이 돌아온다.
<구름의 나날>은 벗어날 수 없는 우울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것이 영원한 절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잠자리에서마저 악몽으로 고생하고 온종일 무엇에도 집중할 수 없을지 모르나 언젠간 구름이 걷힌다는 것을 보여준다. 표지에서부터 주인공은 구름에 휩싸여있지만, 그리고 이야기가 끝나기까지도 버석버석한 색감이 밝아지는 극적인 일이 벌어지지는 않지만, 다시 아름다운 것들을 즐길 수 있을 때가 온다. 이 우울한 시간에 가장 필요한 것이야말로 아름다운 것들이 아닌가.
우울한 감정에 휩싸이다 보면 어떻게 해도 괜찮아지지 않을 것 같은 순간이 온다. 잠시 괜찮아지더라도 다시 우울감에 빠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항상 똑같은 굴레에 갇히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눈 앞을 가린 우울을 흩어내려 애쓰는 사람들은 쳇바퀴가 아니라 나선형 계단을 오르는 중이다. 악몽과 폭풍까지 견디고 나면 흩어지는 구름처럼, 마음 한 켠의 선택 하나에 거짓말처럼 다시 아름다운 것을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나에게 그러한 행운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내일, 또 그다음 날, 또 그다음 날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우리의 구름과 공존하는 방법이다.
호수 (동네책방 숨 책방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