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이 만난 사람]아파트 관리비 지킴이 정현수 씨
“가장 잘 아는 일부 관리소장의 전횡 막기 위해 필수”
2년 전 감사서 입대의 회장까지…직장도 관둬
사람을 통해 이 시대와 광주를 들여다보고자 기획된 ‘드림이 만난 사람’이 ‘다시’ 시작됩니다.
2007년 10월10일 첫선을 보인 ‘드림이 만난 사람’(드만사)은 3년 7개월 동안 모두 178명의 사람들을 만났고 이후 중단됐었습니다.
본보는 앞으로 ‘드림이 만난 사람’을 통해 다시 사람들을 만나겠습니다. 광주를 비춰주는 등불 같은 사람, 광주가 가야 할 길을 일러주는 ‘길라잡이’같은 이들이 우리가 만날 사람들입니다.
그를 만나 그가 살아온 길, 그가 현재 서 있는 길, 그리고 그가 앞으로 가야 할 길은 어떤 것인지 들어보렵니다. 꼭 특별한 사람일 필요는 없습니다. 평범하지만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면 누구든 만나겠습니다. /편집자주/
국민의 70%가 공동주택에 사는 세상이다. 아파트 관리비 내역서를 매달 받지만 수선유지비, 장기수선충당금 등이 어떻게 쓰였는지 제대로 아는 주민이 얼마나 될까?
이 같은 현실을 문제로 인식하고 관리비 절감을 위해 애쓰고 있는 시민이 있다. 광주 남구 방림휴먼시아의 입주자대표회의장 정현수 씨(만 48세).
2년 전 감사로 첫발을 들여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 두고 관리비 절감을 고민하고 있는 그를 최근 방림휴먼시아 입대위실에서 만났다.
그는 “공동주택법을 잘 아는 입주자 대표회의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그렇지 않으면 아파트 관리비는 줄줄 샐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가 경험한 바 아파트 관리비 절감을 위해선 관리소장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는 “주민을 대신해 일을 하고 관리비를 절약하기 위해 공동주택법을 가장 잘 아는 관리소장을 법적으로 채용하도록 돼 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관리소장의 역할은 막중하다. 아파트 관리를 위해 필요한 모든 비용 관리가 그의 임무다.
아파트 운영을 위한 관리, 유지, 보수, 개량, 교체 등에 비용을 집행하는 관리비부터 각종 경비의 청구, 수령, 지출 등 각종 재정 업무를 포함한다.
또한 하자 발견, 하자 보수 청구, 수선 계획 조정, 시설물 안전 관리계획 수립 등을 관리하고, 비용이 수반돼야 한다. 입주자 대표회의 의결을 거쳐 청구하고 집행하는 역할도 그의 몫이다.
하지만 현실 속 그가 목격한 바는 주택법을 가장 잘 아는, 일부지만 관리소장이 각종 불합리의 온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정 회장은 “이러한 비리를 막고 관리비를 허투루 쓰여지지 않게 하기 위해선 아파트에서 의결권을 지닌 입주자 대표들이 주택관리법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제14조(입주자대표회의의 의결방법 및 의결사항 등) 1항에서는 `입주자대표회의는 입주자대표회의 구성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상당수 사람들이 대표라는 타이틀, 완장 용도로 동대표를 지원해 일부 관리소장에게 휘둘리는 경우가 많다”는 게 정 씨의 한탄이다.
“주민 대표들이 완장 외 관심 없으면 큰 일”
그는 “나 자신 또한 누구나처럼 아파트에 관심이 없었다. 지금 아파트에 10년 넘게 살면서 관리사무소를 와본 적이 없었다”면서 “하지만 어디선가 자꾸 들려오는 이야기들, 내부의 다툼, 잦은 경찰 출입 등 상황을 목격하면서 아파트 감사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2년 전 얘기다.
정 회장은 “실제 경험해보니 문제가 많았다”면서 “입주자대표회의 의결 없이 안건을 상정하고 직원 채용과 전자입찰을 통하지 않은 수의계약 등이 관리소 주도아래 이뤄지는 일이 있었다”고 했다.
자신의 아파트의 경우, 300만 원 이하 공사는 수의계약이 가능하지만, 그 이상의 경우 전자입찰을 통해 사업자를 선정토록 돼 있다.
그는 “수의계약이라도 2개 이상의 비교견적서를 받아 입주자대표회의 의결을 통해 결정해야 하지만 의결 회의 없이 단독으로 결정하고, 전자 입찰을 통하지 않은 쪼개기 공사도 만연했다”고 과거 사례를 거론했다.
“동대표들이 공동주택법을 잘 인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 법을 가장 잘 아는 관리소장 일부가 이같은 부조리를 조장하는 경우가 비일비재 하다”고 판단한다.
2년 전 아파트 감사 당시 18가지 문제점을 발견했다고 한다.
정 회장은 “이런 과정 속 더 공부를 하게 됐고, 당시 문제가 많았던 관리소장과 직원들은 전부 바뀐 상태”라고 전했다.
그는 작년 7월 1일 입주자대표회장이 돼 1년여 동안 관리비 절감을 위해 노력해왔다.
자신의 아파트는 1071세대인데, 안건에 대해 주민투표를 요구하면 가장 많이 참여할 때도 300세대에 불과했다.
그는 “주민들에게 아파트 내 공사를 할때 1/N이라고 하면 얼마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노후화되면 1/ N 해야 할 일이 수백가지·수천가지가 된다”면서 “그 비용이 결코 적지 않다”고 강조했다.
“1000만 원 견적 공사 직접 하니 100만 원”
최근 입주자대표회의 의결을 통해 설치한 벤치 천막이 실증 사례다.
천막 설치를 위해 처음 받은 견적은 1000만 원이었다. 하지만 정 회장이 인터넷을 찾아보고 부품을 조달해 관리사무소 직원들과 직접 설치하니 95만 원에 공사가 끝냈다고.
만약 1000만 원에 공사를 진행했다면 1000여 세대가 1/N을 해 각 1만원씩 부과됐을 터. 하지만 정 씨의 노력으로 세대당 부과금액 1000원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는 “이렇게 일을 한다고 월급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관리사무소 직원들은 공사를 맡기는 것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면서 “이같은 상황을 입대의가 알아야 대안을 마련하고 관리비를 절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노력의 결과로 자신의 아파트는 최근 남구청이 선정한 우수관리 단지가 됐다.
그는 제도 개선의 필요성도 제기했다.
정 회장은 “동 대표는 봉사활동 개념임에도 2년에 1번 전과 조회를 하나, 관리소장은 하지 않는다”면서 “이곳에서 비리로 인해 해임된 소장이 다른 아파트에서 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계도기간·자숙·정지 등의 규제가 없고 과거 이력 조회 등의 제도 또한 없다면 지난 일들이 계속 반복될 것”이라고 호소했다.
그의 포부는 관리비 절감을 위한 조직적인 대응이다.
“젊은이들이 주축이 되어 아파트를 관리감독할 수 있는 단체를 만들고 싶다”는 것. 그는 “대표들에게 적정 수준의 급여를 주며 비리가 있을 시 처벌도 강화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용기를 주며 북돋아준 주민들이 있어서였다”면서 “오랜 시간 흘러 뒤돌아봤을 때, 공동체를 위해 봉사했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 자체에 뿌듯해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박현아 기자 haha@gjdrea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