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순 호남의 명산](4)완주 천등산(707m)
짧지만 강렬한 암릉 산행, 지질 공부 재미도 쏠쏠

완주 천등산 개념도.
완주 천등산 개념도.

 전북 완주 천등산天燈山(706.9m)은 대둔산 도립공원지구에 포함되어 있다. 대둔산大屯山(878m) 의 `작은집’ 정도로 취급되지만 지질학적으로 보면 천등산이 대둔산의 까마득한 조상 뻘이다.

 한반도 암질 중 가장 넓은 범위를 차지하는 대보화강암은 2억 년 전 중생대 공룡이 뛰어놀던 쥐라기에 생성되었다. 화강암은 지하 1만m 이상에서 마그마가 땅속에서 서서히 식으면서 굳어지므로 암질이 조밀하고 단단하다. 선캄브리아시기에 지각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암석이 땅 위로 솟아오르며 산맥이 형성된다.

 산의 형태는 바위로 존재하다가 오랜 세월동안 비와 식물에 의해 풍화되어 흙이 되고 모래가 되는 과정을 거친다. 즉, 바위산이 변하면서 육산(陸山)이 되는 것이다. 700만 년 후면 완주 천등산이 사라질 수 있다는 상상이 가능하다. 지구 표면의 온도는 평균 25~30도지만 지구 내핵의 온도는 5,000~6,000도 정도로 태양의 표면 온도와 비슷하다. 끊임없는 지각운동으로 동해안은 마그마가 1만 년에 1m씩 밀고 올라오는 현재 진행형이다.

손과 발을 모두 사용해야 하는 임릉구간
손과 발을 모두 사용해야 하는 임릉구간

 다듬지 않은 자연미 생생한 암릉

 천등산은 산 전체가 괴목동천(옥계천)이 둥글게 감싸고 있고, 주 능선이 동서로 똬리를 틀고 있는 모양이다. 굵은 암봉들이 열주처럼 도열한 대둔산에 비해 천등산 암질은 노화가 많이 진행된 닭의 볏같이 생겼다.

 천등산은 화강암이 불꽃처럼 이글거리는 화산(火山)이다. 천등산 아래 진산면은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의 고향, 그의 호가(火山)이다. 풍수연구학자들은 흔히 하는 “바위 모양이 하늘로 솟아있으면 기도빨이 좋다”고 말한다. 그래서 영암 월출산, 남해 보리암, 계룡산, 대둔산 등과 함께 천등산도 같은 대접을 받는다.

 천등산에는 리지 수준의 암봉이 많아서 손과 발을 사용해 암릉을 오르는 짜릿함이 있다. 슬랩지대 표면이 미끄럽지 않고 암봉에도 홀드가 많아 완전 초보만 아니라면 충분히 오르내릴 수 있다. 물론 우회길도 있다.

 산행 입구는 원장선마을이다. 천등산 관광안내도에는 정상까지 3.95km라고 적혀 있다. 등산로는 거의 일방통행로나 다름없고 주요 지점마다 거리와 방향이 적힌 이정표가 잘 설치되어 있다.

 1.3km지점 갈림길에서 오른쪽 `기도터’를 지나 감투봉으로도 연결되지만, 왼쪽 `정상’ 이정표 방향으로 꺽는 것이 좋다. 이 방향이 천등산의 매력이 몽땅 몰려있는 구간이다.

 태극 모양으로 흐르는 괴목동천 주변의 풍광이 그림같다. 물이 맑고 구슬과 같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라 하여 `옥계천’이라고도 부른다. 여름철 피서 명소답게 계곡 주변에는 유원지, 펜션 등이 많다.

 암벽에는 노송들이 수석의 분재처럼 뿌리를 박고 있어 산수화 같은 풍경을 만들어 낸다. 노송들과 바위는 치열하게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다. 소나무 뿌리가 바위 틈새를 파고들면 수분이 침투되고, 결국 바위가 부서지고 점차 풍화가 진행된다.

 정상까지 크고 작은 바위들이 즐비해 길을 쉽게 내주지 않는다. 545봉은 통바위인 감투봉과 대둔산을 동시에 바라볼 수 있는 최고의 조망터다. 감투봉에서 안부로 내려갈 때 추락하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정상에는 잡목이 많아 북쪽 방향만 조망이 열린다. `천등(天燈)’이라는 이름은 후백제 견훤(甄萱 867~936)에게서 유래한다. 견훤이 천등산 기슭에 용계산성을 쌓고 적군과 싸우고 있을 때 대둔산 용굴에 산다는 용이 닭 우는 소리를 냈다. 그러자 천등산 산신이 환한 빛을 내서 앞길을 밝혀주었고, 견훤은 전투에서 승리했다. 이런 연유로 `하늘의 등’이라는 뜻의 `천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전해진다.

석굴암은 상서로운 기운이 모여있는 기도 터
석굴암은 상서로운 기운이 모여있는 기도 터

 영화 `한산’ 육지전 장소, 임진왜란 전세 바꿔

 북쪽으로 대둔산의 옹골찬 남릉이 한눈에 들어온다. 케이블카 아래쪽 산기슭에 보이는 배티재(이치 梨峙)는 임진왜란 당시 매우 중요한 전적지다.

 흔히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이순신의 한산도대첩, 김시민의 진주대첩, 권율의 행주대첩을 꼽지만, 이치대첩을 포함시키기도 한다. 이치대첩은 왜군이 곡창지대인 전주(全州)를 함락시키기 위해 대둔산과 운장산에 있는 이치와 웅치를 통해 공격했을 때, 조선의 선봉장 황진(黃進) 장군의 활약으로 막아내고 큰 승리를 거둔 전투다.

 이치대첩이 주목받는 것은 밀려오는 적을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선제공격해 승리함으로써 조선군의 사기를 높이는 계기가 되었고, 이 전투로 개전 이후 3개월 동안 조총이라는 신무기 앞에 압도적으로 기울던 전황이 차츰 균형을 이루게 되었다.

 정상에서 0.1km 정도 내려가면 석굴계곡으로 내려가는 `광두소’ 이정표와 만난다. 각종 지도에 0.4km 지점에서 광두소로 내려가는 또 다른 길이 표기되어 있지만 묵은 길이나 다름없다.

 가파른 내리막 0.7km 지점에 농구장 크기의 커다란 자연석 두 개가 겹쳐진 석굴이 있다.

 석굴에는 `약사여래(藥師如來)’를 모시고 있다. 약사여래는 그의 상을 만지거나 이름을 소리 내어 부르기만 해도 효과적으로 치료된다고 한다.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번뇌하고 연약해진 마음과 몸을 붙들고 싶어 기도하는 터, 제비집처럼 공들여 쌓은 잿빛 석축이 오랜 역사를 말해준다.

 1km 가까이 내려가는 하산 길이 무척 조심스럽다. 구들장만 한 잡석으로 정성스럽게 길을 만들었지만 경사가 매우 가파르다. 계곡을 메우고 있는 바위들의 생김새는 큰 산의 골짜기가 부럽지 않을 정도다. 좌우로 깍아지른 석벽 가운데로 용폭포가 있다.

 20m 높이의 2단 폭포는 비가 내린 뒤에는 용이 승천하는 모양새로 바뀐다.

커다란 감나무가 서 있는 원장선 마을입구 들머리.
커다란 감나무가 서 있는 원장선 마을입구 들머리.

 `어느 등반가의 꿈 기리는’ 암장

 용폭포 옆에는 거대한 암벽훈련장이 있다. 확보를 위한 볼트와 하켄이 박혀있다.

 천등산 북쪽 면에도 `어느 등반가의 꿈’이라는 루트가 있다. 1998년 인도 탈레이사가르 북벽 등반 중 숨진 대전 출신 클라이머 고(故) 신상만 씨를 기리기 위해 대전클라이밍동호회에서 2002년 개척한 루트다.

 총 6피치의 루트는 최고 난이도 5.11급의 상급자 코스다.

 용폭포에서 조릿대와 숲 그늘이 울창한 계곡을 10분 더 내려가면 댐 조성 공사가 한창인 토목현장을 가로질러 건너야 한다. 괴목동천(옥계천)이 상당 부분 수몰될 예정인 다목적 댐은 농업용수 저수량 650만t 규모로 2025년 완공 예정이다. 포장도로를 30분 내려가면 원장선 마을에 닿는다.

 

슬랩지대가 많지만 암질이 미끄럽지는 않다.

 ▶산행 길잡이

 △원장선마을-슬랩지대-535봉-감투봉-정상-석굴-석굴계곡-용폭포-포장도로-원장선마을(8.5km, 약4시간20분 소요)

 △원장선마을-슬랩지대-535봉-감투봉-정상-해태바위-비늘바위-고산촌(7.5km 약, 4시간 소요)

 ▶ 교통

 운주터미널에서 대둔산 방향으로 25인승, 15인승 연두색 중형버스가 1시간 간격으로(06:40~19:50) 운행한다. 상세 시간표는 완주시민여객(063-212-9234)으로 문의.

글·사진 김희순(山 전문기자) yaho115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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