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책방]‘나답게 살고 있습니다 - 수짱의 인생’(2020·이봄)

‘나답게 살고 있습니다 - 수짱의 인생’ 표지. 사진=동네책방 제공
‘나답게 살고 있습니다 - 수짱의 인생’ 표지. 사진=동네책방 제공

[동네책방]‘나답게 살고 있습니다 - 수짱의 인생’(2020·이봄)

살아가는 일은 무엇일까요?

보통은 멋모르고 남들이 살아가는 방식으로 살다가 아마도 청소년 혹은 청년이 되면서 ‘어? 나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이지?’라는 자각이 처음 들기 시작하는 것 같아요. 저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의미가 있다는 거창한 말이 아니더라도, 각자가 타고난 성향과 상황에 따라 수많은 선택들을 하고 그것이 모여 ‘나의 인생’이라는 것이 만들어 지는 것이니까요. 그렇다면 생명을 부여받고 태어난 이상, 살아가는 일은 부담스런 의무이면서도 설레는 축복이겠지요.

‘여자들의 마음을 잘 아는 공감만화가’라 불리는 마스다 미리의 <수짱 시리즈>가 7년 만에 출간되었어요. 붙인 제목이 『나답게 살고 있습니다 - 수짱의 인생』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이봄) 여서 관심이 확 생겼어요. 어느새 마흔살이 된 수짱은 과연 어떻게 살고 있을까, 나답게 살고 있다는 수짱의 생활이 궁금해졌습니다.

2012년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주인공 수짱. 남편도 애인도 없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하는 30대 중반의 싱글여성으로, 끊임없이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건지 고민도 하지만 자신이 직접 만들어가는 오늘의 작은 일상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모습이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았습니다. 미래를 생각하면 문득문득 불안해져도, 지금의 일상을 중요하게 여기자는 친구의 말에 위안을 얻는 것처럼 말이어요. 출간 순서가 바뀌긴 했지만 두번째 책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 에서도 ‘지금보다 더 나은 모습으로 변해야 행복한걸까’ 고민하는 34살의 수짱을 통해 많은 이들이 위로와 공감을 얻었습니다.

세번째 책 『아무래도 싫은 사람』에선 미래의 노후보다 좋아지지 않는 직장동료 때문에 고민이 더 큰 36살의 수짱을 만날 수 있었고, 이제 연애는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37살에 찾아온 설렘으로 한껏 마음이 들뜬 수짱을 보여준 네번째 책 『수짱의 연애』까지, '어?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었네!'라며 인생을 함께 살아온 기분이 들게 해서 30-40대 여성독자들에게 더욱 사랑받는 작품이어요.

7년 만에 다섯번째 책으로 다시 만난 수짱은, 여전히 혼자 살고 있고 이런 저런 일상의 고민과 ‘노후’에 대해 실감하기 시작한 마흔살이 되었습니다. 카페에서 보육원으로 직장을 옮겨 조리사로 일하며 ‘혼자 사는 삶, 지금의 나를 지탱하고 있는 건 뭘까?’라는 질문과 함께 일상을 이어갑니다. 이 책엔 친구 사와코의 이야기가 함께 담겨 있습니다. 사와코의 어머니가 건강검진을 받는 것을 계기로 부모님 세대에 대한 의무나 나이듦에 대해 더욱 현실로 느끼게 됩니다.

또 요양원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경청자원봉사’라는 새로운 일을 시도하면서 돈을 버는 경제활동 외에 무언가 다른 경험들이 시작되는 마흔여섯의 사와코의 일상이 잔잔히 그러나 분명한 변화를 맞으며 흘러갑니다. 수짱 역시 그런 사와코와 함께 일상을 나누며 자신을 비춰 보곤 하지요.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고향에서 멀리 떠나 도시에 살기에 곁에 있지 못했던 안타까움과 허전함을 이야기하고, 예전의 호감을 가졌던 스치다씨와 오랫만에 우연히 만나 짧은 연애(?)를 하게 되면서 사람 사이의 관계를 되짚어 보기도 합니다. 직장 동료가 생일선물로 준 ‘입에 넣었을 때 느낌이 좋은 젓가락’을 보며 먹는 것과 살아가는 일에 대해 순간을 귀하게 여기는 수짱의 소소한 다짐은 읽는 이들로 하여금 미소 짓게 합니다.

마스다 미리의 <수짱시리즈>를 읽다보면, 아마도 일상을 바쁘게 보내지만 가끔은 나 자신에게 ‘잘 살고 있는지’ 묻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것 같아요.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건강문제나 부모님 세대에 관한 일들, 나이 들면서 새로운 일을 찾아가는 것 등이 자연스럽게 펼쳐집니다. ‘노후’라는 부담스런 명명이 아니더라도 인생은 길어졌고 ‘나답게 살아가는 일’이 더 소중해지고 있기에, ‘잘 살고 있는지’ 묻는 일은 단지 경제적인 풍요나 사회적 성취와 다른 지점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어쩌면 ‘노후자금’을 모아두는 것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겠지요.

책 말미에 경청자원봉사를 하며 어르신을 만나는 사와코가 수짱과 이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어르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살아간다는 건 새로운 내일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구나, 깨닫게 돼. 추억을 반복하고 반복해서 더듬어보는 것도 그 사람에게는 소중한 일이기도 하니까. 나이를 먹는 건, 모두가 처음이잖아. 어르신들이라고 해서 아무렇지 않을 리가 없지...... 나, 앞으로 그 말은 하지 않기로 했어, ‘나이 들어 버렸다’ 같은 말. 마흔이 되어버렸다느니 마흔다섯이 되어 버렸다느니, 버렸다는 말로 살아가는 거 싫어졌어...... 있지 수짱. 우리 언젠가, 할머니가 되자.”

살아가는 일이란, 어떤 잣대로는 성공과 실패로 나눠질 수도 있고 풍요와 빈곤으로 구분지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왜 그런 잣대에 맞추어야 하나요? 누가 정했는지 알 수 없는 기준에 내 삶을 내어버리는 것이야 말로 ‘버렸다는 말로 살아가는 것’이겠지요. 우리 각자는 자신의 인생을 나답게 살아갈 권리가 있고 그것이면 충분한 것 아닐까요! 주변의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이렇게 이야기 나눠보면 좋겠어요.

“우리, 참 잘 살고 있는 것 같지 않아? 나답게.”

잔디 (동네책방 숨 책방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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