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책방]`염소 시즈카의 숙연한 하루’

염소시즈카의 숙연한 하루 표지. 사진=동네책방 제공.
염소시즈카의 숙연한 하루 표지. 사진=동네책방 제공.

 어느새 아침저녁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끝날 것 같지 않았던 뜨거운 햇살이 좀 너그러워진듯 느껴지면, 아~ 계절이 바뀌는구나하며 안도의 숨을 쉬기도 하고 또 맘이 설레기도 합니다. `변화’라는 것이 삶에서 없다면, 누구에게나 정해진 대로 혹은 원칙대로 일상이 잘 굴러간다면, 오늘 하루도 변함없이 무사히 잘 지냈다고 감사할 수도 있지만 또 무언가 답답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림책 `염소 시즈카의 숙연한 하루’(다시마 세이조 글그림, 황진희 옮김. 책빛)에서 만나는 염소 시즈카에게도 하루는 새롭기도 하고 변함없기도 합니다.

 염소 시즈카는 다시마 세이조 작가가 40여년전 낸 그림책의 주인공이예요. 실제로 작가가 기르던 염소였는데, 매애애애 시끄럽게 울어대는 통에 `조용히’라는 뜻의 이름 `시즈카’를 갖게 되었대요. 시즈카와 함께 한 날들은 아름다운 그림책 『염소 시즈카』(보림출판사)로 만들어져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염소 시즈카는 세상을 떠났지만, 작가는 2015년에 다시 새로운 그림책 『염소 시즈카의 숙연한 하루』의 주인공으로 우리에게 데리고 왔네요. (우리나라에서는 올해 봄 출간되었습니다.)

 “시즈카, 내가 마음이 숙연해지는 노래를 만들었어. 한번 들어 볼래?”

 어느 날, 늘 그렇듯 강가로 물을 마시러 간 시즈카에게 강물 속 친구 매기가 이야기를 건넵니다. 하지만 물속에서 부르는 매기의 노래는 공기방울만 보글보글 올라올 뿐 들리지가 않았어요. `숙연해지는 노래’라니, 친구 매기가 이 노래를 만들며 무슨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던 걸까요? 시즈카는 언덕에 올라 매미의 노래를 들으며 풀을 뜯어 먹으면서 이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매미가 땅으로 뚝 떨어지더니 노래를 부르지도 움직이지도 않습니다. 곧 개미들이 나타나서 매미를 들고 우르르 가버리네요. 허둥지둥 따라가던 시즈카는 수풀 아래 거미줄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아침 이슬을 봅니다.

 “넌 이토록 아름다운데 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반짝이니?”

 시즈카에게는 질문이 또 늘어납니다.

 `숙연해진다는 건 뭘까?’

 `매미는 이제 노래하지 않는 걸까?’

 `아침 이슬은 자랑하고 싶지 않은 걸까?’

 다시마 세이조 작가는 자연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는 시즈카에게 아름답고 경이로운 하루를 선물합니다. 그림책에는 파랑과 초록으로 자연의 생명력이 가득합니다. 이 화면 가득한 그림은 자유롭고 생동감이 넘치며, 간결하고 정감 있는 글에는 시즈카의 성장이 따뜻하게 담겨 있습니다.

 `숙연한’은 사전적 의미로 `조용하고 엄숙한’이라는 뜻입니다. 시끄럽고 늘 습관대로 살아가던 시즈카에게 `숙연해지는 노래’라는 선물은 경이로운 삶의 한 단면을 만나게 합니다. 끝날 줄 모르던 매미의 노래와 순식간에 찾아온 죽음, 그 죽음이 개미에게는 생명을 이어가는 귀한 선물이 되고, 아침이슬 방울은 아무에게 뽐내지 않아도 어느 누구보다 아름답다는 것을 모두가 알지요. `숙연해지는 노래’로 알듯 말듯한 기분이 든 시즈카는 메추라기며 두꺼비에게 자기가 품은 질문을 하지만, 이들은 각자 먹을거리를 찾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그러는 중에 시즈카도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꽃봉오리를 자기도 모르게 덥석 먹어버립니다. 때마침 그곳을 지나던 메뚜기가 그것을 보고 `아이고! 시즈카가 예쁜 꽃봉오리를 먹어버렸네’ 하며 소리칩니다.

 이런! 시즈카는 곧바로 서글픈 마음이 되어버리지요. 시즈카는 자기가 먹어버린 피어 보지 못한 꽃봉오리와 앞으로 계속 노래를 부르지 않을 매미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아침 이슬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립니다.

 훌쩍이다 잠이 든 시즈카에게 부드러운 바람이 찾아와 토닥여줍니다. 한숨 자고 났더니 무슨 생각을 골똘히 했었는지 잊어버린 시즈카에게 메뚜기와 두꺼비, 메추라기 친구들이 모여 와 노래를 부르자고 합니다. 박자도 제각각이지만 모두들 어울려서 `씩씩해질지도 몰라’ 노래를 신나게 부릅니다.

 그림책을 덮으며 삶이란 이런 것이구나 싶어 슬며시 웃음이 나오네요.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사건사고 속에서 우리는 종종 답을 찾지 못하고 힘겹기도 합니다. 하지만 또 그 가운데 무엇보다 아름다운 것을 발견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생명으로 이어지기도 하지요. 생명의 순환과 자연의 섭리, 눈에 보이진 않아도 이 세상을 반짝이게 하는 아름다운 것들 사이에서 우리는 그 답을 모두 알진 못하지만, 그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러니 우리 씩씩하게 살아가자고 서로를 토닥일 수는 있습니다.

 변하는 듯 변하지 않는 일상에서 반짝이고 씩씩한 보물을 찾아내는 일이야말로 행복 아닐까요?!

 잔디 (동네책방 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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