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이몽 아닌 함께 실현해가는 꿈 돼야
2015년 체결된 파리기후협정은 그전까지 실패를 거듭해왔던 국제적인 기후 협상이 마침내 겨우 결실을 맺은 결과였다. 각국의 복잡한 이해관계들이 수 차례 조율되어서 협정의 전문이 작성되었는데, 그 안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포함되어 있다.
“협정의 당사자는…국내적으로 규정된 개발우선순위에 따라 노동력의 정의로운 전환과 좋은 일자리 및 양질의 직업 창출이 매우 필요함을 고려하며…”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한글 번역본’
무수한 논의 속에서 살아남아 전문에 실릴 만큼, `정의로운 전환’은 기후변화 대응의 핵심 사안이다.
국제노동기구(ILO)가 2015년 파리당사국총회(기후협정이 체결된 기후변화 협약을 논하는 국제회의)전에 정부, 노조, 고용기관 등 3자 간 협의에 기반하는 `정의로운 전환’ 가이드라인을 만들었고, 이를 기반으로 파리협약 전문에 정의로운 전환 내용을 포함시킬 수 있었다. 정의로운 전환이 기후대응 담론으로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바로 이때부터다.
▲ 정의로운 전환이란
ILO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정의로운 전환의 의미는 `경제를 녹색화하는 과정이 모든 이에게 공정하고 포용적이며, 좋은 일자리의 기회를 만들고,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것이다.
용어의 기원을 살펴본다면, 1990년대부터 북미 노동조합에서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개념이 생기기 시작했다. 다만 이때는 환경보호정책으로 인해 직업을 잃게 되는 노동자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 정도로 인식되었다. 예를 들어 석탄 광산을 규제하면서 실직하게 되는 노동자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 정도가 정의로운 전환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 개념은 점차 확대되었다. 정의로운 전환은 지원프로그램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으로, 환경적으로 보다 지속가능한 경제와 이를 구성하는 일자리로 전환할 수 있는 노력, 계획, 투자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나아갔다.
이후 기후위기가 심화됨에 따라, 국제노총 등은 정의로운 전환을 기후변화와 분명히 연결짓게 되었다. 우리가 흔히 기후위기 대응을 감축과 적응으로 구분하는데, 정의로운 전환 또한 비슷하게 구분해볼 수 있다.
탄소배출량 감축을 위한 산업전환의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희생되거나 배제되지 않고 함께 전환을 이루어내는 일과, 가혹해지는 기후 위기에(폭염 등) 적응하여 노동환경을 개선하고 노동자를 보호하는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일, 나아가 전환의 시대에 등장하는 신산업분야의 좋은 직업을 마련하는 일까지 모두 정의로운 전환에 해당된다.
▲전환 당사자가 갖는 시야
지난 문재인 정부가 2020년 연말에 내놓은 탄소중립 추진전략의 3대 정책 방향 중 하나가 바로 `탄소중립 사회로의 공정전환(정의로운 전환)’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①취약 산업 계층 보호, ②지역중심의 탄소중립 실현, ③탄소중립 사회에 대한 국민인식 제고를 과제로 선정했다.
이듬해인 2021년, 고용노동부에서는 `산업구조변화에 대응한 공정한 노동전환 지원방안’을 발표했고 2022년에는 여러 부처에서 총 1조 385억 원의 관련 사업예산을 편성했다. (매일노동뉴스(https://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7224))
직무전환교육과 디지털 역량 강화 등의 재취업 지원이 주를 이루며, 산업 전환에 따라 필요한 역량을 새로이 갖추는 것에 방점을 찍은 것으로 보인다.
반면 민주노총과 그린피스가 지난 4월 주관한 정의로운 전환 국회 토론회(2022.04.14.), `새 정부의 자동차산업 정의로운 전환 어떻게 추진해야 하나’에서는 완성차업체 대상 설문조사의 결과로 노조원들이 바라는 첫 번째가 기후위기에 대한 교육이었고, 두 번째가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단체협약이었다는 내용이 공개됐다.
실제 민주노총 소속 금속노조는 2021년 산별노조 최초로 단체 교섭을 통해 산업전환협약을 맺고, `…기후위기에 따른 산업전환 시기 회사의 지속 가능한 미래 발전과 고용안정, 양질의 일자리 확보를 위한 투명한 경영전략을 기반으로 책임성 있는 산업전환 대응계획을 (노사가) 함께 수립하고 실행한다’고 합의했다. (매일노동뉴스(https://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4398))
대응계획에는 직무전환교육 뿐만 아니라 고용안정 및 양질의 일자리 확보, 노동안전 및 인권 보호, 기후위기 대응 등이 포함되어 있어 보다 다차원적인 정의로운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 전환의 대상은 투자자뿐일까
광주 또한 2020년 탄소중립 선언 시 `정의로운’ 2045 탄소중립 에너지 자립도시 광주를 AI-그린뉴딜의 목표로 삼았다.
구체적으로는, 시민 주도형 소규모 분산전원 보급 확대 기반을 마련하여 시민이 참여, 투자, 이익을 나누는 `정의로운 전환’을 실현한다는 내용이 계획되어있다.
재생에너지에 투자하여 이를 기반으로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 또한 정의로운 전환에 해당한다. 나아가 국내, 국제적으로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에너지 착취지역-소비지역 간 불일치 문제를 포착하고 비록 도심지이긴 하더라도 에너지 자립을 목표로 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기존 산업에 대한 정의로운 전환의 비전은 부재한다. 광주의 대표 산업격인 자동차산업 관련, 전기차 보급, 충전소 확충 계획은 있지만 전환대책은 함께 마련되지 못했다.
광주형일자리 GGM을 포함해서 대부분의 자동차 생산라인은 내연기관모델이다. 친환경자동차로의 전환 시점과 대응책에 광주 자동차산업의 지속가능성이 달려있다. 함께 일하는 협력업체들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조사된 바 없다. 생산계획이야 기업의 전략이겠지만, 지자체 내에서 높은 경제적 비중을 차지하는 산업인 만큼 사안을 챙길 필요는 분명하다.
한편, 2021년 광주광역시의회 그린뉴딜특별위원회는 `광주지역 비정규직 기후 변화 인식조사 결과 발표 및 개선방안 마련’을 주제로 토론회를 주최했는데, 토론자였던 권오산 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 노동안전보건부장은 내연기관차에게는 핵심이지만 전기차로 전환될 경우 사라지게 되는 엔진부품회사(현대위아 광주공장 및 2차, 3차 벤더기업) 등 정의로운 전환이 절실한 부품사들에 대한 실태조사, 그리고 지자체와 노조가 같이 방안을 마련하는 노정 테이블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토론회 석상에서 광주가 친환경 미래차 전환의 허브 역할을 담당할 `친환경 자동차 부품 클러스터’ 조성사업을 진행 중인 것이 알려졌지만, 기존 산업의 노동자들이 어떻게 신산업으로의 전환에 포용될 수 있는지까지는 논의되지 않았다.
▲ 언제나처럼, 시작은 관심과 대화부터
같은 토론회의 또 다른 토론자였던 건설노조의 송성주 광주전남지역본부 사무국장은 기후위기가 심화하면서 건설노동자들의 (폭염·혹한으로 인한) 건강권뿐만 아니라 노동 가능한 일수가 줄어듦에 따라 생존권 또한 위협받고 있음을 역설했다. 녹색건축이 기후위기 대응의 주요수단인 만큼, 녹색건축물을 짓는 건설노동 또한 양질의 일자리가 될 수 있도록 정부와 지자체의 고민이 필요한 지점이었다.
비단 위에 논의된 산업군들 외에도 길가의 수많은 정비업체와 주유소들, 배달·운수업 종사자들, 가뭄으로 근심이 깊은 농민들까지, 이미 기후위기를 겪고 있는 광주에는 정의로운 전환의 수많은 당사자들이 살고 있다.
총체적 난관처럼 느껴지는 와중에, 광주시민들과 지자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진부하지만, 우리는 역시 관심과 대화부터 시작해나가야 한다. 지역의 산업과 노동자·농민들이 기후위기에 대한 인식이 어떤지, 대책을 고민하고 있는지 세세하게 파악하고 조사해야 한다. 어떤 해결책이 있을지 모색하는 사회적 대화와 공론의 장이 필요하다.
중앙 정부는 직무전환교육에 열을 올리는데, 그렇다면 지자체는 어떤 지원을 해야할 지, 중앙의 지원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서로 들어보고 머리를 맞대야 한다. 국제노동기구도 노사정이 함께 협의한 가이드라인을 다진 후 정의로운 전환을 파리협정에 올렸다.
기후일자리, 친환경 신산업, 정의로운 전환 등 소중한 키워드들이 부디 따로 놀지 않기를 바란다. 서로에 대한 관심과 대화를 시작으로, 정의로운 전환을 함께 실현해나가야 한다.
정민성 (한국전기연구원)
※이 글은 광주광역시지속가능바전협의회 소식지 까치밥 20호에 실렸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