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순 호남의 명산](7)나주 옥산(336.2m)
100년 역사 노안성당·호남 3대 명촌 이어진 역사탐방길

옥산 주 능선.
옥산 주 능선.

 나주 옥산(玉山)은 나주의 대표적인 명산 금성산에서 북쪽으로 8km 가량 직선으로 뻗어있다. 용머리처럼 기다란 능선은 멀리서 보면 거대한 성벽처럼 보인다. 옥산은 그동안 크게 주목받지 못해 금성산의 줄기나 병풍지맥 정도로 불려 왔다.

 옥산은 일제가 1등 삼각점을 산의 정수리에 설치할 정도로 나주평야 전체를 굽어보는 중요한 위치에 있다. 1894년 계량동 대동계에서 발행한 책자에는 `옥산’으로 표기되어 있지만 인근 주민들은 `병풍산’이라 부른다.

 산의 모양이 병풍을 펼친 듯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병풍산은 옥산과 같은 능선에 있지만 계량재를 경계로 도계가 갈라진다. 태청지맥에 속한 병풍산(265.4m)과 망산(288m)의 주소지는 광주광역시 송학동이다.

옥산 정상 1등 삼각점.
옥산 정상 1등 삼각점.

 곡창지대 인근에 집중 매설된 1등 삼각점의 비밀

 조선시대 암행어사가 몸에 지니는 징표는 4가지다.

 첫째는 임명장에 해당하는 `봉서’, 둘째는 업무 메뉴얼인 `사목’, 셋째는 새겨진 말의 숫자만큼 역참에서 말을 빌릴 수 있는 `마패’. 마지막이 `유척(鍮尺)’이다. 유척은 놋쇠로 만든 20cm 길이의 표준자로서 지방관리들의 부정 수탈을 조사하는 수단이며, 도량형의 정확도를 판별했다.

 고대부터 계측의 표준화는 국가의통치와 일상생활에 직결되는 기본원리였다.

 1441년에는 세종대왕이 온수현(온양 온천)으로 가는 동안 거리를 측정하는 수레인 기리고차(記里鼓車)를 처음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우리나라 최초의 실측 지도인 동국지도가 세조 9년(1463년)에 만들어졌다.

 삼각측량은 물체의 수평위치와 높이를 결정하는 방법이다. 한 점의 좌표와 거리를 삼각형의 성질을 이용해 알아내는 기법이다. 거리 측정의 기본개념으로 직접 길이를 잴 수 없을 때 편리하다. 삼각측량법은 인도의 천문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들은 서기 7세기에 에베레스트 산의 높이를 8,848m라고 정확하게 측정했고, 지구가 둥글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1912년 일제는 토지조사령과 삼림령을 통해 조선의 토지와 삼림을 장악했다. 군사적 이용과 지배를 위해서는 정확한 지도의 확보가 우선이었다.

 일제는 1936년부터 1938년까지 우리나라의 주요 산 높이를 측량하고 정상과 봉우리에 삼각점을 설치했다.

 이 시기는 일제가 국가 총동원법을 공표하고 중일전쟁, 난징대학살 등 전쟁의 양상이 극에 달했던 때다. 일제는 우리나라의 주요 산과 농지를 측량해서 1등, 2등, 3등, 4등으로 분류했다. 대삼각본점이라는 불리는 1등 삼각점은 남한에 189개 설치되었다. 2등 삼각점은 1,102개, 3등 삼각점은 3,045개, 4등 삼각점은 1만1,753개 설치되었다.

 1등 삼각점은 일본 대마도와 거제도를 삼각망으로 연결하고, 이 두 삼각점을 본점으로 해서 관측, 계산한다. 1등 삼각점은 일본 대마도와 거제도를 삼각망으로 연결하고 두 삼각점을 본점으로 해서 관측하고 계산한다. 각 삼각점에는 숫자가 부여되었는데 11부터 19까지는 1등 삼각점(평균 45km거리마다 설치), 21부터 29까지는 2등 삼각점(평균 25km거리마다 설치), 301부터 399까지는 3등 삼각점(평균 8km거리마다 설치), 401부터 499까지는 4등 삼각점(평균 2km거리마다 설치) 이다.

 1936년 일제 측량국에서 제작한 `일등삼각점지기(一等三角點之己)’ 보고서를 보면 일제가 주요 곡창지대를 중심으로 더 세밀하게 지형을 측량했다는 근거가 나온다.

 일제는 나주 옥산, 나주 다도면 식산(288.9m), 광주 서구 송학산(212.3m), 담양 삼인산 등 곡창지대 주변으로 1등 삼각점을 여럿 설치했다. 모두 평야 지대를 끼고 있으며, 식량 수탈의 전초기지였던 영산포항과 목포항까지 뱃길이 닿는 곳이다.

 지금은 대한민국 국립지리원에서 통합기준점을 관리한다. 2008년부터는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이용한 3차원 기준점(삼각점, 수준점, 중력기준점, 지자기기준점, 도시기준점, 지적기준점) 방식을 사용한다. 산 정상에 있는 삼각점에는 기둥 상단부에 `+’ 모양의 음각이 있다. 이는 동서남북 방위를 나타내며 글자를 바로 본 자세에서 위쪽이 북쪽이다.

계량재.
계량재.

 능선에서 펼쳐지는 황금 들녘

 옥산 주 능선은 큰불이 나서 오랫동안 황량한 고원지대와 다름없는 풍경이었지만 지금은 울창한 숲으로 복원되었다. 동쪽은 급경사를 이루고 있고 계속해서 평야지대를 조망한다. 능선 서쪽은 완만한 구릉형 산지다. 산의 길이에 비해 고도차가 크지 않기 때문에 체력 소모는 심하지 않다.

 옥산에는 한수재에서 금성산을 거쳐 광주 병풍산으로 이어지는 종주길이 개발되어 있다. 이번 산행은 100년 역사의 노안성당이 있는 이슬촌(계량리)에서 출발해서 호남의 3대 명촌으로 알려진 노안면 금안리에 하산한다. 이 코스는 신숙주 생가와 쌍계정 같은 문화유산을 함께 탐방할 수 있는 산행지다.

 들머리인 이슬촌에는 100년 역사의 노안성당이 마을 중심에 있다. 붉은색 성당 건물은 2022년 등록문화재 제44호로 지정되었다. 마을주민들도 대부분 가톨릭 신자다. 이 마을에서는 종교적인 신념에 따라 친환경 농산물을 많이 생산한다. 성당을 끼고 돌면 실질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청소년수련원으로 사용했던 건물의 잔해가 곳곳에 남아 있다.

 계량재까지는 20분 정도 소요된다. 경사가 있고 이정표 대신에 선답자의 표지기를 참고해야 한다. 계량재에 올라서면 오솔길 수준의 넓고 편안한 길이 열린다. 이곳부터는 이정표와 등산로가 양호하다. 동쪽으로는 무등산과 광주시의 전경이 아스라이 조망된다. 옥산 능선을 따라가다 보면 이별재에서 노안성당으로 하산할 수 있고. 소연재에서는 곧장 금안리로 내려갈 수도 있다.

노안성당.
노안성당.

 옥산 정상에는 산불감시초소가 있다. 정상에 매설된 삼각점엔 `11’이라고 적힌 숫자가 선명하다. 연간 5만톤을 생산하는 기름진 나주평야를 바라본다.

 나주 쌀 브랜드 `왕건이 탐낸 쌀’이라는 상표가 떠오른다. 동쪽으로 무등산과 모후산이 시원하게 보이고, 서쪽으로는 태청지맥 국사봉과 정도전의 유배지가 있는 백룡산 줄기가 지나간다. 푹신한 굴참나무 숲 끝에 있는 울음재는 금성산 정상으로 오르는 우회 등산로와 만나는 지점이다.

 이곳에서 `금안제’ 이정표 따라 2km 정도 지그재그로 임도를 내려가면 금안1제와 금안2제를 지난다. 광곡마을에는 나주 출신으로 조선 효종때 영의정을 지낸 사암 박순(1523-1589)을 제향한 월정서원이 있다. 5분 거리에 있는 금안동은 마을 전체가 민속마을과 다름없다. 이곳에 있는 쌍계정은 400년 동안 대동계를 지켜온 화합의 상징이다. `쌍계정’이라고 적힌 편액은 명필 한석봉의 글씨다.

생명의 땅 나주평야.
생명의 땅 나주평야.

 ▲산행 길잡이(전라남도 나주시 노안면 이슬촌길)

 △노안성당-계량재-이별재-옥산-소연재-울음재-임도-금안1제-쌍계정(11km 5시간)

 △한수재-장원봉-오두재-울음재-옥산-이별재-망산-병풍산-추선사(불교사) (18km 8시간)

 ▲교통

 △버스로 이용할 경우 송정공항역에서 이슬촌을 경유해 나주터미널까지 운행하는 601번 나주 시내버스가 있다. 하루 7회(06:55~19:45)운행한다. 차로 이동할 경우 광주 광천시외버스터미널에서 어등대교와 무안공항 방향 고속도로를 이용해 나주IC로 빠져 나오면 노안 이슬촌이다. 30분 정도 소요된다.

 글·사진 김희순 ( 山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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