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질문’ 삶을 새롭게 비추는 반성의 거울
<세 가지 의문>이라는 톨스토이의 유명한 단편소설이 있다. 주인공인 왕은 어느 날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언제인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일은 어떤 일인가? 자기 인생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왕은 생각했다. 이 세 가지만 알 수 있다면 인생을 결코 실패하지 않고 성공적으로 살 수 있지 않을까!
왕은 후한 상금을 걸고서 적절한 답을 찾으려고 했다. 그러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날 평민 복장을 하고서 숲 속의 현자를 찾아갔다. “현명한 분이시여, 저는 세 가지 의문이 있어 당신에게 그 답을 얻고자 왔습니다.” 왕의 거듭된 요구에도 현자는 묵묵부답이었다. `이것이요’ 라고 단번에 답을 가르쳐주면 좋으련만….우리가 알고 있는 한, 현자는 그렇게 쉽게 답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아니다.
왕은 현자를 거들어 밭을 함께 갈았다. 또 나름대로 정성과 노력을 다했다. 그런 연후에야 비로소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지금 이 순간 현재입니다. 가장 중요한 사람은 바로 당신 곁에 있는 사람입니다. 가장 중요한 일은 타인에게 선을 베푸는 일입니다. 인간은 선을 행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온 것입니다.”
삶의 매 순간순간 지금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라!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라! 이런 깨달음을 가슴 깊이 되새기며 우리의 주인공은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을 것이다.
“정해진 답 없지만 끊임없이 물어야”
소설 속 주인공처럼 우리도 어느 날 문득 자신의 인생길을 묻는다. 아니 가끔은 자기 인생이 걸린 거창한 질문을 던진다. 어떻게 살 것인가?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가? 어떤 삶이 좋은 삶인가? 어떻게 하면 성공적으로 살 수 있을까? 행복한 삶은 또 무엇인가? 인간은 무엇인가?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삶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다.
그런데 혹자는 뭐 그런 심각한 질문을 던지나 하고 언짢아 할 수도 있다. 또 그냥 하루하루를 버티기도 힘들다고 짜증을 낼 수도 있다. 그러나 어찌 하랴, 그 누가 인생에 대한 근본 물음을 비껴갈 수 있겠는가! 어쩔 수 없는 인간 자기 자신의 특수한 운명이다. 성가시고 귀찮더라도 자신의 삶에 대한 물음을 던져야 한다. 아무리 짜증나고 화가 나더라도 질문 속에 자기 자신을 온전히 던져야 한다. 가능한 한 반복해서 자기 자신을 질문에 노출시켜야 한다. 질문을 붙들고 씨름하다보면, 언젠가 반드시 적절한 어떤 답을 발견할 수도 있다.
인류의 역사처럼 한 개인의 짧은 인생사도 끊임없이 반복한다. 어쩌면 그것은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한 수없는 물음과 답변의 연속 과정이다. 아침에 눈뜨면서 동시에 묻는다. 잘 살고 있어? 너무 힘들어! 나 어떻게 살아야 해? 이렇게 계속 살아도 괜찮아? 살아있는 동안 우리는 삶에 대한 질문을 피할 수 없다. 죽지 않는 한, 질문은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 삶이 다하여 죽음에 이른다면, 그 때야 비로소 삶도 끝나고 질문도 끝이 난다. 그 때야 비로소 인생의 모든 질문과 답변은 사라진다. 물론 숨이 멎기 전 마지막 순간에, 이렇게 물을 수 있다. 잘 살았는가, 성공적으로 살았는가, 후회는 없었는가? 다시 태어난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
인생 질문을 던질 때, 그 때야 비로소 우리는 삶의 본질 문제를 정면으로 직시할 수 있다. 세상사 온갖 분주함 속에 때때로 정신을 잃는다 해도, 한 순간도 인생 질문을 놓쳐서는 안 된다. 인생 질문은 망각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질문을 망각한 순간, 우리 자신의 인생도 무신경으로 망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순간순간을 아껴서 자신의 인생길을 되풀이하여 물어야 할 까닭이다.
사실 질문 그 자체는 어려운 것도 복잡한 것도 아니다. 또 질문을 던지는데 많은 시간과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언제라도 틈을 내서 자기 자신에게 그냥 툭 던지면 된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하면 잘 살 것인가, 성공적으로 살 것인가, 행복하게 살 것인가? 그런데 여기서 어려움은 물음에 대한 딱 떨어진 답을 쉽게 발견할 수 없다는 점이다. 어찌 인생에 정답이 있겠는가! 분명하고 시원스런 답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유감스런 일이다.
질문 붙들고 씨름하면 답 발견할 수도
우리는 잘사는 삶에 대한 합의된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는 좋은 삶에 대한 확정된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는 성공적이며 행복한 삶에 대한 합의 가능한 답을 제시할 수도 없다. `십인십색(十人十色)’이랄까! 답은 각자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그 어느 때보다 차이와 다양성이 존중되는 현 시대에는 더욱 더 그렇다. 그래서 인생길에 대한 적절한 답을 찾는 일은 각자에게 부과된 몫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렇게 물어 볼 수 있다. 차이와 다양성을 넘어서 여전히 인간이면 누구나 중시해야 하는 삶의 근본은 있는가? 개인들이 중시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사회 공동체는 무엇을 위해 우선적으로 힘써야 하는가? 오늘날 사람들의 욕망은 매우 다양하고 그 이해관계는 정말 복잡한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넘어서`무엇이 중헌디’의 정답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아마도 영원히 변치 않을 인간 자신의 이익관심(interest)이다. 먹고 자는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하고, 질병과 고통을 피하고, 아이들을 잘 돌보고, 다른 사람들과 즐거이 우정과 애정을 교환하고, 타인들로부터 불필요한 간섭 없이, 자유롭게 자신의 미래적인 삶을 계획하고 추구하는 것이다.
사실 이보다 더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은 없다. 이러한 이익관심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그리고 교육 등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반영하고 관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것을 섬세하게 고려하는 것이 모든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그것이 얼마나 중한가를 깨닫는 것이 인생사의 핵심이다.
자기 삶의 의미를 온전하게 충족하길 원하는가. 그렇다면 자주 되풀이하여 자신의 인생 질문을 던져라! 삶의 중요 고비마다, 일이 잘 안 풀릴 때에, 틈나는 대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라! 어떻게 살 것인가, 잘 살고 있는가, 성공적이며 행복한가, 이렇게 계속 살아도 괜찮은가? 인생 질문은 항상 새롭게 삶을 비추는 반성의 거울이다. 만약 당신이 날마다 당신 자신의 인생길을 묻는다면, 당신은 이미 자기 삶의 지혜를 깨달은 사람이다.
김양현(전남대 철학과 교수·유튜브 `철학TV’ 운영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