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책방]`만약의 세계’ 요시타케 신스케

요시타케 신스케 `만약의 세계’ 표지.
요시타케 신스케 `만약의 세계’ 표지.

 2022년 수능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학생은 십수 년간 수능을 준비하고, 정시가 아니라면 학교에서 어떻게 내신을 관리할지에 총력을 기울이며 불확실한 미래에 어떻게든 준비되어있기 위해 애쓴다. `혹시’ 잘못된다면? `혹시’ 실수한다면? 같은 불안의 언어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남은 인생을 결정지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빠진 십 대 후반 청년을 괴롭히기도 한다.

 수능이 끝났다고 불안이 모두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대학에 간다고 해서 불안이 끝나지도 않는다. 남들의 시선에도 적합하고 본인의 기준에도 적당한 위치에 안정적으로 머무르기 위해 사람들은 매일 고민하고, 조심하고, 또 노력하고 긴장한다. 그리고 매 순간 `혹시’와 함께 `만약’을 고려한다. 만약 그때 잠을 더 줄이고 공부했더라면? 만약 그때 이 전공 대신 저 전공을 선택했다면? 이 대학 대신 저 대학을, 이 집 대신 저 집을…

 이전에 소개했던 <도망치고, 찾고>에서 요시타케 신스케는 우리가 어느 지점에 서 있든 두려움에 도망치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엄연한 선택지라고 말했다. 같은 작가의 다른 그림책 <만약의 세계>(2020, 김영사)에서는 그러한 선택지들 이후, `만약’ 이랬더라면 지금 나의 삶이 어떨지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책을 펼치자마자 보이는 것은 주인공의 친구로 보이는 장난감 인형이 길고양이에게 물려가는 장면이다. 인형은 잠든 주인공의 꿈속에 나타나 이렇게 말한다. “갑자기 이런 말 해서 미안한데 나, 만약의 세계에 가게 됐어.” 그리고는 만약의 세계가 무엇인지 설명한다. 우리 머릿속 후회의 공간, 후회뿐 아니라 만약의 가능성이 전부 모여 있는 공간, 내가 되었던-될 수 있었던 `나’가 모여 있는 공간이 바로 만약의 세계다. 우리는 만약에 세계보다 현실의 일상, 즉 매일의 세계에 발붙이고 살아야만 한다. 보통 만약의 세계는 매일의 세계보다 작지만, 후회, 의문이나 아쉬움이 너무 커져서 나를 집어삼키기 시작하면 몸집을 불려 균형을 잃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형은 주인공이 너무 커진 만약의 세계에 집착하다 균형을 잃더라도, 매일의 세계는 매일매일 조금씩 몸집을 불릴 것이라고 위로한다.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을지언정 시간은 흘러가고, 매일의 세계는 계속해서 켜켜이 쌓인다. 그러다 보면 만약의 세계보다도 더 큰 매일의 세계가 우리를 받쳐줄 수 있다는 것이다. 매일의 세계는 나에게 받침대를 만들어주고, 만약의 세계는 나에게 세계를 키울 힘을 준다. 인형은 그러니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주인공을 위로한다. 주인공은 인형이 사라진 방 안에서, 눈을 뜬다.

 <만약의 세계>를 읽던 중, 참으로 다정하다고 생각한 부분이 있었다.

 내가 왜 만약의 세계에

 가야만 하냐고?

 우리가 왜 이렇게

 헤어져야만 하냐고?

 

 나도 왜 그래야 하는지

 내내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이유는

 없는 것 같아.

 <만약의 세계> 중에서.

 우리의 삶에는 너무도 많은 후회와 만약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는 자주 그 이유를 찾으려고 한다. 걔가 나한테 잘못을 한 거야, 내가 멍청했어, 그 사람이 그렇게 만든 거야, 우연이 안 좋게 겹쳤어, 운이 안 좋았어…

 가끔은 이유를 알아내는 것이 아쉬움을 달랠 방법이 되기도 하지만, 종종 우리는 그 이유에 매여버리고 만다. 그리고는 남에 대한 미움과 증오를, 혹은 자기 자신에 대한 불쾌감을 가슴 한쪽에 묶은 채 곪아간다. 하지만 작가는 그 모든 이유보다 중요하고 분명한 건, 만약의 세계로 간 것들이 매일의 세계로 돌아올 수는 없는 사실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지나간 것들은 나의 일상으로 돌아올 수 없다. 적어도 그때 그 모습 그대로는 말이다. 과거를 바꿀 수는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은 우리의 매일매일에 에너지를 줄 수 있다. 어느 날 당신은 무언가를 마주하곤 생각할지도 모른다. `만약 그랬으면 어땠을까 생각하곤 했는데, 비슷한 기회가 나에게 왔네? 이번에는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해볼까? 취미로라도 말이야.’ 그 순간 당신의 매일에는 또 다른 가능성이 생겨난다.

 우리의 삶은 수많은 선택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수많은 선택은 나를 만족시키기도 불만족시키기도 하지만 그 무엇도 가치 없지는 않다. 우리가 `만약의 세계’를 생각하며 이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면, 나의 삶은 단순 실패작이거나 불안한 레이스일 뿐 아니라 수많은 가능성을 품은 세계로 여겨질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만약의 세계를 등에 진 채 매일의 세계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 당신에게 응원을 보낸다.

 호수 (동네책방 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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