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도난마_필사이언스]‘전자기유도’ 현상 발견 전구 장식 가능케
하얀 눈이 펑펑 내리던 어렸을 적을 떠올릴 때마다 입안에서 맴도는 노래가 있다. 조그만 읍내에 있던 작은 서점과 빵집에서 울려 퍼지던 크리스마스 캐롤이다.
미술관이 없던 그 시절에는 문방구에 걸려있던 알록달록한 크리스마스 카드가 미술관 그 자체였다.
눈이 소복하게 내린 길을 외로이 걸어가는 동양의 산수화로부터 따뜻한 조명 아래 선물을 쌓아놓고 즐거워하는 서양 어느 가족의 모습을 만난 건 바로 크리스마스 카드 덕분이었다.
조그만 전구들이 매달려 반짝이던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고 있노라면, 산타크로스 할아버지가 나에게도 마법처럼 선물을 들고 찾아올 것만 같기도 했다. 적어도 그때만큼은 구두쇠이자 자린고비인 스쿠루지 영감도 좋은 일을 해서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중년을 훌쩍 넘어선 우리 세대 대부분이 한두 번쯤 가져본 생각일 듯하다.
2500년 동안 계속되어오고 있는 과학의 역사에서 크리스마스와 가장 가깝게 연관된 과학자가 있다. 바로 영국의 마이클 패러데이(Michael Faraday)다.
산업혁명이 시작되어 사회적 유동성이 가장 크던 시절에 태어난 패러데이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과학자로 성장하여 여러 화학적 연구 성과를 내놓았을 뿐만 아니라 아무도 그 가치를 몰랐던 ‘전기’로 우리에게 새로운 세상을 가져다 준 인물이다.
사람들은 ‘전구’와 ‘전기’ 이야기를 꺼내면 곧바로 에디슨을 떠올리겠지만, 사실 영화 ‘커런트 워(Current War)’에서 에디슨과 테슬러 사이에 벌어지는 전류 전쟁은 바로 패러데이의 연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영화에서처럼 에디슨이 멘로파크에서 “여기도 저기도”라고 외치며 최초의 점등식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혁신의 아이콘으로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장’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고안해낸 패러데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기장 변화시 도선에 전류가 흐른다’
학교가 아니라 제본소에서 일했던 패러데이는 틈틈이 책을 읽으며 과학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러자 어느 날 단골 손님이 ‘런던왕립연구소(Royal Institution, London)의 과학 강연에 가보라’며 티켓 한 장을 선물로 주었다.
이 강연을 계기로 그는 당대 최고 과학자인 험프리 데이비(Humphry Davy)를 만날 수 있게 되었고, 이후 그의 조수가 되었으며, 제자이자 동료로서 도움을 주고받으며 평생을 함께 지냈다.
이제 연구도 돕고 실험도 할 수 있게 된 패러데이는 어느 날 덴마크의 과학자 외르스테드(H. C. Ørsted)가 전류가 흐르는 주변에서 나침반의 자침이 움직인다는 것을 발견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는 그와는 반대로 자기장을 이용해서 전류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수년간의 끈질긴 실험을 통해 마침내 1831년 ‘전자기유도(electromagnetic induction)’ 현상을 발견하게 되었다.
‘자기장을 변화시킬 때 도선에 전류가 흐른다’는 이 ‘전자기유도’ 현상은 발전기와 변압기의 기본 원리로, 오늘날의 전기 시대를 여는 결정적 토대가 되었다.
이로부터 1882년에는 에디슨전기회사 부사장이 처음으로 촛불 대신 호두 크기만 한 빨간색, 하얀색 그리고 파란색의 전구로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할 수 있었다.
요정처럼 빛나는 크리스마스 트리의 작은 전구 말고도 패러데이가 크리스마스와 특별히 연관이 깊은 또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다.
패러데이는 조수였다가 왕립연구소의 교수가 되면서 작지만 아주 역사적인 일을 시작했다.
그것은 가난했던 어린 시절에 과학에 관한 책을 보면서 미래에 대한 꿈을 잃지 않았던 자신처럼 과학에 관심이 있지만 교육의 기회를 갖지 못한 청소년들에게 과학을 통해 꿈을 꿀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었다. 바로 ‘크리스마스 과학강연(Christmas Lecture)’을 통해서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시작되었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이 강연은 최신의 연구 결과를 생생한 실험과 함께 보여주는 극장식 실험 강연으로 1825년 패러데이가 청소년들을 왕립연구소로 초청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는 1860년까지 모두 19번의 크리스마스 과학강연을 수행했는데, 1861년에는 강연을 모아 유명한 과학고전인 <양초의 화학사(The Chemical History of a Candle)>라는 책을 출간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재미있는 ‘크리스마스 과학강연’은 지금까지 거의 200년 동안 계속되고 있으며, 1966년부터는 공영방송인 BBC를 통해 전국으로 방송되고 있다.
런던왕립연구소는 매년 최고의 강연자를 찾기 위해 공모를 한다.
치열한 경쟁을 통해 선정된 과학자들은 수개월 동안 강연자료를 준비하고, 관련 내용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실험 장치를 제작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이며, 수십 번의 리허설을 반복한다.
그렇게 해서 그야말로 ‘영혼이 녹아든’ 과학 강연이 탄생하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재미있는 강연
유명 강연자 중에는 노벨 과학상을 수상한 브래그 부자(父子), <코스모스>를 저술한 칼 세이건 그리고 <이기적 유전자>로 잘 알려진 리처드 도킨스 등이 있다.
2022년 올해는 포렌식 사이언스(법과학)의 대가이자 해부학 전공자인 옥스퍼드 수 블랙 교수가 강연자로 선정되어 방송녹음을 다 마쳤고, 어제(26일)와 오늘(27일) 그리고 내일인 28일에 BBC 4를 통해 영국 전역으로 방송될 예정이다.
패러데이는 찰스 디킨즈의 소설에 등장하는 구두쇠 스크루지 영감과 동시대 인물이지만,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았다.
그는 크리스마스에 마치 산타크로스 할아버지처럼 ‘과학’이라는 선물을 듬뿍 가져다주었고, 그의 뒤를 이어 강연자로 나선 뛰어난 과학자들 역시 그의 정신을 이어받아 수없이 많은 청소년들에게 과학의 꿈을 가져다주고 있다.
한 사람의 선한 영향력이 전기시대라는 새로운 세상을 열었을 뿐만 아니라 크리스마스를 더욱 따뜻하고, 빛나게 만든 것이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우리 사회에도 선한 영향력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길 기원해 본다.
조숙경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