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관 로컬크리에이터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힙한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한 부산 '돌아와요 부산항에(RTBP). 사진=김태관PD 제공.
힙한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한 부산 '돌아와요 부산항에(RTBP). 사진=김태관PD 제공.

  2022년 연말 대한민국을 강타한 유행어다. 줄여서 ‘중꺾마’로 불리는 이 문구는 약 두 달 전, 인기 온라인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 2022 월드 챔피언십’을 보도한 기사의 제목에서 유래했다. 게임 커뮤니티에서 먼저 화제가 된 후 다양한 스포츠 분야로 확산됐다가 월드컵 당시 대한민국 대표팀 응원 문구로 쓰이면서 전 국민에게 알려졌다.

 게임 커뮤니티에서 이미 유행했던 ‘중꺾마’가 뒤늦게 서야 확산되는 과정은, 동시다발적으로 광범위한 파급력을 지닌 메가 트렌드 시대가 끝나가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사실 그 징조는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대유행을 선도하던 TV 시청률은 급전직하했다. 60%대에 육박하던 ‘국민 예능’ `국민 드라마’는 자취를 감췄고, 주간 예능 1위 시청률은 평균 15% 안팎에 불과하다. 대신, 수백 여 개의 케이블 채널이 생겼고, 이제는 N개의 플랫폼, 무한대의 채널에서 좁고 깊게 파고든 취향 저격 콘텐츠를 스트리밍하고 있다.

 심지어, 요즘 대세인 숏폼 플랫폼 틱톡에선 오로지 이용자 취향과 관심사 기반으로 콘텐츠를 추천한다. 그조차 8초 이내에 취향을 저격하지 못하면 이용자 피드에서 배제된다. 모두의 사랑을 받는 콘텐츠라는 게 사실상 불가능해진 셈이다.

충남 공주 한옥 게스트하우스 봉황재. 사진=김태관PD 제공.
충남 공주 한옥 게스트하우스 봉황재. 사진=김태관PD 제공.

 메가 트렌드 종말…취향은 극세분화

 반면, 뾰족한 취향을 드러내는 장르 물과 마니아층을 겨냥한 제품·서비스는 커뮤니티의 입소문을 타고, 서서히 대세를 형성한다. 극명하게 호불호가 갈리는 민트초코, 시청 층이 확연히 다른 트로트와 힙합 경연 프로그램, 단단한 팬클럽의 힘으로 세계 정상에 오른 BTS 등이 그 대표적 사례다.

 이처럼 취향이 극 세분화되는 이른바 ‘마이크로 트렌드’ 시대! 세계 어딜가도 엇비슷한 경험과 경관을 제공하는 대도시와 대량 생산-대량 판매를 목적으로 양산된 공산품은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 대신, 고유한 지역성과 문화성으로 새롭고 색다른 경험과 재미를 제공하며, 내가 지향하는 가치관에 맞는 매력적인 라이프 스타일을 충족시켜주는 ‘로컬’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로컬 빵집 순례라든지, 로컬 굿즈 열풍은 물론이고, 글로벌 명품 브랜드들조차 명동과 강남의 번화가 대신 성수동의 오래된 창고와 공장을 개조해 팝업 스토어를 열고 있다.

 최근엔 글로벌 커피 브랜드가 전통시장에 위치한 오래된 폐 극장을 현대적 매장으로 재조성해 큰 화제가 됐다.

서핑의 성지가 된 양양 서피비치. 사진=김태관PD 제공.
서핑의 성지가 된 양양 서피비치. 사진=김태관PD 제공.

로컬이 지닌 고유한 역사성, 문화성, 지역성을 브랜드에 덧입히는 방식이 마케팅의 정석이자, 힙한 콘텐츠의 작법이 된 것이다.

 로컬 콘텐츠를 경험하고 소비하는 대상·범위도 무한 확장 중이다. 단순히 인접한 곳에 살고 있는 지역민들뿐만 아니라, 자신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로컬’과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고, 현지인처럼 먹고, 자고, 살아보려는 모든 이들이 로컬 콘텐츠의 잠재적 소비층이 됐다.

 예컨대, 브라질, 스페인, 러시아의 청년들이 K-POP을 즐겨 듣고, 세계 각지 축구팬들은 바르셀로나, 마드리드, 뮌헨과 같은 유럽 도시의 로컬 축구팀을 응원한다. 오징어 게임에 나오는 한국의 골목 놀이를 중남미 어린이들이 따라 하고, 중동의 청년들이 삽입된 노랠 흥얼거린다.

서핑의 성지가 된 양양 서피비치. 사진=김태관PD 제공.
서핑의 성지가 된 양양 서피비치. 사진=김태관PD 제공.

 로컬 크리에이터 관심·지원 확장

 정부도 지역 혁신가, 로컬 크리에이터 창업 지원, 청년 마을 만들기, 로컬 브랜딩 사업 등 다양한 지원 제도를 만들어 ‘지역 상생’에 적극 나서고 있다. 새해 예산에서도 로컬 크리에이터 육성 분야의 예산도 크게 늘었다.

 로컬 크리에이터가 되고자 하는 지역민들의 관심도 어느 때보다 뜨겁다. 관련 분야 창업자도 갈수록 증가 추세고, 관련 교육에도 수강생들의 참여 열기가 뜨겁다는 걸 체감한다. 지난 11월, KBC에서 로컬 콘텐츠 페스타를 개최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누가 뭐래도 로컬 지향의 시대다.

서핑의 성지가 된 양양 서피비치. 사진=김태관PD 제공.
서핑의 성지가 된 양양 서피비치. 사진=김태관PD 제공.

 그런데 정작 로컬 내부의 대응은 아쉽기만 하다.

 생활 문화 기반 창업은 영세 자영업자로만 여기고, 지역에 남은 청년들은 B급 인재 취급을 당한다. 변화된 라이프스타일, 취향, 가치관 등 당대의 보편적 시대정신에 지역성을 얹혀 호소력을 높이려는 게 아니라, 지역성을 폐쇄적으로 해석하고 당위적으로 적용하려고 한다.

 여전히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수준의 고준담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의례적으로 새 건물을 짓고, 일회성 이벤트로 셀럽을 초청하며, 관련 업계에 얼마의 예산을 나눠주는 걸로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보니, 공공 예산이 투여된 로컬의 문화, 예술, 공간, 축제 콘텐츠는 번번이 흥행에 실패하고 만다.

 반면, 나다움과 로컬다움으로 무장한 로컬 크리에이터들은 지역을 새롭게 바꿔나가고 있다.

 철조망 드리운 양양 해변을 서핑의 성지로 만든 서피비치의 박준규 대표, 낙후한 부산 영도를 힙한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든 ‘돌아와요 부산항에(RTBP)’ 김철우 대표, 낙후한 공주 제민천 원도심을 청년들이 앞 다퉈 창업하는 마을로 만들고 ‘마을 스테이’로 주민들의 부가 소득을 창출한 ‘퍼즐랩’ 권오상 대표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이 밖에도 로컬의 고유한 자원을 변화된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창의적으로 재해석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는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지역 곳곳에 포진해 있다.

충남 공주 재민천. 사진=김태관pd 제공.
충남 공주 재민천. 사진=김태관PD 제공.

 ‘나다움’과 ‘로컬다움’으로 지역을 바꾸다

 이들이 겨우 살려낸 희망의 불씨를 꺼트리지 않으려면, 우리 모두의 정성과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먼저, 우리가 사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알리는 일에 힘써야 한다. 로컬 콘텐츠 제작은 나다움과 우리다움을 명확히 정의내리는 것에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체계적인 로컬 역사, 문화, 창업 교육이 수반되어야 한다. 흑산도 청년 `창대’의 재능을 발견해 한국 최고의 어류 생태 도감 ‘자산어보’를 집필한 정약전처럼, 외부의 보편적 시각에서 로컬의 매력과 경쟁력을 짚어줄 경계인(멘토)도 있어야 한다.

 로컬의 안과 밖을 잇는 소통의 통로가 더 다양해져야 한다는 뜻이다.

 겨우 자리잡아가는 로컬 크리에이터들의 도전을 응원하고 지지해줄 공공의 뒷받침도 필수다. 단순한 예산 지원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로컬 콘텐츠 소비자와 창작자가 서로 연결돼 선 순환할 수 있는 건전한 산업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지역을 선도하는 주체인 언론, 공공 기관, 기업 또한 그 스스로가 로컬 크리에이터가 돼야 한다.

 로컬 콘텐츠의 매력을 널리 알리고, 로컬에서 새로운 재미를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그 할 일이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에 앞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 ‘로컬에 무궁무진한 가능성과 기회가 있다’는 ‘희망’ 그 자체다. 계묘년 새해, 우리 모두가 함께 품었으면 하는, 끝내 꺾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태관 (KBC 콘텐츠미디어국 신사업콘텐츠부장·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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