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함께라면 더 강해진다

픽사베이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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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는 우리 삶의 중요한 한 요소다. 이 점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미 2,500년 전에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도 친구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강조한 바 있다.

 “이 세상에 좋은 것을 모두 다 가졌더라도 친구 없이 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부자나 권력을 가진 사람도 친구가 필요하다. 부족한 것이 하나도 사람도 친구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어려움을 겪을 때, 친구가 유일한 피난처라고 생각한다. 젊은 사람들에게 친구는 서로의 잘못을 바로잡아 준다. 나이 든 사람들에게 친구는 서로를 돌봐주고 부족함을 채워준다. 또한 친구는 잘나가는 사람들에게도 고귀한 행위를 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둘이 함께 가면 생각에 있어서나 행위를 하는데 있어서 더 강해진다.”

 친구와 함께라면 생각을 하거나 행위를 하는데 있어서 더 강해진다. 이 마지막 문장의 함의를 잘 기억할 필요가 있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서양 최초로 윤리학 단행본 저술인 <니코마코스 윤리학>이라는 책을 썼는데, 이 책에서 그는 우정에 대하여 매우 자세하게 논의를 펼친다. 옛날 그 시대에! 어떻게 그렇게, 한두 줄도 아니고, 정말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세세하게 논의할 수 있었을까! 참으로 놀라고 감탄스러울 뿐이다. “옛 것을 익히고 새 것을 안다”는 온고지신의 정신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과 주장을 되새겨 보고자 한다.

 ▲우정은 친밀성의 상호관계다

 우정이란 무엇인가? 친구들 간 우정 관계를 살펴보면, 그것이 중요한 몇 가지 사실을 포함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친구가 잘 되고, 친구에게 좋은 일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둘째, 그런 바람은 혼자만의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친구와의 상호 관계에서 일어난다.

 셋째, 이런 사실을 서로 간에 잘 알고 있다는 점이다. 친구를 위한 마음, 상호적 관계, 우정의 인지 등이 우정의 중요한 요소라고 말할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친구는 서로에 대해 선의를 가지며, 친구가 잘 있고 잘 되기를 바라며, 또 동시에 그런 사실을 서로 간에 인지하고 있는 친밀성의 인간관계인 것이다.

 ▲유익함이나 즐거움에서 우정이 생긴다

 서로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은 서로가 잘 되기를 바란다. 그들이 서로 사랑하고 좋아하는 그런 점에서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그런데 친구들 간의 우정은 크게 보면 두 종류로 나눠 볼 수 있다.

 첫 번째 종류의 우정은 유익함이나 즐거움 때문에 생긴 우정이다. 사람들은 유익하기 때문에, 이익이 되기 때문에, 뭔가 도움이 되기 때문에, 서로 친구가 된다. 또한 사람들은 즐거움을 주기 때문에, 재미있고 유쾌하기 때문에, 서로를 사랑하고 좋아하게 된다. 말하자면 그것이 유익함이든지 즐거움이든지 간에 상대방으로부터 자신에게 어떤 좋음이 생겨나기 때문에, 친구가 되어 서로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인색한 사람보다 돈을 잘 쓰는 사람을 좋아한다. 또 무뚝뚝하고 말이 전혀 없는 사람보다는 재미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것은 그 사람이 어떤 성격의 소유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유익함이나 즐거움을 주기 때문에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유익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돌아오는 어떤 이익이 되는, 어떤 좋음이 있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애착을 갖는다. 또한 함께 있으면 즐겁고 재미있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돌아오는 어떤 즐거움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

 그들은 사랑을 받는 사람이 유익함을 주는 한, 사랑하고 좋아한다. 또 자신들이 즐겁고 재미있는 한, 사랑하고 좋아한다. 이러한 종류의 우정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연적인 의미의 우정’이라고 정의한다. 왜냐하면 사랑받는 사람이 그 자체로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유익함이나 즐거움을 주는 한에서만 사랑받기 때문이다.

 만약에 친구들 간에 계속해서 이전처럼 유익함이나 즐거움을 주지 못한다면, 그들의 사랑은 쉽게 식어버리고 멈춰버릴 것이다. 그런데 유익한 것은 지속적이지 않다. 경우에 따라서는 유익한 것이 달라지기도 한다. 또한 인생이 항상 즐거울 수도 없다. 따라서 서로 친구가 될 수 있었던 유익함이나 즐거움이라는 이유가 사라지게 되면, 친구간의 우정도 희미해지거나 사라지게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연적이라는 뜻이다. 물론 이런 종류의 우정이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거나 나쁜 우정이라는 뜻이 아님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사실 인생의 많은 부분은 우연적인 다양한 요소들이 지배한다. 이 점을 간과할 수는 없겠다.

 ▲완전한 우정은 좋은 사람들 간의 우정이다

 두 번째 종류의 우정은 서로를 그 자체로 사랑하고 좋아하는데서 생기는 우정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종류의 우정을 ‘좋은 사람들 간의 우정’ 혹은 ‘완전한 우정’이라고 규정한다. 이들은 서로가 잘 되기를, 서로에게 좋은 일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그들이 좋은 사람인 한 그렇게 바라는 것이다.

 친구를 그 자체로 사랑하며, 친구가 잘 되고 잘 있기를, 친구에게 좋은 일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이러한 태도는 우연한 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좋은 사람이라는 그들 자신에서 그렇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의 우정은 그들이 좋은 사람인 한 지속된다. 각자는 그 자체로 좋은 사람이고, 친구에 대해서도 좋은 사람이다. 좋은 사람들은 단적으로도 좋으며, 결과적으로 서로 유익한 사람이다. 마찬가지로 좋은 사람들은 즐거움을 주는 사람이며, 결과적으로 서로에게 즐거움을 주는 사람이다. 좋은 사람들의 행위는 좋은 사람들 각자에게 즐거운 것이다.

 ▲친구는 또 다른 자기 자신이다

 친구는 좋은 삶, 잘 사는 삶, 그리고 행복한 삶을 위한 중요한 요소다. 아리스토텔레스는‘친구는 또 다른 자기 자신’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친구는 나 자신을 대신해서 언제든지 나의 빈자리를 채워 줄 수 있는 그런 존재다. 친구가 또 다른 나라고 한다면, 그렇다면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면, 나는 곧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좋은 사람들의 우정, 곧 완전한 우정은 완성될 수 있다.

 김양현 (전남대 철학과 교수·유튜브 `철학TV’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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