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유진 무대읽기] 연극 ‘리미트(re-meet)’
2023년 1월 5일부터 상무지구에 있는 ‘기분좋은극장’에서 연극 ‘리미트(re-meet)’가 무대에 오르고 있다. ‘리미트’는 개그맨 김민교가 대본을 쓰고 연출한 작품으로 2018년에 ‘발칙한 로맨스’라는 제목으로 시작한 작품이다.
처음 ‘발칙한 로맨스’라는 제목이었을 때는 어떤 연극이었는지 모르지만, 만약 그때나 지금이나 내용과 구성에 별다른 차이가 없다고 가정할 때, 적어도 제목은 ‘발칙한 로맨스’보다는 지금의 ‘리미트’가 더 나은 것 같다. 작품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남녀가 15년 만에 재회하는 첫사랑이기 때문이다.
젊은 날의 풋풋한 첫사랑을 15년이란 세월이 지나 다시 만나는 내용에 왜 ‘발칙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는지 궁금하지만, 지금은 그 제목이 아니니 그 부분을 파고드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2018년에 시작한 작품이 5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여전히 관객을 만나고 있고, 지방까지 진출한 것에 의미를 두는 편이 오히려 더 나을 것이다. 계묘년 새해 벽두부터 이 연극이 지방 관객을 끌어들이는 이유는 뭘까? 웃음 코드일까?
어린 시절에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꼈던 두 사람이 15년 만에 만나는 내용에 어떤 웃음 코드가 있기에 관객은 이 연극을 보기 위해 집을 나서고 극을 보면서 웃게 되는 것일까?
처음에 이 연극을 보러 갈 때는 이 연극이 관객을 웃기는 작품이고 첫사랑 이야기라는 것을 모르고 갔다는 것을 고백한다. 심지어 제목인 ‘리미트’가 한계를 뜻하는 영어 ‘limit’일 거라고 추측했다. 또, 연극을 홍보하는 입간판에 유명한 개그맨의 얼굴이 크게 인쇄되어 있어서 그 사람이 직접 출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했다.
아니었다. 개그맨의 얼굴은 입간판에서만 만날 수 있고, 재능이 많아 보이는 남녀 배우가 두 명씩 출연해서 오랜 세월이 지나 만난 첫사랑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남자 배우 한 명과 여자 배우 한 명은 첫사랑 역할을 하고, 다른 남자 배우 한 명과 여자 배우는 1인 다역을 맡는 이른바 ‘멀티맨’ 역할이다. 여기까지는 기존의 기획성 로맨틱 코미디물과 별반 차이가 없다.
차이가 있다면, 기존의 로맨틱 코미디물이 그나마 탄탄한 구성에 배우들의 역량이 뒷받침되어 피식거리는 웃음이든, 포복절도의 웃음이든 명랑만화 한 편을 보고 난 후의 기분을 느끼게 하는 것에 비해 이 연극은 기획과 제작 의도가 의심스러워지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평소에 ‘개그콘서트’나 ‘코미디빅리그’ 같은 예능 프로를 즐겨보지 않고, ‘사랑’이라는 주제나 ‘첫사랑의 재회(re-meet)’ 같은 주제에 진지하게 반응하는 관객에 해당하는 지극히 주관적이고 편파적인 소회일 수 있다.
왜냐하면 가슴에 첫사랑 하나씩은 품고 있을 것만 같은 나이 든 관객과 지금 사랑을 하고 있을지 모르는 젊은 관객들은 시종일관 웃으면서 극을 재미있게 관람했기 때문이다. 웃지 못한 것은 나와 내 옆의 어르신뿐이었는데, 어르신은 70이 넘어 보이는 남자분이었고, 그 어르신의 가족인 (역시 나이가 지긋한) 부인과 젊은 딸은 극을 관람하는 내내 즐겁게 웃었다.
그러니 이쯤 되면 ‘웃음’이라는 것은 개별적인 기준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러면서 앙리 베르그송의 유명한 저작물 ‘웃음’이나 18세기 이탈리아 연극인 ‘코메디아 델 아르떼’를 다시 찾아보게 된다. ‘웃음’을 유발하는 개인적 코드가 따로 있다고 해도, ‘작품에서 주는 웃음은 일반적인 기준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연극 ‘리미트’는 초반에 관객을 웃기려고 하는 데에 시간과 노력을 너무 많이 쓴다. 그런데 그런 장치를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넘어가지 않은 관객들의 진지함에 무대 위의 배우는 진땀을 흘리는 것처럼 보였다.
연극 ‘리미트’는 2월 12일까지 공연한다.
나는 어떤 웃음 코드에 반응하는지, 내 웃음의 기준은 무엇인지 알아보고 싶다면 이 연극을 리트머스로 사용해도 될 것 같다. 나는 내 웃음의 코드가 너무 오래되어 작금의 세대와는 맞지 않는 것 아닌지 궁금해졌다.
관객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서만 작품을 쓰고 올리는 거라면 굳이 ‘첫사랑과의 재회’ 같은 주제를 잡았어야 했는지 의문이기도 했고 말이다. 내게 ‘넌 너무 진지하고 올드해. 지금은 어떤 웃음이든 필요한 시대야’라고 창을 던진다면 기꺼이 맞겠지만 말이다.
임유진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