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책방 우리 책들] ‘엉엉엉’ 오소리
내 감정에 솔직하자는 말은 하기엔 쉽다. 듣기에도 제법 쉽게 들린다. 하지만 솔직해진다는 것은 그냥 있는 것을 드러내보이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것을 찾아내어, 그것을 언어로 바꾸고, 바뀐 언어가 적절한지 살피고, 살핀 것을 잘 다듬어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우리는 우리의 감정에 솔직한 것과 조금이나마 비슷한 상태에 머무를 수 있다.
감정과 생각 따위는 언제나 무형으로 존재하며, 그것들은 구체화되지 않을 때는 너무도 쉽게 흘러나가버리기 때문이다. 몸 안으로 흘러들어간 것은 우리를 구성하는데, 경우에 따라 우리 자신을 구성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무엇인지 모를 수 있다. 솔직함이란 그렇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 했다는데, 그것 역시 솔직하게 내 안을 들여다보고 구체화하는 일을 뜻한다. 오소리 작가의 ‘엉엉엉’(2022, 이야기꽃)은 나의 안을 들여다보는 일이 얼마나 힘겹고 또 복잡한 일인지를 보여준다.
한여름에도 뜨거운 차를 마시며, 따뜻한 옷을 입고 있는 곰쥐 씨가 ‘엉엉엉’의 주인공이다. 그는 이 무더운 날씨에 뜨끈뜨끈하게 살면서 땀을 뻘뻘 흘리는데도 계속 춥다고 말한다.
어느 날 곰쥐 씨는
모든 일에 짜증이 나고 화가 났습니다.
당장 손에 쥔 찻잔을 내던지며
고함을 지르고 싶었습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말이지요.
아니, 모든 것이 이유였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엉엉엉’ 중에서.
곰쥐 씨는 그 울음소리가 너무 거슬려, 자신의 짜증과 화가 그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울음소리의 근원을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한다. 어서 울음소리를 없애버리고, 평안을 찾기를 바란 것이다.
그러나 작은 틈새를 지나, 어두운 곳으로 걷고, 걷고, 또 걷는 동안 곰쥐 씨는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을 만나게 될 뿐이었다. 얼마 전의 곰쥐 씨, 어린 시절의 곰쥐 씨, 아주 어리고 작은 곰쥐 씨를 말이다. 각 시간에 머문 곰쥐 씨는 아프고, 화나고, 슬프고, 무섭고, 불안한 마음을 가진 채로 계속계속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울음의 감정을 계속해서 분출해내는 이 여러 곰쥐 씨를 만나러 가는 길은 좁고, 어둡고, 날 선 바람이 목도리를 날려버리고, 눈물이 갑자기 흐르고, 포기하고 싶도록 지금의 곰쥐 씨를 힘들게 했다.
결국 가장 마지막 순간 나타난 어린 시절의 곰쥐 씨는 본인의 슬픔을 공감하지 못하는 곰쥐 씨였다. 슬픔을 멈출 수 없는데, 슬픔이 주변을 슬프게 만들기 때문에, 더 이상 소리내어 울지 않겠다고 말한다. 슬퍼함에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지금의 곰쥐 씨는 이렇게 말한다.
“아니야, 그게 아니야.
난 너를 혼자 둘 만큼 약하지 않아.”
곰쥐 씨는 팔을 굽혀 근육을 뽐냅니다.
사실 근육이라기엔 말랑하지만
작은 곰쥐에겐 충분히 든든해 보일 겁니다.
‘엉엉엉’ 중에서.
그리고 곰쥐 씨는, 어린 곰쥐 씨와 헤어지고선, 혼자 바위에 앉아 조금 울고는, 다시 울음소리가 들려와도 행복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간다.
곰쥐 씨가 만났던 각 시간의 곰쥐 씨는, 다른 사람이거나 단순한 기억일 뿐 아니라 곰쥐 씨를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그는 어떤 순간엔 두려웠고, 짜증이 났고, 무서웠고, 슬펐던 것이다. 그런 감정들을 공감하지 않고 가두어두면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그럼 새어나오는 것에 짜증이 나고, 화가 날 것이다. 스스로에게 화가 나면 스스로를 파괴하게 된다.
곰쥐 씨가 과거의 곰쥐 씨를 받아들인 과정은 참으로 용감하다. 책에서는 바람과 어둠의 공포만을 말했지만, 아마 많은 사람들에게 ‘스스로의 과거를 돌아보고 이해하는 과정’은 아주 어려울 것이다. 특히 그 과거의 감정이 부정적이라면 더욱 그렇다. 꼭 과거가 아니더라도, 내가 다루어보지 않은, 묻어두려고만 했던 감정이라면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알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우리는 실패하고, 망치고, 감정을 이해하려다 공격해버리고, 더욱 더 깊은 곳으로 억압한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을 보라. “근육이라기엔 말랑하지만 작은 곰쥐에겐 충분히 든든해 보”이는 곰쥐 씨의 팔을! 그는 슈퍼히어로가 되지 않았지만 자신에게 믿음을 줄 수 있을 정도로는 마음의 힘을 키웠다. 어쩌면 이 모든 두려운 일들은 사소할 것이다. 우리가 내야 하는 용기는 바로, ‘지금 내 모습으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생각 뿐일지도 모른다.
문의 062-954-9420
호수 (동네책방 ‘숨’ 책방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