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고필 터무니를 찾아서]새해 첫 여행길서 만난 사람들(2)

명가은의 명자꽃.
명가은의 명자꽃.

 이번에는 관방제림을 둘러볼 차례다. 하늘을 맑은데 냉랭한 날씨였다. 하지만 어렵사리 들리신분들이라 핫팩을 하나씩 챙겨드리고 담양부사 성이성이 쌓은 이곳의 연원과 그가 어쩌면 성춘향과의 로맨스의 주인공일 것이라는 설명까지 경북 봉화의 이몽룡생가 라는 곳과 연계하여 말씀 드렸다.

 믿기지 않아하는 표정을 보면서 웃음이 나왔지만 봉화에서 꿈결인 듯 이몽룡 생가 하고 밑에 성이성 생가라는 표시를 안동 지나 봉화를 거쳐 가며 보았었고 다시 여러모로 검색을 해 보니 연세대학교의 설성경 교수가 여러 문헌과 행적을 통해 뒷받침 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금준미주는 천인혈이요 옥반가효는 만성고’(金樽美酒千人血 玉盤嘉看萬姓膏)라고 하는 유명한 시가 바로 성이성의 작품이며, 아버지인 성안의가 남원부사를 했고, 성이성은 4번이나 암행어사를 역임했다는 것, 춘향이의 성씨가 성이라는 점 등과 그가 52살이던때 순천으로 암행을 갔다가 신분이 노출되어 소환될 적에 남원에 들러 춘향이를 찾았지만 종내 보이지 않자 회한에 찬 시를 남겼다.

 “서리와 함께 난간에 앉으니/ 눈은 뜰에 하얗게 깔려있고/ 눈 쌓인 대숲은 흰그늘이다/ 나는 소년 시절의 일을 생각하며/ 밤늦도록 잠들지 못했다.” 라는 내용은 그야말로 성이성이 그 이몽룡이 아닌가를 유추할 수 있게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믿기지 않아하는 표정에 “햇빛에 물들면 신화가 되고, 달빛에 그을리면 전설이 되고, 3대가 우기면 진실이 된다”라면서 그저 웃음으로 버무리고 말았다.

해동문화예술촌.
해동문화예술촌.

 ‘핫플’ 담빛예술창고·해동문화예술촌

 관방제림 중간에 옛 남송창고에 들른다. 지금은 담빛예술창고로 갤러리와 카페 그리고 대나무 파이프 오르간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핫플레이스다.

 식량 증산 시대의 산물이었던 곳이 개점휴업이 되어 비워진 곳을 뜻있는 기획자와 담양군이 지혜를 모으고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 사업을 통해 복합문화공간으로 탄생한 명물이 된 대표적인 사례이다.

 우리 일행은 그 내부를 꼼꼼히 살펴보고 전시된 작품들을 둘러보며 이런 공간들이 지역 문화의 새로운 숨구멍이자 관계인구 유입의 도화선으로서의 역할, 예술인들의 창작 접점을 형성한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다시 걸음을 재촉하여 담양읍 석당간에 이르렀다. 담양의 지세가 배가 떠가는 모양이니 이를 흘려 보내면 재화가 축적되지 않으니 붙잡아 둘려는 의지를 모아 돛대를 세운 것이라 설명하니 나주에 있는 두기의 석당간과 공주 갑사의 철당간까지 이야기가 펼쳐진다.

 역사 전공자들이 있으니 서로의 말씀들이 풍성해지며 지혜가 넘쳐나는 흐뭇한 풍경이 석양과 어우러진다.

 가로수길에 연접해 있어 자세히 보지 않으면 무심히 넘어갈 수 밖에 없는 당간을 두 해 전 해체 작업을 할 때 상륜부에 오른 적이 있다. 운전대 같은 보륜을 뽑아 보니 두사람이 겨우 들 정도로 무거웠고 꽂히는 연결 부위에는 바람에 순응하여 움직일 수 있는 여백을 두었다.

 꽉 조여 놓으면 세찬 바람에 석당간과 함께 무너져 버린다는 것을 옛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 행선지는 막걸리 주조장을 복합문화시설로 탈바꿈한 해동문화예술촌으로 가는 것이다.

 해 어스름이지만 아직 여섯시가 안되었으니 좀 서둘러 당도했다. 역시 언제나처럼 학예사 선생님이 나오셔서 주조장의 역사에서부터 리모델링의 과정과 이 안에서 펼쳐지는 재미난 프로그램과 전시를 소개해 주신다.

 또박 또박 짚어주는 해설에 푹 빠져든 일행을 두고 나는 잠들기 전에 먹을 것은 챙기러 먼저 나왔다.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오늘 밤일 터이니 든든하게 준비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한 40여분 정도 음식을 준비하고 책방에서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이런 설명이 너무 깊어졌나 싶어 전화를 해도 응답하지 않는다. 일곱시 담양 고서의 전통식당으로 식사를 예약했는데, 늦으면 어쩌나 싶어 조바심이 났는데 잠시후 전화가 온다.

 설명이 너무 진지해서 전화 받는 것도 결례 같아 못받았다면서 이제 끝났으니 식당으로 출발하겠다는 목소리다.

환벽당의 전경.
환벽당의 전경.

 식당에서 터진 이야기 ‘천일야화’

 오 7시 남도의 한상차림이 가득한 전통식당에서 다섯으로 늘어난 우리는 맛있게 음식을 대한다. 상차림이 거하니 술 한 순배도 빠질 수 없어 소주와 맥주를 시키고 잔을 마주한다.

 그리고 오늘 여행에 대한 교수님의 술회가 시작된다. 담양의 산하가 지닌 환경적인 아름다움에 곳곳에 자리한 문화공간과 삶의 문화가 스며있는 곳들에 대한 상찬과 더불어 한번도 듣지 못했던 살아왔던 삶의 궤적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맨 처음 대금을 연주하고 어느 대회에서 장원을 했던 경험과 그날 이후로 대금과 결별하고 전통음악의 원리를 연구했던 시절, 조선시대의 의궤반차도에 그려진 행렬을 통해 우리 음악이 어떻게 활용되었는지를 밝혀보는 일련의 과정은 악학궤범과 의궤반차도 같은 행렬도에 등장하는 악사와 깃발, 거기에 군사들의 진법까지 결합하여 연구하니 그 실마리가 밝혀지더라는 이야기는 너무나 흥미진진했다.

 불쑥 ‘형님으로 모시겠다’는 말을 던졌던 지난 일들이 좀 우스꽝스러웠다.

 얼굴을 이리저리 살피는데 당신이 지내왔던 지난날들의 이야기를 좀 더 하겠다기에 자리를 파하고 어머니 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사실 오늘 밤이 마치 천일야화의 밤이 되겠구나 라는 기대감으로 나는 벌써 들떠 있었다.

 양파껍질처럼 까도 까도 계속 끝나지 않을 한 시대를 풍미하며 살아온 여행길 동반자의 이야기. 셋이 길을 떠나면 필시 나의 스승이 하나는 있을 것이라는데 나는 두분의 스승과 이틀을 보내는 행운을 잡은 것이다.

 가볍게 준비한 술과 안주를 차리고 본격적인 이야기에 돌입한다. 삶에 관한 이야기는 누구나 곡절이 있기 마련이기에 결코 가벼이 들을 수는 없다. 서로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며 일종의 변곡점의 순간을 주고 받았다. 교수가 되기까지 공연 기획과 문화기획분야의 현장을 누비던 이야기와 축제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가운데 보령머드축제, 해미읍성축제, 대전 사이언스페스티벌 그리고 서울강동의 암사동 선사문화축제까지 기획하고 실행해왔던 것들의 중요한 지점들을 들려주신다.

 현장 속에서 만나게 되는 많은 요소들이 지뢰와 같은데 이것들을 잘 포용하거나 극복했던 방법들이 귀에 쏙쏙 들어온다. 개인적으로 사사 받는 밤은 짧았다. 노독을 부여하고 싶지 않아 물러나온 시간이 오전 1시였다.

청초한 겨울 소쇄원.
청초한 겨울 소쇄원.

 소쇄원,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염원

 이른 아침 어머니가 준비한 조반을 먹고 소쇄원으로 향한다. 둘러보신 경험이 있기에 맑고 청량한 아침 정원의 풋풋함에 약간의 설명만 가미하며 내부를 거닐었다.

 중심을 두고 설명한 것은 은유의 공간으로서 소쇄원이 내재한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염원이 봉황을 기다리는 대봉대나 거문고를 연주하며 그 소리를 들어줄 이들을 찾는 것, 새들이 모여드는 시누대의 숲을 만든 것 등으로 표현된다는 말씀을 드렸다.

 이번에는 송강 정철을 거두어 기른 환벽당으로 간다. 이곳의 설명은 송강과 기축옥사가 가져온 파장이 배역의 땅으로 호남을 명명하는 비애였다.

 그리고 푸르름의 고리라는 환벽당의 당호를 지어준 영천자 신잠이 장흥에서 17여년 동안 유배 생활을 하고 해금이 되어 태인의 현감을 지냈는데 그곳 사람들이 그를 존중하여 살아있는 사람의 사당인 “생사당’를 짓고 그와 부인과 아이와 시녀 그리고 호랑이를 새긴 목상을 안치해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아침 햇살이 조금씩 따스해지니 이번에는 호수생태원을 들렀다. 황지해 가든 디자이너의 해우소와 금지된 정원이라는 두 작품을 마주하며 누정과 원림에 대한 현대적 해석의 확장성을 소재 삼아 얘기를 꺼냈다. 굳이 설명이랄 것도 없이 두런두런 주고 받으며 서로의 허전함을 채워주는 길이었다.

고인돌유적지 핑매바위.
고인돌유적지 핑매바위.

 마지막 여정 화순 고인돌 유적지

 다음 행선지는 식영정이지만 이를 접고 명가은이라는 찻집을 향했다.

 녹차나 황차 한잔하면서 고즈넉한 찻집의 분위기에도 스며들자는 생각이었다. 모처럼만의 찻집 방문이지만 포근하게 반겨주는 그곳은 내게는 석사 논문을 쓰느라 의탁했던 공간인지라 더 각별했다. 1월임에도 벌써 꽃을 피워올린 명자꽃을 신비롭게 바라보며 음미하는 황차가 온몸을 데워 주었고, 여느 농가와 다름없는 곳을 뼈대를 살리고 가꾸어온 이 집의 정경에 모두들 감탄하는 시간을 보냈다.

 이제 우리 여정의 마지막은 화순 고인돌 유적지였다.

 입구의 초입에서부터 내부로 들어갈수록 공간의 역사성이 원시성과 맞고, 현재의 경관이 갖는 특징을 미학적으로 구현해내는 것이 관건이라는 조언을 들으며 여행길을 마감하게 되었다.

 내가 가진 지식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여행이 아니라 서로가 지닌 특징과 경험을 마주하는 대상에서 드러내게 되면 여행이 더욱 흥미롭고 풍성해지며 공감대를 형성하는 중요한 계기로 작동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 진정한 신년 여행길이었다.

 전고필 (여행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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