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청일의 독서일기] (35) 숏컷(short cut), 박하령, (주)자음과모음

필자는 그 동안 책을 읽고 조금씩 메모해 온 내용들을 독자들과 ‘공유하고 토론’하고자 글을 쓰게 되었다. 내용은 책 소개와 정리, 간단한 소감, 또는 깊이 있는 분석과 평가 등 책에 따라 달라진다. 읽기 편한 대화체 형식으로 서술하고 1차 목표는 100권이다. 100권을 쓸 수 있게 만드는 힘은 독자들과의 건강한 토론이라 믿고 있다. <편집자주>

‘숏컷’ 표지(박하령, (주)자음과모음)
‘숏컷’ 표지(박하령, (주)자음과모음)

 2018년~19년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놀랄만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텔레그램, 카카오톡 등 메신저 앱을 이용하여 피해자들을 유인, 협박하여 성착취물을 찍게 하고 유포한 디지털 성범죄, 성 착취 사건인 n번방 사건과 박사방 사건입니다. 실제 피해자는 20-30명으로 파악되었는데, 경찰은 범죄 가담자가 2020년 3월 기준으로 영상 소지, 배포자를 포함해 최소 6만여 명이라고 발표하였습니다(n번방 사건, 위키백과).

 주범 조주빈에게는 범죄단체조직죄(‘범단죄’)가 적용되어 40년 이상의 징역형이 확정되었습니다(국민일보, 2023. 2. 3).

 2018년 11월에는 클럽 버닝썬에서 폭행사건으로 시작하여 조사 과정에서 승리, 정준영, 최종훈 등 연예인들이 연류된 성매매 알선과 카카오톡 단톡방을 통한 불법 촬영물 유포, 공유 등의 범죄가 진행되었다는 게 드러났습니다(버닝썬 게이트, 나무위키).

 2019년에는 서울교대생들이 수년간 남자 재학생과 졸업생들의 ‘남자 대면식’ 행사에서 여학생들의 얼굴을 평가하는 등 성희롱 자료를 만들어 돌려보는 등의 집단 성희롱을 벌여왔다는 게 드러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이들이 공유하는 카카오톡 단톡방에는 현직 교사도 있었는데, 자신이 가르치는 초등학생을 성적 대상으로 삼는 대화 내용이 공개되기도 하였습니다. 서울교대는 이들에게 정학 3주 처벌을 내려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습니다(한겨레, 2019. 5.12).

 그러나 곧이어 서울교대 남학생들의 단톡방 내용이 2차로 학생들에 의해 공개되었는데, 여기에는 여자 선배, 친구, 심지어 여교수까지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성희롱 대상이 되었다는 게 담겨 있었습니다. 심지어 자신들의 단톡방 성희롱 사건이 드러나서 수사를 받고 있음에도 “우리끼리 놀겠다는데 왜 지들이 하지 말라고 해”, “남대해 저런거 휘둘리면 끝도 없어, 꿀릴 게 없는데 뭐.” 등의 대화를 당당하게 나누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는 게 드러나기도 하였습니다(에듀프레스, 2019. 6.17).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들이 지난 몇 년 후 오늘 우리 사회의 모습은 어떨까요? 그리고 학교 현장은 어떨까요? 우리는 인터넷을 장악하고 있는 혐오 댓글 중 여성에 대한 혐오 댓글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학교폭력 중에는 집단 성희롱, 성폭력 사건들도 포함되어 있기도 합니다. 사람들의 의식과 사회적 통념들이 몇 년 만에 ‘상전벽해’처럼 변하지 않는다는 걸 생각해 보면, 몇 년이 지난 오늘날의 현실 또한 그다지 크지 않다는 걸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런 현실을 학교라는 공간에서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박하령 작가의 ‘숏컷(short cut)’ 단편을 살펴볼까 합니다.

 『숏컷』에는 ‘숏컷’ 이외 다섯 편의 작품이 실려 있습니다. 모두가 읽어볼 만한 작품이지만, 필자가 볼 때 ‘숏컷’은 위에서 살펴본 우리 사회의 여러 사건들을 이해할 수 있는 우리 사회의 ‘거울’이자 ‘자화상’, 또는 ‘축소판’이라 생각합니다.

 크기도 작고 34쪽밖에 되지 않지만 빠르게 진행되는 서술, 긴박하게 진행되는 구성과 시원하게 제시되는 해법까지, 돌아보고, 생각하고, 토론할 ‘거리들’이 많습니다. 필자는 주인공 승아를 중심으로 순차적으로 ‘사건’을 재정리해 보면서, ‘거리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사건 1. ‘숏컷’ 때문에 곤란한 상황 직면한 승아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어린 시절 할머니의 물음에 승아는 “난 할머니가 좋아”라는 말로 그 위기를 벗어난 거처럼 합리적 사고를 합니다. 하지만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급한 성격이기도 합니다.

 “엄마 지인의 빽으로 간신히 우등생들만 다닌다는 학원에” “턱걸이”로 들어가게 된 승아는 숏컷을 하게 됩니다. “투지를 반영하는 거”라 믿고 있는 엄마이지만, “긴 생머리 마니아”인 승아가 과감하게 커트를 한 건 순전히 같은 반 반장 ‘주이수’와 같은 학원에 다니기 때문입니다. 승아가 볼 때 학원 여학생들은 자신처럼 긴 머리 일색이었는데 거기다 얼굴까지 다 예쁩니다. 그러니 그 여학생들과 “차별화 전략”으로 “순전히 주이수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커트를 한 거지요.

 승아는 평소 남고 비교하는 짓도 잘 하지 않습니다. 불행의 지름길이라는 걸 잘 알고 있기에. 그래서 절대 비교하지 않으며 나름 줏대 있게 산다고 믿었는데, 이상하게 그 학원에만 가면 자괴감이 듭니다.

 그러던 중 승아는 같은 반 손다연의 부탁을 받고 사건을 마주합니다. 승아가 “내 친구 이야긴데” 하면서 해준 이야기. 같은 반 친구들과 길에서 우연히 마주쳐 재미나게 놀았는데, “노래방에서 춤춘 장면을 아주 교묘하게 편집”한 동영상을 남학생들끼리 돌려본다는 겁니다. 승아는 대번에 “우리 반 놈들이네?”라며 핵심을 지적합니다.

 사촌이 같은 학교에 다니는데 돌고 있는 동영상을 사촌이 보게 되면 아빠에게 말이 들어갈 거고, 그러면 자신은 말보다 주먹이 우선인 아빠에게 죽은 목숨이라 벌벌 떠는 다연이. 그래서 승아는 중학교 동창인 입이 무거운 ‘민혁이’에게 한번 알아보겠다며 약속을 합니다.

 하지만 마음이 영 찜찜합니다. “상대는 한두 명이 아니라 이미 익명의 다수인 것” 같으니. 하여간 숏컷이 문제입니다. 다연이가 승아에게 부탁을 한 건 숏컷 때문이었으니.

 “네 숏컷이 인상 깊었어. 카리스마 작렬이었거든.”

 사건 2. 선망하던 이수와 데이트를 하다

 다연이의 부탁을 받은 날부터 승아는 머릿속이 복잡해 집니다. 괜히 오지랖을 부렸나, 이제라도 거절해야 하나, 그러나 쉽지 않습니다. “숙제하는 마음으로” 주말에 민혁이를 만납니다. 민혁은 “남자애들 단톡방에 뭐가 돌긴” 해서 본인도 보았다고 합니다. 순간, 승아는 배신감과 자괴감을 느낍니다. “저딴 놈을 내가 심지 깊다고 생각”했다고. “눈물을 쏟으며 죽을까도 생각했다”는 다연이를 생각하면 화가 나기도 합니다.

 “내가 뒤져서 본 것도 아니고 내 폰에 들어온 거 본 건데, 남의 인생까지 일일이 생각해야 해.”

 “그냥 톡에 떴길래 열어 본 것 뿐이야.”

 시비 걸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갑니다. 그때 이수에게 “학원 프린트물 잊어 버렸다고 복사하게 빌려달라”는 문자가 옵니다. 한편으로 이수가 자신의 폰 번호를 알고 있다는 생각에 감동하고, 다른 한편으로 어색했던 민혁에게 동영상을 누가 유출했는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마음이 급해집니다. 프린트 낙서도 지워야 하고, 옷도 갈아입어야 하고, 얼굴에 비비크림도 발라야 하고. 복사하고 간식들을 사 먹으며 이수는 학원 사이트에 들어가면 다운로드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 말의 의미를 아는 승아는 스릴과 낭만을 느낍니다. 거기에 이수는 이번 주부터 엄마에게 데리러 오지 말라고 했다며 승아에게 학원 같이 가자고 제안합니다. “오늘부터 1일”인 거죠.

 하지만 그날 이후 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아서 날짜를 세기도 그렇습니다. 이수가 자신의 주변에서 알짱거리고 있지만. 승아는 그럴수록 이수의 매력에 빠지게 됩니다. “아스라함이 주는 신비함”, “터프한 매력”, “그들만의 세계에 대한 동경” 같은 게 생깁니다.

 사건 3. 학연초 졸업생들 : 범죄란 사실을 모르다

 며칠 뒤 하교길에 민혁이 다가오더니 자신이 알게 된 내용을 마구 쏟아냅니다. 승아와 함께 있는 여학생이 다연이인 줄도 모르고. 학연초 얘들 작품이라고. 걔들 상습범이라고. 너희 반 준경, 세찬, 재호, 이수가 학연초 졸업생들이라고. 그중 영상 크리에이터가 꿈인 재호는 중딩 때부터 유명한 유투버였는데, 볼만한 것들도 만들지만, 애들 입맛 맞추느라 그딴 짓도 하는 거라고.

 이수가 있다는 말에 “설~마”하는 승아에게 민혁은 “같이 만든 놈이 한 말”이라고, “당해도 싸다”고 했다는 말도 전해줍니다. 그날 논 애들은 준경이와 현호뿐이었다는 다연이의 말에, 이수가 없음을 확인하고 승아는 일단 안도를 합니다.

 그러나 동영상이 퍼지는 속도는 “실시간으로 국경을 초월해 퍼져” 나가니 상황이 심각합니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아무런 죄책감 없이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겠지요. “악의조차 없으므로 더 해롭고.” 가해 학생들은 “그게 범죄란 사실”을 모르니까. 여기에서 몇 가지 생각거리를 던져 보겠습니다.

 생각거리 1. 공부 잘하는 학생들인데 왜 이런 짓을 할까?

 승아는 가해자들인 학연초 졸업생들은 입학 배치고사와 교외 경시대회 수상을 휩쓸 정도로 자부심도 높은 아이들인데 왜 이런 동영상을 제작하고 유포하는 일을 하는 건지 의아해합니다. 이런 생각에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에 대한 편견이 밑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뭐든지 잘할 거고, 도덕심도 높을 거니, 당연히 ‘성평등 의식’뿐 아니라 ‘성인지 감수성’ 또한 높을 거라는 편견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서두에서 공부 잘해서 서울교대를 진학한 학생들의 범죄 사례를 확인하였습니다.

 이보다 더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경우는 2011년 5월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생들의 동기 여학생 집단 성추행 사건입니다(이와 관련한 내용은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생 성추행 사건’(나무위키)를 참조하였음). 6년 동안이나 함께 공부한 동기 여학생을 성추행하고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까지 한 사건이었습니다.

 심각한 문제는 피해자가 다음날 곧바로 고려대 양성평등센터를 찾아 성폭행 피해 상담을 신청하고 경찰이 곧바로 수사를 진행하였지만, 고려대학교측은 내내 방관하였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의대 교수들이 가해자들을 피해자와 함께 시험을 보도록 했으며, 심지어 학생들에게 “가해 학생들이 다시 돌아올 친구니까 잘해줘라”고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가해자들의 2차 가해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한 가해학생은 어머니까지 가세하여 피해자에 대한 악의적인 설문조사를 진행하였습니다. 이들은 모두 명예훼손으로 기소되어 실형을 받았지만 이후 감형되어 벌금형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가해자들과 가해자 가족들은 “피해자가 문제가 있었다”, “가해자도 끝났지만, 피해자도 끝난 것이다”는 협박을 일삼았습니다.

 본과 4학년이었던 가해자들은 도대체 의대에서 6년 동안 무얼 배웠던 걸까요? 이들에게 의사로서의 윤리와 사명감, 성평등 의식이 있었던 걸까요? 이들을 가르쳤던 의대 교수들은 어떨까요? 대학측은 어떨까요? 가해자들의 부모는? 이들 모두는 혹시 ‘한 순간의 실수’로, ‘여자 때문에’, ‘의대 다닐 정도의 우수한 능력의 남자들’이 그동안 쌓은 공든 탑을 무너뜨리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신념’처럼 가지고 있는 건 아니었을까요?

 생각거리 2. 다연이의 반응이 과민반응일까?

 민혁이가 가고 난 다음 승아는 “자포자기한 듯한 표정의 다연이를 위해” 어떻게든 이 사건을 가볍게 만들어보려고 다음처럼 말합니다. “네가 너무 과민반응하는 거 아닐까? 민혁이 말로는 별것도 아니라던데 …. 그냥 흐지부지 사라질 수도 있잖아.”

 이에 대해 다연이가 한 말은 많은 걸 생각하게 합니다. 무엇보다 피해자들의 심리와 생각을 아주 조금이라도 알 수 있게 해 주는 거 같아서 인용을 해 보겠습니다.

 “평소 수위가 높은 걸 보는 남자애들에겐 별 게 아닐 수도 있겠지. 아닌 게 아니라 막상 보면 별건 없어. 하지만 어두운 조명 속에서 내 웃음소리를 배경 삼아서 내가 춤추는 실루엣을 넣은 동영상은 많은 걸 상상하게 하잖아. 그게 제일 무서운 거야.”

 승아 또한 상상은 실제보다 많은 걸 불러오니 “악의적인 편집이 얼마나 무서운 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연이에게 힘내자며 돌파구를 찾아보자고 위로를 합니다.

 생각거리 3. 이들은 왜 담임선생님과 학교에 고발하지 않나?

 다연이와 승아는 선생님께 알리는 건 절대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샘한테 말하는 순간 지금까지 은밀하게 돌던 동영상이 순식간에 전교생의 관림 필수 동영상이 될 게 뻔”하겠지요. “빠른 처리”를 위해 선생님들은 가해자로 의심되는 학생들을 닥치는 대로 교무실로 불러들여 닦달하게 되고, 소문이 순식간에 퍼지게 됩니다. 이 과정에 피해자에 대한 입장과 고려는 전혀 없습니다.

 “가장 최악은 가해자로 지목된 아이 중 하나가 부모님에게 억울함을 호소하게 되는 경우”입니다. 부모가 끼어 들면 인터넷 뉴스로 나가거나 법정으로 가게 되면서 어떻게 확대될지 모릅니다. 이 과정을 우리는 위에서 ‘고려대 의대생들’ 경우와 ‘서울교대생들’의 사례들을 통해 확인한 바 있습니다.

 사건 4. 식단 게시판에 대자보가 붙다

 며칠 후 급식실 옆 식단 게시판에 “오해하지 맙시다”라는 낯선 대자보가 붙으면서 상황이 급격히 달라집니다. 대자보는 3학년 선배들의 페미니즘 모임에서 올린 글입니다. 얼마 전 학내 토론대회에서 페미니즘 관련 주제를 들고 나온 학생을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사건이 있었음을 알리는 글로, ‘무지를 먹고 자란 여혐과 같은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자’는 “극히 미온적이고도 건설적인 글”이었습니다.

 하지만 대자보 밑에 붙은 포스트잇에 쓰인 댓글들은 상상을 뛰어넘는 글들이었습니다. 레이스 치마를 연상할 정도로 겹겹이 쌓인 포스트잇들 내용은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육두문자로 가득”했습니다. “욕과 욕이 만난 저급한 어휘들의 패싸움장.”

 그런데 다연이 놀라 가리킨 포스트잇 댓글에 “얼굴만 보고 오해하지 맙시다. 노래방에서 꼬리 치는” 내용이 있습니다. “얼굴이 백짓장처럼 하얗게 변하면서 쓰러질 거 같은” 다연을 보며 승아는 포스트잇 일부를 뭉텅이로 잡아뗍니다. 그러자 비난들이 쏟아집니다.

 “에, 숏컷! 네가 뭔데!” “숏컷, 너 페미 첩자냐?”

 야자 시간에는 이수가 불러내어 “발다연이랑 놀지 말라고” 엄포까지 놓습니다. “넌 내 여친이니까.” 그러면서 하는 말이 놀랍습니다. “실컷 꼬리 치고 딴소리하는 거라고.” 좋아하는 이수에게 한 방 먹은 승아가 멈칫, 하는데 이수는 계속해서 쏘아 붙입니다.

 “너 이제부터 멀리 길러. 탈코르셋인지 뭔지 그딴 거 땜에 머리 쳐 냈단 오해 받기 싫으니까. 너 그래서 머리 자른 거 아니잖아? 재수 없이 페미랍시고 남자도 아니면서 남자인 척하느라 머리 자르고 나대는 거 진짜 꼴사납거든.”

 이수의 “골 깊은 적개심과 거친 표현”을 곰곰이 생각하던 승아는 상대를 존중하지 않고, 여자애들의 행동을 비하하며 나대는 걸로 몰아붙이는 남성 우월의식으로 가득차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생각들이 결국 “죄의식 없이 동영상을 만들고 돌려보는 거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직접 동영상을 보게 됩니다. 여자 아이돌이 추는 춤을 따라 하고 있는 다연이. 평소 조용하고 내성적인 다연이는 춤 추는 걸 워낙에 좋아합니다. 그런데 화면을 악의적으로 편집하여 꼬리 치는 여자아이로 둔갑시켰습니다. 승아는 아무렇지 않게 동영상을 돌려 보고 비난하는 남학생들이 무섭게 느껴집니다. 거기에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는 무신경. 그러니 동영상의 제목을 다음처럼 지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깜놀, 얌전한 고양이.”

 문제 해결 : “잡히지 않을 때는 끌어들여라.”

 해법을 못 찾아 답답해 하던 승아는 야자가 끝난 교실에서 재철이가 미선이의 필통을 뺏아 남자애들에게 패스하며 놀리는 걸 보게 됩니다. 쫓아다니던 미선이 갑자기 멈춰 서더니, 재철이 가방을 창문 밖으로 던져 버립니다. 재철이는 필통을 내려놓고 허겁지겁 밖으로 달려갑니다. 그 순간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걸 깨닫습니다.

 다연이에게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를 물었더니, 그날 집에 가는 길에 준경이가 사귀자기에 거절했다는 말을 해 줍니다. “그래서 당싸라는 말이 나왔구나.” 승아는 그 즉시 준경이에게 전화해서 현호와 같이 나오라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유재호까지 불러 경찰서에서 만나자고.

 나온 아이들에게 승아는 이번 주말까지 편집자랑 배포자들끼리, 2차 유포자끼리 다 불러 싹 다 삭제하라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학연초 나온 학생들 평판이 완전 바닥으로 떨어질 거라고 엄포를 놓습니다. 돌아가는 승아에게 현호가 한 마디 합니다. 우리가 평소에 많이 듣고 읽게 되는 한 마디. 그리고 맞받아치는 승아의 말에서 또 생각거리를 얻게 됩니다.

 “야! 숏컷, 네가 뭔 상관? 너 페미냐?”

 “글세, 난 모르겠네. …. 페미가 잘못된 일을 감지하는 사람이라면 난 페미가 맞을 거야. 남자 여자 대결하는 게 페미가 아니라 한쪽으로만 치우치지 않게 균형을 맞추자는 게 페미니즘이라잖아. …. 그리고 숏컷은 페미랑 아무 상관 없는 그냥 취향의 문제야. 다연이가 춤춘 것도 너네가 공 차는 것과 하나도 다를 게 없는 기호의 문제라고, 알아?”

 ‘취향’을, ‘전쟁’으로 마주해야 하는 현실

 핸드폰 알람을 듣고 일어나거나 일어나자마자 핸드폰을 열어보고, 자기 전에 핸드폰 영상을 시청하거나 음악을 들으면서 잠자기. 일어나고 자기까지 하루 일과에서 핸드폰은 이미 우리 손에서 떨어지지 않는 분신과도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좋아요’, ‘싫어요’ 누름이 익숙하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옳다’, ‘그르다’를 따져보거나 비교하면서 생각하고, 대화하고, 토론해야 할 문제들까지, 즉, 이성적으로 ‘사실’과 ‘진실’, ‘진리’에 도달해야 하는 문제와 과정들까지 ‘좋아요, 싫어요’의 취향 문제로 취급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문제들을 오직 자신/자기집단/자기정당의 취향으로만 접근해서 그것이 마치 ‘정답’이고 ‘진실’이고 불변하는 ‘진리’인 거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게 일반화되고 있는 거 같아 우려스럽기도 합니다.

 ‘찍먹’이든 ‘부먹’이든 존중받아야 할 취향의 문제이겠지요. 그러나 춤추는 장면을 악의적으로 편집하여 제작하여 유포하거나, 심지어 더한 장면들을 몰카, 심지어 위협하여 찍고 제작하여 돈을 받고 유포하고, 이를 구매하고 저장하여 감상하는 행위는 ‘취향’의 문제가 아닙니다. 명백한 범죄이지요.

 범죄(사실)와 취향(기호)을 구분하지 못하게 하는 ‘환경’과 ‘조건’이 은밀하면서도 광범위하게 조성되고 있기도 합니다. 그 중에는 머리스타일도 있겠지요. 그래서 여성이 ‘숏컷’을 하면 남성에게 대항하는 강한 ‘페미’라고 딱지를 붙이는 거겠지요. 그래서 승아가 ‘취향’의 문제임을 알면서도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본인부터 ‘전쟁’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장면은 역설적이게도 씁쓸하기도 합니다.

 ‘숏컷은 취향이다’는 승아의 말은 존중받아야겠지요. 머리를 길게 묶어 다니는 남성들의 취향도 존중받고 사는 거처럼.

 백청일(논술학원장)

‘숏컷’ 뒤표지(박하령, (주)자음과모음)
‘숏컷’ 뒤표지(박하령, (주)자음과모음)

 ■ 참고문헌

 숏컷, 박하령, 『숏컷』, ㈜자음과모음, 2021.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생 성추행 사건, 나무위키(검색일: 2023. 2.13).

 버닝썬 게이트, 나무위키(검색일: 2023. 2.11).

 서울교대 단톡방 2차 폭로.. 여교수-선배-동기 무차별 성희롱, 에듀프레스, 2019. 6.17(검색일: 2023. 2.11).

 ‘집단 성희롱’ 서울교대생에 정학 3주? “솜방망이 처벌” 반발 확산, 한겨레, 2019. 5.12(검색일: 2023. 2.11).

 n번방 사건, 위키백과(검색일: 2023. 2. 11).

 n번방 처벌 ‘범단죄’… 점조직화·비대면 범죄엔 속수무책, 국민일보 2023. 2. 3(검색일: 2023.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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