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고필 터무니를 찾아서]벗들과 떠난 야생화 탐사 여행

변산바람꽃.
변산바람꽃.

 2월이 되면 벌써 겨울이 지긋지긋해진다. 어서 이 추위가 물러가야 할 것인데 하면서 감당하지 못할 바람만 가질 뿐이다. 인간이 자연의 섭리를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기준으로 2월하고 15일쯤 되면 거역할 수 없는 봄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감지한다.

 여기저기에서 변산바람꽃이 개화를 했다는 소식이 내 주위를 맴돈다. 간질거리는 내 몸도 어서 그 꽃을 향해 한 걸음 다가가고 싶어진다. 하지만 내가 아는 바람꽃이 피는 그곳은 작년부터 국립공원 관리사무소에 의해 폐쇄가 되었다.

 변산의 줄포 즈음에 있는 곳인데, 작년 가로막힌 입산금지’ 현수막에 발길을 돌리면서 이제 내가 봄을 맞이할 곳이 어디메인지 갈 곳을 잃어버렸다. 마치 집을 빼앗긴 것 같은 마음의 난민인 감정은 작년부터 올해 3월이 될 때까지 지속되었다. 그러던 3월초 고창에 있는 벗의 페이스북에 변산바람꽃과 노루귀 꽃이 등장했다.

몰입하는 벗.
몰입하는 벗.

 낙조를 즐기는 벗과 함께

 평소 고인돌유적지와 동림저수지의 철새, 고창해안의 여명과 낙조를 즐겨 찍는 벗인지라 그가 사진에 올린 것은 딱히 비밀스러운 장소는 아니리라 여기고 댓글을 달았다.

 “갈게.”

 답은 바로 왔다.

 “연락하고 오시게”.

 바로 전화를 했다.

 “내일 갈터이니 반차를 쓰게.”

 친구는 당연한 듯 길 안내를 하겠다고 했다.

 7일 오전 점심 약속을 한 후배에게 대뜸 전화해서 함께 가지고 하고 11시 20분 담양을 출발했다. 고창에 있는 후배 한 명이 합류해서 고창문화원 근처 왕돌판 삼겹살집에서 경북 청도에서 청정한 물에 재배했다는 미나리를 싸 먹는 호사스러운 점심을 먹었다. 일과가 바쁜 고창의 후배는 남겨두고 셋이서 굴바위가 있는 우반동 상류를 찾아 들어갔다.

 대불사라는 사찰이 있고, 그 측면으로는 거대한 바위산이 병풍같이 들어서 있었다. 한 번도 이 길을 찾지 않았는데 마치 개암사의 울금바위를 보는 듯한 착시를 느꼈다. 사찰 곁을 지나 산길로 접어드는데 안쪽에 국립공원 관리소에서 나온 아저씨 한 분이 큰 소리로 말씀 하신다.

 “산불방지 기간이라 입산이 되지 않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인사를 드리고 알겠다고 하고 돌아서려는데 친구는 굴바위만 보고 오도록 해 주시라고 인화물질이 없으니 잠시 들르게 해 달라고 부탁 드린다. 다행히 허락해 주셔서 가파른 산사면을 슬쩍 올랐다. 주변의 나뭇잎을 보니 정말 화기가 닿으면 삽시간에 큰불로 번질 듯한 현실이 느껴졌다.

 거대한 바위와 바위 사이로 반월 같은 굴이 드러난다. 높이도 웅장하고 깊이도 몇백 명은 숨을 만한 규모로 쉽게 만날 수 없는 자연형 동굴과 조우했다. 평평한 내부 구조의 한켠에는 약간의 습기가 배어 있다. 석간수가 나오는 곳이 분명할 터이다. 동굴 안에서 밖을 내다보니 산의 실루엣과 소나무와 참나무들의 군락이 눈에 들어온다.

 경관을 바라보는 시점이 늘 여러 각도에서 조망해야 하는 것임을 실감하며 굴을 빠져나와 사찰로 내려온다. 어르신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고 조금 내려오다 길 섶에서 노루귀를 발견했다.

 오를 때는 보이지 않았던 분홍빛의 노루귀가 입산을 거부당해 허탈하게 내려오는 길에 만나게 된 것이다. 딱 한 그루지만 이것만으로도 2023년 봄은 다 본듯한 희열을 가졌다.

 하지만 애써 나선 길, 심지어 반차까지 신청하고 함께 나온 길이니 벗은 다음 장소를 슬그머니 꺼낸다.

복수초와 노루귀.
복수초와 노루귀.

 웅장한 자연형 동굴과 조우

 내소사로 가자는 의견이었다. 그래 그곳은 변산의 중심 공간 중의 하나이니 통제를 하지는 않겠지 하며 우리가 보기로 했던 “변산바람꽃과 복수초와 노루귀”가 있는지 물었다.

 아쉽게도 그 지점에는 변산바람꽃은 없고 복수초와 노루귀의 군락지라고 한다. 조금은 실망한 마음을 감추고 차를 돌려 내소사로 향한다. 일반적으로 봄철 야생화는 오후 3시쯤 되면 열어두었던 꽃잎을 움츠리게 되는 습성이 있으니 조바심이 들 수밖에 없다.

 오랜만에 들리는 내소사의 전나무숲과 대웅보전 꽃창살문과 단청 등은 다 생략하고 선방을 지나 차를 주차하고 청련암이 있는 길을 따라 걸었다. 절집의 홍매와 백매가 활짝 피어서 그 향기가 그윽하게 풍겨온다. 잠시 눈길을 주고 다시 카메라에 그 모습을 담는다. 꽃나비와 벌들이 꽃들의 벗이 되어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기온을 보니 봄답지 않게 18도 정도까지 올랐다.

 커다란 꽃샘추위만 없다면 저 꽃에 매실이 주렁주렁 열릴 것이라는 기대를 해 본다.

 이제 본격적으로 산으로 오른다. 계곡을 따라 포장된 길이기에 크게 어려울 것 없는 산책로인데 경사도는 조금 있다. 거기에 계곡 산사면은 모두 바위와 잔돌들이 지난해 진 나뭇잎과 어우러져 있다. 10분도 채 되지 않아 그런 나뭇잎 사이로 하얀 꽃이 보인다. 산자고 꽃이다.

 이 꽃이 피었다는 것은 이미 복수초와 노루귀는 개화기를 지나 씨앗이 영그는 기간으로 진행중이라는 표식 일 터인데 싶어진다. 눈길을 주고 다시 렌즈에 담고 길을 더 오른다. 이번에는 비가 와야지만 계곡이 되는 비탈진 곳에서 노란 복수초꽃이 빛을 내고 있다.

 쌓인 눈을 뚫고 피어난 복수초 사진에 모두가 감탄한 그꽃 복수초가 여기저기 무더기로 피어 있다. 밤색의 줄기는 마치 미나리 줄기처럼 생겨서 미나리와 아저씨뻘 되는 그런 종이다. 잎은 솔잎처럼 생겼는데 사실 꽃이 먼저 피어나고 뒤를 이어 줄기가 성장하고 잎도 무성해지는 성질을 가진 꽃이다.

 이제 노루귀 그 앙증맞은 꽃들도 여기저기에서 눈길을 달라고 아우성이다. 이런 꽃 하나하나에 애정을 담아 렌즈에 옮기길 한시간 반, 서로 주고받는 말 한마디 없지만 우리는 야생화 탐사반의 동지로서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는 후배는 오십대 중반의 아저씨들이 대견스럽다고 대꾸해 준다.

 건전하다는 말 한마디가 우습긴 하지만 서로 마음이 맞아서 이러고 있으니 이 또한 보람이 아니겠는가 싶고, 다산 정약용 선생이 꾸렸다는 죽란시사라는 모임의 원칙도 또렷하게 상기된다. 계절의 꽃이 필 때마다 한번씩 모이는 낭만적인 원칙은 강호에 숨어사는 은자들의 성정을 꼭 닮은 규약이 아닌가 싶다.

 봄꽃을 탐한 한나절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만났던 꽃들을 복기해 보며 드는 잠은 꿀잠이었다.

꿩의바람꽃.
꿩의바람꽃.

 꽃무릇 가득한 영광 불갑사

 그리고 다음날인 8일, 어제는 번개팅과 같았다면 지난 늦가을 야생화 탐사를 떠나고 새 봄에 또 떠나자고 약조했던 두 벗님들과 약속날이다.

 장소는 영광의 불갑사다.

 광주에서 만나 한 대의 차로 출발하는 40분 동안 잠시도 멈추지 않고 오늘 만나고픈 꽃들을 이야기한다. 마음이 간절하면 다 만날 수 있다는 그런 신념이 가득한 야생화 탐사 모임은 언제나 지친 삶에 숨통을 트이기에 설렘으로 부풀어지기 마련이다.

 우선 점심을 먼저 해결하기 위해 사하촌의 보리밥집에서 곡기를 채우고 산으로 올랐다.

 해를 아침부터 받아 오후 2~3시면 그늘이 되는 산사면 쪽으로 길을 잡는다. 사방이 꽃무릇으로 가득한 불갑사인지라 어디에 가야 야생화를 만나지 하는 우려는 하지 않아도 되었다.

 산길을 걸은지 불과 5분여만에 노루귀를 만났다. 이번에는 하얀색이다. 곧이어 현호색이 나타난다. 여릿한 줄기임에도 가지를 치고 거기에 나팔 같은 꽃대를 여러 개 매달고 있다.

 하늘거리는 색감과 몸짓이 너무나 앙증맞은 현호색을 보니 벌써 신이 난다. 이런 꽃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이들의 자세는 어떨까? 내 자신도 그렇겠지만 다른 분들이 카메라를 들이대며 앵글에 포착하는 모습을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아마 군대에서 그렇게 하라고 했으면 못했을 법한 자세에 심지어 힘들어하지도 않는다.

 얼굴에 홍조를 띠고 기쁨 가득한 몸짓으로 하는 저 탐사 여행은 정말 환상의 여행이라 할 수 있다. 자칫 나쁜 이들이 있기도 하다. 이를테면 꽃과 자연과의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분무기를 드는 이들이나, 나만이 간직하거나 출품하려고 자신의 렌즈에 담고선 꽃을 부러뜨리거나 주변을 헤치는 경우가 거기에 해당된다.

 다행스럽게 불갑사의 야생화 탐사에는 그런 흔적이 없어 보였다. 어제 만나지 못한 나와 비슷한 부류의 탐사객들이 몇 팀이 있었고, 서로가 서로에게 정보를 주기도 하고 배려해주는 모습을 보았다. 계곡을 따라 들어가 드디어 이제 조금은 시들해가는 변산바람꽃을 만났다. 옅은 초록의 암술에 보라색 망울을 가진 수술이 하얀 꽃받침위에 하늘거리는 가녀리지만 야무진 꽃을 보며 내가 진짜 올해의 봄을 맞이한 것이 맞다는 인증 같은 눈맞춤을 보냈다. 비자나무와 참나무와 죽은 나무와 자잘한 잔돌무더기들. 그리고 바위돌이 즐비한 그 사이 사이에 우리는 보물찾기를 하는 어린이처럼 신나게 하지만 걷는 발걸음은 조심스럽게 다니면서 만주바람꽃과 중의 무릇을 별책 부록처럼 친견했다. 이제 서쪽으로 향하는 태양이 볕을 내리는 곳으로 이동했다. 여기에는 하얀노루귀와 분홍노루귀가 군락을 이루고 있고, 산자고도 곳곳에 군집해 있었다.

 게다가 꿩의바람꽃까지 만개해 있었다. 간간이 벌들이 꽃에 앉고 꿀나비가 노니는 깊지 않은 계곡의 품안에서 풍찬노숙을 하며 꽃대를 올린 그 강인한 생명력과 장엄함에 감히 받들어 꽃’을 외치며 불갑사를 벗어나 집으로 돌아왔다. 어제와 오늘 만난 꽃들의 이름을 다시 호명해 본다.

 “노루귀, 복수초, 산자고, 현호색, 변산바람꽃, 만주바람꽃, 꿩의바람꽃, 중의무릇” 그리고 또하나 “사람꽃”

 글·사진=전고필(여행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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