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책방 우리 책들]‘손을 내밀었다’ 허정윤
사람들은 많은 이유로 머물던 곳을 일시적으로, 혹은 영원히 떠난다. 여행을 위해, 일을 하기 위해, 그러니까 어떤 형태든 새로운 삶을 찾기 위해. 그러나 새로운 삶이라 함은 항상 같은 빛깔을 띠지 않는다. 항상 희망적인 방향으로만 흐르는 것도 아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생존 자체가 새로운 삶이다. 허락받지 못한 삶을 허락받고자 떠난다.
허정윤이 글을 쓰고 조원희가 그림을 그린 ‘손을 내밀었다’(2023·한솔수북)는 이렇게 떠나고 떠도는 사람들에 대해 말한다.
작은 불빛이 번진다.
전쟁이다.
<손을 내밀었다> 중에서.
시작부터 끝까지 주인공에게는 이름이 없다. 그에게는 부모가 있지만 당장 곁에 선 것은 오빠뿐이다. 오빠는 뛰라고 소리치며 ‘나’의 등을 힘차게 민다. 폭탄이 떨어지고, 사람들은 넘어지고, ‘나’는 행복하던 순간을 떠올리며 그때로 돌아갈 수 있을지 생각한다. 넘을 수 없는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군인’과 ‘군인 아닌 자들’이 나뉘어 선다. 끊어지지도 구멍나지도 않은 철조망을 넘어가려고 하면 총소리가 들린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배를 탄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태운다. ‘나’는 오빠와도, 친구 로라와도, 함께 살던 염소와도 떨어졌다.
그때, 작은 불빛이 깜빡인다. 전쟁의 시작과도 같은 그 불빛은 사실 반딧불이다. 두려워하는 ‘나’를 달래기 위해 어둠 속에서 누군가 묻는다. “네 이름이 뭐니?” ‘나’는 이름을 기억해내지 못하지만, 배 위에 올라탄 아이들이 하나둘 입을 연다. 작가는 배 위에 함께하는 사람들의 그림 위로 이름들을 흩뿌린다.
아일란, 로자, 살마다, 조흐라, 하산, 누어, 마흐무드, 삼손, 누라이샤, 모하메드, 유세프, 하마드, 쿠르디, 파와즈 압둘살람…
그렇게 사람들을 한가득 태운 배는 거친 바다를 건넌다. 도착한 곳은 철조망도 군인들도 없는 바닷가다. 마지막 장에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글자체로 두 문장이 적혀있다.
해마다 셀 수 없이 많은 어린이들이 지구의 반 바퀴를 걷는다.
우리는 그들을 ‘난민’이라고 부른다.
<손을 내밀었다> 중에서.
우리는 대체로 ‘난민’을 ‘난민’이라는 이름만으로 인식하곤 한다. 하지만 그들은 전쟁을 느끼고, 두려워하고, 가족을 찾고, 이름을 잊을 것도 같았다가, 또 기억해내고 서로 나누는, 사람들이다. 어떤 상황에 처한 이들을 정확한 언어로 부르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동시에, 그런 시도들은 너무도 쉽게 타자화의 길을 걷는다. 난민은 이래, 난민은 저래, 위험해, 무서워, 불안해… 새로운 삶을 찾아간, 찾아온 사람들을 우리는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손을 내밀었다’에서 제목과 같은 문구가 등장한 것은 총 두 번이다.
한 번은 탈출을 위해, 철조망 너머의 차가운 군인들을 향해서 내밀어진 손이다.
하지만 ‘손을 내밀었다’고 직접적으로 묘사되지 않는 곳에서도 사람들은 서로에게 손을 내민다. 배를 타기 위해, 아이를 배에 태우기 위해, 어둠 속에서 반딧불이의 빛이 총구의 빛처럼 보이는 자를 위로하기 위해.
이렇게 내밀어지는 손들은 쉽게 조명되지 않는다. 그냥 당연한 일, 우연한 일 정도로 여겨지거나 정의되고 보존되지 않는 사이에 흩어져버린다.
그리고 사람들은 너무 쉽게 혀를 찬다. 안타깝다. 어떠한 도움도 없이 극단적인 상황에 몰렸구나. 하지만, 그들이 고난을 겪고 거꾸러지는 삶을 목격했다고 할지언정 손을 내미는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작고 미약하다고 할 모든 행동들에 이름을 붙이고 무게를 달아주어야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진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닥쳐온 재앙을 그저 무력하게 바라볼수만도 없이, 손가락 하나라도 움직여야만 하는 순간들을 조금이나마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장에서는 드디어 누군가를 돕기 위해 내미는 손이 인식된다. 이름 없는 ‘누군가’는 배를 타고 도망친 ‘나’에게 손을 내민다. ‘나’를 따뜻하게 안아들고 걷는다. 페이지를 넘기면 뒷표지 안쪽에도 무언가 프린팅 되어있다. 바로 ‘나’와 군인들 사이에 있던 철조망이다. 철조망에 구멍이 뚫려 있다.
넘을 수 없던 철조망에 구멍이 생겼다. 사람이 통과할 수 있는 구멍은 아니다. 그러기 좋은 위치에 있지도 않고. 아마 누군가 순찰을 돌았다면 금세 발견하고 메꿔버릴 수 있을 법한 구멍이다.
하지만 뚫려있다. 손을 내밀 수는 있을 정도다. 그러니 구멍만 나 있다면, 그 사이로 손을 집어넣어 구멍을 더욱 크게 만들 수 있다. 그렇게 빈틈이 넓혀지면 우리에게는 더 큰 여유가 찾아올 것이다.
난민을 난민이라 부르면서도 그들의 이름을 기억할 수 있는 여유. 그들을 이해하려 애쓰되 어느 한 부분만으로 납작하게 눌러보지 않을 수 있는 여유가. 문의 062-954-9420
호수 (동네책방 ‘숨’ 책방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