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청일의 독서일기] (37)‘원미동 시인’ 양귀자

필자는 그 동안 책을 읽고 조금씩 메모해 온 내용들을 독자들과 ‘공유하고 토론’하고자 글을 쓰게 되었다. 내용은 책 소개와 정리, 간단한 소감, 또는 깊이 있는 분석과 평가 등 책에 따라 달라진다. 읽기 편한 대화체 형식으로 서술하고 1차 목표는 100권이다. 100권을 쓸 수 있게 만드는 힘은 독자들과의 건강한 토론이라 믿고 있다. <편집자주>

원미동 사람들 표지(양귀자, 쓰다)
원미동 사람들 표지(양귀자, 쓰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여배우와의 성추문 입막음 의혹 등 34건의 혐의로 재판에 부쳐져 기소되었습니다(매일경제, 2023. 4. 8). 지난해 11월 대선 출마했으나 주목받지 못하던 트럼프는 기소된 이후 지지율이 상승하여 공화당 내 다른 후보들에 비해 압도적 우위를 보이고 있습니다(프레시안, 2023. 4. 2).

 기소 후 후원금이 더 늘었을 뿐 아니라(세계일보, 2023. 4. 8), 자신을 기소한 맨해튼지검 판사와 가족들을 좌표 찍어, 실제 담당 판, 검사와 가족들이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고 합니다(연합뉴스, 2023. 4. 7).

 “정치는 이른바 민주주의의 위기로 인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이 바로 반지성주의입니다.”(프레시안, 2022.10.17). 대통령의 취임사 이후 1년여가 흐른 오늘의 대한민국의 정치 현실 또한 어지럽습니다. 상대 당에 대한 존중과 대화, 토론, 협치는 보이지 않고 원색적인 비난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세계적으로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불확실성을 가중시키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와 높은 인플레이션 현상, 이와 맞물린 대만에 대한 중국의 위협과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발사 상황이 동북아의 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습니다. 안보외교를 내세운 정부의 한미일 삼국의 군사동맹훈련과 대일외교, 한미정상회담을 둘러싸고도 정치적 갈등뿐 아니라 사회적 갈등까지 증폭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정치와 경제, 사회에 대한 분노가 정의라는 이름으로 상대에 대한 혐오와 비난으로 향할 때, “분노는 정의감을 내세운 마녀사냥”이 됩니다(정의감 중독 사회, 안도 순스케). 이 땅의 민주주의는 그만큼 퇴보할 수밖에 없겠지요. 그래서 ‘법치’에 갇히지 않으면서 어떻게 ‘민주주의의 경계’를 확장할 것인지 고민하게 됩니다.

 오늘은 우리가 직면한 오늘의 현실을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 엄혹하면서도 서슬퍼랬던 80년대의 군부독재 시대를 살았던 ‘원미동 시인’, 몽달씨에 주목하여 의미를 찾아보려 합니다.

 ‘원미동 시인’은 <원미동 사람들>의 연작 중 하나로 1987년 문학과지성사에서 출판되었습니다. 현재 문학과지성사판은 절판되었고, 2019년 쓰다 출판사에서 개정판이 나왔습니다. 7차 교육과정 중학교 3학년 국어교과서에 ‘일용할 양식’이 ‘원미동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실리기도 했습니다. 이 외에도 ‘원미동’이라는 이름 그대로의 ‘멀고 아름다운 동네’,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 실려 있는 ‘비 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가야 한다’ 등도 있습니다(원미동 사람들, 나무위키).

 필자는 ‘원미동 시인’이라 불리는 몽달씨에 주목하여 그의 ‘시적 대화’, 몽달씨에 대한 불량배들의 무지막지한 폭력과 김반장과 마을 사람들의 방관과 외면, 몽달씨가 읊조리는 싯구절의 의미를 풀어보고자 합니다.

형제수퍼 김반장(천제학습백과 삽화, 네이버 지식백과)
형제수퍼 김반장(천제학습백과 삽화, 네이버 지식백과)

 

 작품에 대한 기본 소개

 ‘원미동 시인’은 서술자인 일곱 살 경옥이가 원미동 시인, 몽달씨가 겪은 열 사나흘 전 밤 늦은 시간에 발생한 ‘그 사건’을 중심으로 풀어낸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경옥은 딸만 넷 있는 집안에 용한 점쟁이들이 이번에는 반드시 아들이라 예언하여 부모의 기대를 온 몸에 받고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낳아 보니 여자 아이인데다 어찌나 부실한지 이레저레 출생신고를 미루다 보니 일, 이 년이 늦어졌습니다. 그래서 실제 경옥이의 나이는 여덟살이거나 아홉 살입니다.

 경옥은 “단짝인 소라를 비롯하여 몇 명의 친구들이 작년과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해 버려서 놀 친구들이 없습니다. “오후가 되어도” “끼리끼리만 통하는 아이들이 좀처럼 놀이에 끼워주지 않기 때문에” 홀로 지내게 됩니다. 값싼 유치원과 피아노 교습소가 있어도 엄마는 청소부 아빠가 주워온 그램책과 고장난 장난감으로만 지내라는 모양인데, 경옥은 그런 것들이 별로 재미가 없습니다. 스스로 “아무래도 나는 어른이 다 된 모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 경옥이에게는 스물입골살의 김반장과 몽달씨 두 명의 친구가 있습니다. 김반장은 “커다란 손바닥으로 엉덩이를 철썩 치면서 “어이, 경옥이 처제!” 하고 부르기도 하는데, 경옥이 “오토바이 뒷좌석에 앉아 함께 배달을 나가기라도” 하면 동네 친구들의 부러움을 온 몸에 받습니다. 하지만 요새 김반장은 선옥이 언니가 서울 이모네 집으로 가버린 후로는 쭈쭈바를 잘 주지도 않고 우스개소리를 잘 해주지도 않습니다.

 몽달씨. “퀭한 두 눈에 부스스한 머리칼, 사시사철 껴입고 다니는 물들인 군용점퍼와 희끄무레하게 닳아빠진 낡은 청바지”를 입고 다니는 모습이 몽달귀신같다고 하여, 서울미용실 경자 언니가 맨 처음 ‘몽달씨’라고 부른 이후 마을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부르게 되었습니다. 몽달씨가 그렇게 불리게 된 데는 그가 늘 시를 외우고 다니는 데다 일상적인 대화를 하지 못하기(혹은 안 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가령, 갑자기 “경옥아” 부르고는, “너는 나더러 개새끼, 개새끼라고만 그러는구나 ….”라는 시를 외웁니다. 경옥이가 기가 차서 말문이 막혔겠지요. “약간 돈 사내와 오랜 시간을 어울려다닐 만큼” 간이 크지 않았고, “오로지 시에 대하여 말하고 시를 생각하고 시를 함께 외우자는 요구밖에” 모르는 몽달씨였지만, 경옥이는 기꺼이 몽달씨의 친구가 되어 줍니다. “시인하고 친구가 된다는 것은 구멍가게 주인과 친구되는 것보담은 훨씬 근사했으니까.”

 경옥이와 몽달씨가 하는 일은 형제수퍼 앞 비치파라솔 의자에 앉아 “각기 편한 자세로 앉아 신문을 읽거나 졸거나 하는 무료한 시간을 보내다가 막걸리 손님이라도 들이닥치면” 의자를 비워주고는 우두커니 구경을 하는 겁니다.

 몽달씨는 김반장의 일을 하나씩 도와주더니 급기야 “가게 앞 청소나 빈 박스를 지하실 창고에 쟁이는 일 혹은 막걸리 손님 심부름 따위” 등을 하게 됩니다. 경옥이는 어느 날 형제수퍼의 “심부름꾼 꼬마처럼 다소곳이 잔심부름을 도맡아” 하고 있는 몽달씨를 관찰하게 되면서 이상한 감정을 느끼게 되기도 하지요.

 몽달씨의 “시적 대화”

 몽달씨의 시 사랑은 아주 유별납니다. 어느 정도냐 하면, “하루 종일이라도 유명한 시인들의 시를 외울 수 있었”고, “외운 싯구절만 가지고 몇 시간이라도 대화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름하야, 몽달씨의 “시적 대화.”

 참고로, 몽달씨가 외우는 시는 실존하는 시인들의 시의 일부분인데, 양귀자 작가가 이를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습니다. 몽달씨가 외우며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싯구절을 예시로 몇 개 들어봅니다. 괄호 안은 필자가 자료를 찾아 시 제목과 원저자를 덧붙였습니다.

 “너는 나더러 개새끼 개새끼라고만 그러는구나”(원주여자: 아름다움에 대하여(김정환)).

 “열 일곱개의 또는 스물 한 개의 단추들이 그녀를 가두었다”(단추: 또는 검은 수녀(이하석)).

 “마른가지로 자기 몸과 마음에 바람을 들이는 저 은사시나무는, / 박해받는 순교자 같다. //

 그러나 다시 보면 저 은사시나무는, / 박해받고 싶어하는 순교자 같다.”(서풍(西風) 앞에서(황지우)).

 갑자기, 아무 맥락도 없이, 사람들에게 냅다 시를 외워 대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 거기다 몽달씨는 스물일곱이나 되는 어른인데도 일곱 살 경옥이와 함께 동네 수퍼 앞에 앉아 쭈쭈바를 빨고 있으니 “오가는 동네 어른들이 혀를 끌끌” 차면서 한마디씩 했겠지요. 작품 안에서 유일하게 몽달씨의 과거를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대사를 인용해보겠습니다.

 “대학 다닐 때까진 저러지 않았대요. 저도 잘은 모르지만 학교에서 짤렸대나봐요. 뭐 뻔하죠. 요새 대학생들 짓거린. 그리곤 곧장 군대에 갔는데 제대하고부턴 사람이 저리 됐어요. 언제나 중얼중얼 시를 외운다는데 확 미쳐버린 것도 아니고, 아주 죽겠어요.”

 작가가 실제 원미동에 살면서 작품을 집필하여 발표한 해가 1987년입니다. 그러니 원미동 시인 몽달씨는 1980년 초반 대학을 다니다 짤렸고, 이후 군대에 끌려갔으며, 제대하여 원미동에 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몽달씨가 대학을 다녔던 1980년대 초반은 1980년 5.18 광주민중항쟁으로 시작됩니다. 비상계엄과 공수부대를 투입하여 광주시민을 학살한 전두환이 1981년 대통령으로 취임하였습니다. 그리고 대학생들의 반독재 민주화 운동을 뿌리 뽑기 위해 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에서 ‘녹화사업’이라는 비밀 공작 행위를 실행합니다. 학생운동을 통제하기 위해 학생들을 강제휴학 시키고, 입대영장 발부하여 신검도 안 하고 무조건 현역병으로 입대시켰습니다. 고문과 회유를 통해 프락치활동을 강요하기도 하였습니다(녹화사업(비밀 공작), 나무위키).

 진실화해위원회는 1980년대 강제징집과 녹화사업으로 발생한 피해자가 2921명으로 집계되었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MBC 뉴스데스크, 2022.11.23.).

 이상을 참고할 때, 몽달씨 또한 80년대 보안사의 녹화사업의 희생자로 볼 수 있습니다. 고문과 폭력으로 정상적인 사고와 생활을 할 수 없게 되어 버린 몽달씨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밤새도록 시를 외우고, 그 외운 시들로 사람들에게 대화를 시도하는 거지요. 우리는 마지막 장면에서 몽달씨의 이러한 행동의 의미를 좀더 분명하게 유추할 수 있게 됩니다.

만화 원미동 사람들(북스토리)
만화 원미동 사람들(북스토리)

 불량배들의 무자비한 폭력과 김반장의 외면

 경옥이는 지신에게 잘 대해주는 김반장이 자신의 셋째 형부가 되기를 은근히 바랐습니다. 그런데 보름 전쯤 일어난 사건으로 그 모든 걸 포기하게 됩니다. “그 사건의 처음과 끝을 빠짐없이 지켜본 유일한 목격자”였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어쩐 일인지 경옥이는 “웬일인지 그 일에 관해서는 입도 뻥긋하기 싫었”습니다.

 “그 사건”이란 일곱 살 경옥이가 감내하기에는 너무도 충격적인 사건이었는데, 더 놀라운 사실은 그 사건을 둘러싼 김반장과 사람들의 반응이었습니다.

 보름 전 밤 아홉시경 경옥은 가게 방 안에서 고물TV를 보고 있는 형제수퍼 김반장의 등 뒤로 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공단 쪽 가는 길에서 “비명 소리도 같고 욕지기를 참는 안간힘 같기도 한 소리”를 듣습니다. 수퍼 앞 약간 어두운 곳에 있던 경옥이 무슨 일인가 싶을 때 어떤 사람이 필사적으로 가게 쪽으로 달려 듭니다. 뒤쫓아 온 건장한 두 사람이 가게 앞까지 쫓아와서 협박을 합니다. 긴장이 가장 고조되는 장면을 중요 부분만 인용해 보겠습니다.

 “김형, 김형 … 도와주세요.” ….

 “이 새끼, 아는 사이요? 그러면 당신도 한번 맛 좀 볼 텐가?” ….

 “무, 무슨 소리요? 난 몰라요! 상관없는 일에 말려들고 싶지 않으니까 나가서들 하시오.” ….

 “나가요! 어서들 나가요! 싸우든가 말든가 장사 망치지 말고 어서 나가요!”

 빨간 셔츠가 몽달씨의 목덜미를 확 나꾸어챘다. 개처럼 질질 끌려나오는 몽달씨를 보더니 밖에 있던 흰 런닝셔츠가 찌익, 이빨 새로 침을 뱉어냈다. 두 사람 다 술기운이 벌겋게 오른, 번들거리는 눈자위가 징그러웠다. …. 녀석은 몽달씨의 머리칼을 한 움큼 휘어감고서 마치 짐짝을 부리듯이 몽달씨를 다루고 있었다. 끌려가지 않으려고 버둥거리다가는 사내의 구둣발에 사정없이 정강이며 옆구리가 뭉개어졌다. …. 이내 녀석에게 머리칼을 붙잡히면서 부동산 옆의 시멘트 기둥에 된통 머리를 받쳤다. 쿵, 몽달씨의 머리통이 깨져나가는 듯한 소리에 나는 눈을 감아버렸다.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 행복사진관의 밝은 불빛 앞에서 몽달씨가 울부짖으며 사내에게 잡힌 머리통을 흔들어대다가 녀석의 구둣발에 면상을 짓밟히기 시작하였다. 마침내 나는 내달리기 시작하였다.

 필자가 볼 때, 이 장면은 녹화사업의 희생자들이 어떤 폭력을 당했는지 아주 조금이라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장면입니다. 어떻게 보면, 강제징집되어 군대 내에서 폭력을 당했고, 그 후유증으로 제대 후 반미치광이로 살 수밖에 없는 몽달씨에게 또 다시 무지막지한 폭력이 가해지는 건, 생각이 정지될 정도로 가슴이 무너져내리기도 합니다.

 문학을 현실의 은유로 읽을 때, 서슬퍼런 군사독재의 폭력이 춤을 추던 80년대 중반 작가의 이런 소설적 장치는 액면 그대로의 의미도 충분히 있을 뿐만 아니라, 녹화사업 희생자들이 경험했을 폭력의 정도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게 합니다. 나아가 희생자들의 폭력에 대한 후유증과 프락치와 밀정 활동으로의 회유, 직장과 일상생활에 대한 감시와 보고 등으로 엉망진창이 되었던 삶 또한 어느 정도 가늠할 수도 있게 합니다.

 숨어서 목격하던 일곱 살 경옥이에게 이런 폭력 장면은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무섭고 또 무서웠다. 저렇게 질질 끌려가는 몽달씨를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도무지 가슴이 떨려 숨도 크게 쉬지 못할 지경이었는데도 김반장은 어지러진 가게를 치우면서 밖은 내다보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경옥이는 용기를 내어 불량배들 곁을 달려 원미지물포로 뛰어들어 “우람한 체구”의 원미지물포 주씨 아저씨에게 “깡패가 몽달씨를 죽여요!” 하며 외칩니다. 주씨 아저씨가 달려나오고 불량배들이 도망친 후, 마을 사람들과 김반장이 한마디씩 합니다.

 “아까 보니까 저 윗길에서 이 총각이 그냥 지나가는데 불러놓고 시비드라구요. 어휴, 저 총각 너무 많이 맞았어. 죽지 않은 게 다행이야.” ….

 “하여간 저놈들을 잡아넘겼어야 하는 건데 … 좀 어때? 대체 이게 무슨 꼴인가. 어서 집으로 가세. 내가 데려다줄게.”

 어린 경옥이가 보았을 때 외면하고 방관했던 김반장과 마을 사람들이 사건이 해결되자, 그제서야 거짓말처럼,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다가와서 위로하는 모습이, 참, 이상했겠지요. 그래서 김반장의 부축을 받으며 집으로 가는 몽달씨를 보며 이렇게 표현했겠지요. “세상에 벨도 없지.”

 “박해받고 싶어하는” 몽달씨의 발걸음

 사건 발생 이후 꼭 열흘이 지난 어느 날 정오쯤 학교가 끝나 집으로 가던 경옥은 형제수퍼에서 “음료수 박스들을 차곡차곡 쟁여놓는 일에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몽달씨”를 발견합니다. 그 날의 일을 다 목격한 경옥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풍부한 상상력으로 몽달씨는 부분적인 기억상실증 환자일 거라 생각합니다. 그걸 확인하려고 비치파라솔 의자에 앉아 쉬고 있는 몽달씨에게로 다가가서 이야기합니다.

 “그날밤에 난 여기에 앉아서 다 봤어요.” / “무얼?” / “김반장이 아저씨를 쫓아내는 것 ….”

 순간 몽달씨가 정색을 하고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예전의 그 풀려 있던 눈동자가 아니었다. 까맣고 반짝이는 눈이었다. 그러나 잠깐이었다. …. “슬픈 시가 있어. 들어볼래?” ….

 … 마른가지로 자기 몸과 마음에 바람을 들이는 저 은사시나무는, 박해받는 순교자 같다. 그러나 다시 보면 저 은사시나무는, 박해받고 싶어하는 순교자 같다.

 경옥이에게 “까맣고 반짝이는 눈”을 “잠깐” 비춰주었던 몽달씨는 미치광이는 아니겠지요. 그러나 그는 미치광이 행세를 하면서 살 수밖에 없습니다. 폭력이 주는 공포와 트라우마가 너무 무섭기 때문입니다. 현실이 너무도 폭력적일 때 우리는 시와 문학이라는 은유에 숨게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은유를 ‘현실 도피’가 아니라, 후유증을 겪고 있음에도, 결코, 단 한 순간이라도 ‘현실’에서 도망가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현이라 읽습니다.

 박해받는 순교자는 ‘진리’와 ‘진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알고 있는 이 진리와 진실을,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적극적인 의지를 갖게 됩니다. 80년대를 살았던 몽달씨에게 80년 5월 광주의 진실은, 기꺼이 싸워서 지키고, 널리 알려야 할 ‘진리’였겠지요. 우리는 군부독재의 폭력의 후유증을 겪고 있음에도 몽달씨가 결코 동료들을 밀고하거나 지하 조직을 거덜내거나 하는, ‘양심의 최저선’을 버리지 않았음을 두 가지 행위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불량배들에게 죽을 만큼 폭력을 당했을 때 자신을 외면한 김반장이었지만, 다시 그에게로 다가간다는 점입니다. 다른 하나는, 자신이 암송하는 시가 “박해받는 순교자 같다”라는 수동적 자세에서, “박해받고 싶어하는 순교자 같다”라는 “질적 전환”을 도모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점입니다.

 무지막지한 폭력의 희생자가, 다시 죽을 만큼의 폭력을 경험했는데도,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또다시 사람들에게 다가가기를 멈추지 않는 몽달씨에게서, 필자는 ‘선지자’ 또는 ‘구도자’의 모습을 봅니다. 그래서 몽달씨를 떠올릴 때면, 다음의 한시가 헌사로 적절할 거 같습니다.

 천설야중거(穿雪野中去) 눈을 헤치고 들길을 걸어갈 때

 불수호란행(不須胡亂行) 모름지기 그 발걸음을 아무렇게나 하지 말라

 금조아행적(今朝我行跡) 오늘 아침 내가 걸어간 발자취가

 수작후인정(遂作後人程) 마침내 뒷사람의 걷는 길이 되기 때문이다.

 - 야설(野雪), 이양연(국제신문, 2022.12.13.).

 백청일(논술학원장)

 ■ 참고문헌

 원미동 사람들, 양귀자, 문학과지성사, 1997.

 정의감 중독 사회, 안도 순스케, 또다른우주, 2023.

 “갑자기 퇴학시키더니 군대를… 그때도 지금도 이유를 몰라요”, MBC 뉴스데스크, 2022.11.23.(검색일: 2023. 4.10).

 녹화사업(비밀 공작), 나무위키(검색일: 2023. 4.10.).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228. 뒷사람을 생각해 반듯하게 걸어야 한다는 이양연의 시, 국제신문, 2022.12.13.(검색일: 2023. 4. 9.).

 윤대통령이 촉발한 ‘반지성주의’ 논란, 어떻게 볼 수 있을까, 프레시안, 2022. 10.17

 초유의 미 전직대통령 기소… 트럼프가 미국경제에 미치는 영향, 매일경제, 2023. 4. 8

 “기소 후 후원금 130억 모여” … 트럼ㅍㅡ향후 행보는, 세계일보, 2023. 4. 8

 트럼프가 좌표 찍자 위협 현실화? … “담당 판, 검사 위협 시달려”, 연합뉴스, 2023.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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