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유진 무대읽기] 연극 ‘안부’
80년 봄, 슬픔과 아픔, 여성 서사적 한 연출
4월 5일부터 9일까지 ‘씨어터 연바람’에서 극단 ‘푸른연극마을’이 새 작품을 올렸다. 제목은 ‘안부’. 5·18의 상흔을 안고 살아가는 세 여인이 40여 년 만에 만나 서로의 안부를 나누는 극이었다.
5·18극에서 빠질 수 없는 장면이 학살이다. 5·18을 소재로 한 연극에서는 진압군의 잔인한 학살 장면이 거의 등장하는 편이다. 군홧발 소리, 총소리, 시민들의 비명, 잔혹한 총 칼질과, 붉은 피 그리고 쓰러지는 군중 씬은 단골 메뉴라고 할 수 있다.
‘안부’는 달랐다. 진압군에 학살당하는 시민들의 장면이 나오긴 하지만 기존의 극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처리했다. 그 점이 신선했다. ‘안부’에서는 신발을 오브제로 사용했다. 여기에 조명이 더해졌다. 학살의 장면에서 신발을 이용하는 것은 오래전부터 사용한 방법이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이 짝이 맞지 않는 신발을 여기저기 흩트려 놓을 때 진압군이 총칼로 무고한 광주시민을 죽이는 장면이 연상되면서 마음이 한없이 아팠다.
이 신발들은 나중에 제 짝을 찾아 나란히 놓이기도 하고, 여전히 덩그러니 한 짝만 남아있기도 했다. 배우들은 한 켤레 옆에도 한 짝 옆에도 봄꽃이 만개한 작은 화분을 배치했다. 작은 극장 무대에 화사한 꽃 화분이 가득 들어차 시각적으로도 예뻤고, 제짝을 찾은 신발은 신원이 밝혀지고 ‘폭도’라는 누명 대신에 ‘시민군’이라는 이름을 찾아 명예가 회복된 느낌이 들어 평안했다. 아직 제 짝을 찾지 못한 신발은 무명용사를 떠오르게 했고 그래서 아릿한 슬픔이 느껴졌다.
학살 장면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고도 80년 봄의 슬픔과 아픔을 느끼게 한 연출 말고도 ‘안부’는 오래간만에 여성 서사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작품이었다. 기존의 5·18극들이 주로 남성 서사에 집중되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번 ‘푸른연극마을’의 작업은 대단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그 80년 봄에 남자들 못지않게 활약한 여성들에 관한 서사는 왜 극으로 형상화되지 못하고 있었을까? 왜 여인들은 그 긴 세월 동안 서로에게 간단한 안부조차 전하지 못했을까?
‘안부’는 이 부분에 관해서는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5·18관련자 중에서도 여성이 자신의 과거를 떳떳하게 드러내지 못하고 숨어 살다시피 한 부분에 대해서 딱히 설명이 없이 지나간다. 당시의 상황을 정확하게 공감하는 이가 아니라면 추측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부분에서 젊은 세대는 이 연극에 완전히 몰입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5·18 관련자라는 것 때문에 평생을 고향에 오지 못하고, 한때 친구이자 동지였던 이들과 안부도 전하지 못하면서 살아간 그녀들을 이어주는 역할을 봄이라는 이름의 젊은 세대가 해내는 것도 이 연극 작업의 좋은 점이었다. 5·18을 문헌으로만 접하는 세대가 5·18세대를 이해하고 공감하며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하는 것은 중요하면서도 의미 있는 일이다. 5·18 정신이 후대로 계승된다는 것을 무대에서 보여준 셈이다.
여러 장점을 가진 작업이었지만, ‘안부’는 한계점도 있었다. 봄이라는 후세대가 세 여성과 연결되는 지점이 명확하지 않았다. 40여 년을 떨어져 있다가 다시 만난 이들의 재회 장면도 어설픈 구석이 있었다. 특히 주인공 격인 세 여성을 중년의 배우가 20대 모습까지 소화한 것은 상당히 무리가 있어 보였다.
하지만 이 모든 한계점에도 불구하고 이번 ‘푸른연극마을’의 ‘안부’는 ‘5·18 연극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고 볼 수 있다. 서울 공연까지 다녀오느라 힘들었겠지만,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더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희곡을 수정하여 내년 봄에는 더 멋진 작품으로 돌아오길 기대한다. 그래서 그 모진 세월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은 이들에게 ‘참 잘 살아냈다’는 안부를 다시 전해주길.
임유진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