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순의 호남의 명산] 신안 선도 범덕산(145.2m)
유네스코 실사단도 반한 바다와 갯벌 풍경
선도(蟬島)는 증도(曾島) 근처에 있는 섬이다. 신안군에 있는 1000여 개의 섬 중에서도 섬의 모양이 매미를 닮았다 해서 매미 ‘선(蟬)’자를 쓰는 섬이다. 뚜렷한 특산물이나 볼거리, 찾아갈 일도, 찾는 이도 별로 없다. 하지만 2019년 제1회 수선화 축제가 열린 3월 말부터 4월 초까지 10일 동안 주민 255명이 거주하는 섬에 1만 2000명이 몰려들었다. 주민들 말로는 “섬이 1cm나 가라앉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찾기는 처음”이라고 한다.
선도는 3~4월이면 수선화 섬이 된다. 세계 각국의 수선화 97종이 꽃 피어 바닷바람을 맞으며 살랑살랑 거리는 모습은 “실로 아름다워 천국처럼 느껴진다”고 마을 주민 박기남(66) 씨는 말한다.
선도가 수선화 섬으로 바뀐 것은 현복순(93) 할머니로부터 시작된다. 30여년 전 남편과 함께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정착한 현 할머니는 집 마당과 주변 밭에 수선화를 키우기 시작했다. 이것이 꽃동산으로 변모했고 주민들도 하나 둘 심기 시작했다. 이제는 지자체의 지원으로 섬 전체가 꽃밭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수선화는 ‘설중화(雪中花)’라는 별명처럼 혹독한 겨울을 이겨 내고 피어난다. 외상치료에 쓰이는 약재로도 이용되며, 수분 저장력이 좋아 화장품 원료로도 사용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르키소스라는 아름다운 청년이 샘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하여 물속에 빠져 죽은 그 자리에 핀 꽃이라는 전설이 있다. 꽃말은 '자존'이다.
꽃 구경 겸한 트레킹 코스
선도 최고봉은 범덕산(虎德山)(145.2m)이다. 멀리서 보면 마치 호랑이가 웅크리고 있는 모습과 같다고 한다. 이웃한 대덕산(大德山)(143.4m)과 연계해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지만 어렵지 않은 가벼운 등산코스다. 범덕산은 옹골찬 암릉으로 이뤄져 있다. 능선만 올라서면 운동장 사열대처럼 수많은 섬과 갯벌을 내려다보이는 조망도 좋다. 등산로와 이정표도 잘 정비돼 있다. 일반적인 산행과 비교한다면 거리가 짧지만 꽃구경을 겸한 트레킹 코스로 생각하면 적당하다. 수선화는 품종에 따라 개화가 다르기 때문에 4월 말까지 꽃을 볼 수 있다.
선도선착장에 내리면 출향민들이 건립한 ‘선도’라고 새겨진 커다란 화강암표지석이 보인다. 범덕산 등산로는 화강암 왼쪽으로 간다. ‘선도 창고’ 건물 앞을 지나서 포장도로를 따라 10분쯤이면 광산김씨 표지석에서부터 실질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두 갈래 길에서 산행개념도가 있는 우측으로 올라간다. 키가 10m가 넘는 사스피레나무 군락지가 걸음을 멈추게 한다. 바람이 잘 통하는 구릉지형이며 곳곳에 춘란도 많이 보인다.
공동묘지를 지나고 ‘대덕산’ 이정표에서 부터 오르막이지만 전혀 힘들지 않다. 15분 정도 가면 소나무 그늘아래 벤치가 있는 곳이 앞재봉이다. 곧이어 바위전망대가 나타난다. 넓은 바위지대는 높이에 비해 시야가 무척 좋다. 가깝게는 사옥도, 증도, 병풍도, 매화도가 보이고 멀리 천사대교와 자은도, 암태도, 유달산까지 보인다.
왼쪽으로 바다 풍경을 계속 보면서 10분 정도면 대덕산 갈림길 이정표다. 우측으로 내려가면 범덕산이고 대덕산은 직진해 0.12km를 더 가야 한다. 대덕산 정상 오르기 직전 경사면에 안전로프가 설치되어있다. 정상은 헬기장처럼 넓다. 조만간 목재데크를 설치해서 깨끗한 전망대로 바꿀 예정이라고 한다. 어른 높이만 한 화강암 정상석 사방으로 동서남북 막힘이 없다. 이름 모를 섬들을 비롯해 북으로는 영광 송이도, 동북으로 무등산까지 어느 곳을 보아도 감탄이 터져 나오는 경치다.
능선에만 올라서면 은빛 바다 조망
대덕산 정상에서 오던 길로 되돌아가서 ‘범덕산’ 이정표 방향으로 내려간다. 내리막길을 6분 정도 가면 소나무 그늘 아래 휴식하기 좋은 벤치 2개가 있다. 바다 건너로 무안국제 공항이 정면으로 보인다. 5분 정도 더 내려가면 거북 등껍질처럼 둥그런 바위지대 위에 노란 팔각정이 있다.
바닷가 쪽에 있는 수선화 축제장이 잘 보이는 조망대다. 대덕산과 범덕산도 한눈에 볼 수 있다. 산행을 안내해 준 주민의 말에 따르면 왼쪽으로 보이는 대덕산은 닭벼슬처럼 보인다고 한다. 범덕산은 바다를 보는 호랑이 형상이라 그 기운 때문에 건너편에 있는 ‘지도’에서는 큰 인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말한다.
소나무 숲을 잠시 가자 표면이 타일 조각처럼 결이 쪼개지는 암벽이 나타난다. 고정로프가 설치되어 있어 오르기 어렵지는 않다. 이곳부터 범덕산 정상까지는 거대한 단일 암릉이다.
선도 전체를 비롯한 범덕산은 중생대 백악기 화산활동으로 화산재가 뭉쳐서 생긴 암석(응회암)으로 구성돼 있다. 오래전에 커다란 수중화산폭발이 있었던 흔적들이 발견되어 비상한 주목을 받고 있기도 하다. 옥녀봉은 우뚝하게 솟아있는 암봉이다. ’부처손 훼손 금지‘ 팻말이 있다. 바위 표면에는 엄청난 규모의 바위손과 하얀색, 분홍색으로 핀 산자고가 군락을 이루었다.
안부에 있는 철계단을 지나자 범덕산과 북촌마을 갈림길 이정표다. 정상까지 0.2km 가리킨다. 바위에 오목하게 홈이 패인 곳은 맑은 물이 가득 차 있다.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 샘’이라 적혀있다. 정상은 커다란 소나무들이 듬성듬성 자라고 있다. 조망을 가리지 않으면서 그늘을 만들어 준다. 정상석 옆에 벤치가 놓여 있어 바다를 호젓하게 감상하기 좋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실사단이 이곳을 찾았을 때, 광활한 갯벌과 섬들의 경치를 보고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곳’이라고 극찬한 풍광이다.
‘수선화의 집’은 현 할머니가 노환으로 인하여 현재는 빈집이다. 바닷가의 멋진 수선화와 청보리밭을 보려면 ‘선도교회’와 선도카페 이정표 방향으로 가야 한다. 5분 걸으면 예전에 축사였던 곳을 개조한 마을카페다. 이제 선도는 지중해 연안의 해변에 온 듯한 이국적인 풍경이다. 포크 그룹 브라더스포(The Brothers Four)의 ‘일곱송이 수선화(Seven Daffodils)’라는 음악이 울리면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걷기 길잡이
선도선착장-광산김씨묘-앞재봉-조망바위-갈림길-대덕산-갈림길-쉼터-팔각정-암릉지대
옥녀봉-갈림길-마르지않는샘-범덕산-갈림길-임도-포장도로-선도교회-수선화의집-선도마을카페-수선화꽃단지-선도선착장(7.6km 3시간)
▲교통
압해읍 가룡선착장에서 차도선으로 50여분 소요된다. 들어가는 편 07:50, 10:40, 14:00, 16:00 나오는 편 09:30, 12:21, 15:40, 17:41이며 도선비는 성인 2,000원이며 신분증 필수 지참해야 한다. 가룡매표소(061-262-4211)
글·사진 김희순 山 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