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이 성장·발달하기 바라는 관심

픽사베이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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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생 때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의 <사랑의 기술>이란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이 책에서 프롬은 관심, 보호, 책임, 존경, 그리고 이해 등과 같은 키워드로 사랑의 요소를 설명한다. 아직도 인상 깊게 남아 있는 것은 존경이란 개념으로 사랑을 설명하는 대목이다. 존경은 두려움이나 외경이 아니다. 존경은 이 말의 어원(respicere = 바라보다)에 따르면 어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의 독특한 개성을 아는 능력이다. 존경은 다른 사람이 그 나름대로 성장하고 발달하기를 바라는 관심이다.

 말하자면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을 존경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그 사람의 자아가 성장하고 발전하기를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주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의 존경은 우리가 쓰는 일상적인 말의 용례에서나, 혹은 “남의 인격이나 사상, 그리고 행위 따위를 공손히 받들어 모심”이라는 사전적 의미에서 보더라도 매우 색다른 의미 규정이다.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아니 사람들의 일상적인 관계에서 에리히 프롬의 의미에 따라 서로 간에 존경하는 사이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본다.

 존경은 실천적 행위 태도다

 그런데 우리는 일상에서 존경의 그런 개념적인 의미와 가치를 놓치고 있는 것 같다. 우리가 흔히 존경한다고 말할 때, 그것은 어떤 높은 존재나 권위를 가진 사람이나 대상에 대해 공경하는 마음이나 태도를 가리킨다. 우리는 존경의 대상이 갖는 지위나 업적, 인격이나 성품 등의 측면만을 공경하는 경향이 있다. 존경은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행위 태도이며, 인간 삶의 의미와 가치를 표시하는 중요한 개념에 속한다. 존경은 단순한 예의나 공손함과 같은 그런 것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삶과 경험을 깊이 이해하고, 그들의 가치와 능력을 높게 평가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존경은 인간 상호관계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행위의 결과로써 나타난다. 말하자면 그것은 단순한 감정들과는 종적으로 구별되는 실천적 행위 태도라고 말할 수 있다.

 존경은 이성에 스스로 일으켜진 감정이다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존경에 대해 매우 독창적인 주장을 펼쳤다. 칸트의 주장은 보통 우리가 생각하고 이해하는 상식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다. 칸트에 따르면 우리는 존경을 일종의 감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외부의 영향에 의해서 받아들여진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이성에 의해서 스스로 일으켜진 감정이다. 그것을 굳이 감정이라고 말한다면, 감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성에 의한 감정, 모든 감정들과는 구분되는 특수한 종류의 감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칸트는 존경을 특히 도덕 감정과 구분하려고 노력했는데, 그 이유는 도덕적인 행위는 도덕 감정에서가 아니라 이성에 의해서 비롯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이성적인 판단과 의식을 근거로 도덕적으로 옳은 행위를 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존경은 법칙에 대한 종속을 의미한다

 이성적인 존재인 인간은 자연 사물과는 다른 존재다. 자연법칙의 전적인 지배하에 있는 동물과 달리, 인간은 스스로 법칙을 생각하여 행위 하는 능력을 갖는다. 이를테면 인간은 사회 질서의 원리인 법과 도덕과 같은 법칙에 따라 자신의 행위를 조절하고 통제한다. 그런데 우리가 직접적으로 법칙으로 인식하는 것을 우리는 존경을 가지고 인식하게 된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존경의 의미가 제대로 드러난다. 존경은 다름 아닌 우리의 의지가 법칙에 종속한다는, 곧 법칙을 따른다는 의식을 의미한다.

 다소간 어렵게 들릴지 모르지만, 칸트는 “법칙에 의한 의지의 직접적인 규정, 그리고 규정에 의한 의식”을 존경이라고 말했다. 법칙이 법칙이기 때문에,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법칙을 따르는 것, 법칙에 종속하는 것, 법칙에 복종하는 것이 존경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존경의 대상은 우리들에게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으로 부과되는 법칙일 뿐이다. 우리는 흔히 어떤 사람 혹은 인격체를 존경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원래는 일종의 법칙에 대한 존경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존경의 대상으로 삼는 인격체는 법칙에 대한 존경의 구체적인 실례를 나타낼 뿐이기 때문이다.

 도덕법칙에 대한 존경심을 가져야

 칸트는 존경을 말하면서 도덕법칙에 대한 존경만이 유일하다고 말했다. 도덕법칙을 존경한다는 것은 그것이 도덕법칙이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따른다는 말이다. 칸트는 왜 윤리 도덕이나 의무를 설명하면서 존경이란 개념을 썼을까? 그것은 칸트가 생각하고 주장한 윤리 도덕의 개념과 깊은 관련이 있다. 윤리 도덕은 내가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것이 아니다.

 나에게 이익이 되면 하고, 손해가 되면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것은 행위의 좋고 나쁨으로 기대되는 결과와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 윤리 도덕은 무조건적인 명령이며, 예외 없이 보편타당하게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객관법칙이다. 그것은 나 자신의 이익과 무관하게, 그것이 그 자체로 순전한 객관법칙이라는 이유 때문에,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칸트는 존경을 법칙에 대한 존경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의 의지를 규정하는 것은 객관적으로는 도덕법칙이고, 주관적으로는 그 법칙에 대한 존경일 뿐이다. 우리는 도덕적으로 행하라는 끊임없는 요구에 직면해 있다. 존경은 법칙에 대한 존경으로써 나의 이익관심과 무관하게 도덕의 요구와 명령을 무조건 따르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사람들의 상호관계에서 더 많은 존경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김양현(전남대 철학과 교수·유튜브 ‘철학TV’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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