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교 교수의 복지상식]
과도한 의료비 부담으로 고통받는 국민에게 지원하는 ‘재난적의료비’의 연간 지원한도가 5000만 원으로 상향된다.
▲재난적의료비 관련 법률 시행령이 개정되었다
정부는 과도한 의료비로 고통받는 국민에게 주는 ‘재난적의료비’의 연간 지원 한도를 상향한다. 2023년 5월 2일에 ‘재난적의료비 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됨에 따라 지원 사업의 연간 한도와 범위가 확대된다. 기존에는 1인 가구의 기준 중위소득(2023년 207만 7892원)을 연소득으로 환산한 금액의 1.5배 이내로 연간 최대 3000만 원까지 지원됐으나, 이번 개정에 따라 3배 이내인 5000만 원으로 한도가 상향된다.
또한 중증질환으로 한정해 사각지대 발생 우려를 낳았던 외래진료에 대한 지원 범위도 모든 질환으로 확대된다. 국내에 대체할 수 있는 제품이 없고, 희귀질환 진단과 치료 목적으로 구입한 의료기기 비용도 지원 대상에 포함된다.
▲본인부담 의료비의 일부를 지원받는다
재난적의료비는 과도한 의료비 지출에 따른 경제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일정 소득 이하 가구에 대해 본인부담 의료비의 일부를 지원하는 제도다. 위 법률에 따른 ‘재난적의료비’는 “이 법에 따른 지원대상자가 속한 가구의 소득·재산 수준에 비추어 볼 때 지원대상자가 부담하기에 과도한 의료비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따라 산정된 비용을 말한다”.
현재 정부는 기준 중위소득 100% 이하 가구 등의 정기적 소득 대비 의료비가 10% 이상일 경우를 재난적 의료비 지출로 본다. 기준 중위소득 초과 가구라도 의료비 부담이 크다면 개별심사를 통해 지원받을 수 있다. 그동안 재난적의료비는 입원의 경우 모든 질환이 지원 대상에 속하며, 외래의 경우 암 등 일부 중증질환에 한해서만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미용이나 성형, 예방 목적의 비급여, 특실료, 임플란트 등은 지원되지 않는다.
▲재난적의료비 지원 대상자가 확대되었다
2023년부터 재난적의료비 지원사업이 확대되었다. 연소득 대비 본인부담 의료비 비율은 15%에서 10%로 낮아졌고, 재산기준도 과세표준액 5억 4000만원 이하에서 7억원 이하로 높여 더 많은 사람이 지원받게 되었다.
재난적의료비 지원은 질환, 소득, 재산, 의료비부담수준 기준을 모두 충족시킨 사람만 받을 수 있다. 대상질환은 입원은 모든 질환이고, 외래는 암, 뇌혈관질환, 심장질환, 희귀질환, 중증난치질환, 중증화상, 중증외상 등 중증질환(본인부담산정특례 등록된 경우에 한함)이었다. 소득은 기준 중위소득 이하이고 가구원수별 건강보험료를 기준으로 판정한다. 재산은 지원대상자가 속한 가구의 재산 과세표준액이 7억원 이하이어야 한다.
의료비 부담수준은 소득기준에 따라 결정된다. 즉,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타 법에 의한 의료급여 수급권자 제외)은 본인부담 의료비 총액(건강보험 적용된 일부 본인부담금+전액 본인부담금+비급여-지원제외 항목)이 80만 원 초과, 기준 중위소득 50% 이하인 1인 가구는 120만 원(그 외 가구는 160만 원) 초과, 기준 중위소득 100% 이하는 본인부담 의료비 총액이 연소득 대비 10%초과일 때 지원받을 수 있다.
지원금액은 소득기준에 따라 지원제외항목을 차감한 본인부담 의료비(건강보험 적용된 본인부담금 제외)의 50~80%이다. 즉,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은 본인부담 의료비의 80%, 기준 중위소득 50% 이하는 의료비의 70%, 기준 중위소득 50% 초과~100% 이하는 의료비의 60%, 기준중위소득 100% 초과~200% 이하(개별심사)는 의료비의 50%를 지원받을 수 있다.
▲재난적의료비는 희귀난치병 환자에게 큰 도움이 된다
최근 정부는 치료에 필요하지만 1회에 수천만 원에 이르는 고가 약제를 쓸 경우 취약계층의 경제적 부담이 커져 재난적의료비 지원 한도를 5000만 원으로 상향하기로 했다. 루게릭병 치료제인 ‘뉴로나타’는 1회에 1500만 원, 유방암 치료제 ‘트로델비’는 1회 투여에 8500만 원이 든다.
기존엔 외래진료의 경우 암 등 중증질환에 한정해 지원받을 수 있었으나 앞으로는 질환에 상관없이 지원받을 수 있다. 희귀질환 진단·치료 목적의 의료기기 구입비도 지원 대상에 포함된다. 다만 국내에 대체 가능한 제품이 없는 의료기기를 구입한 경우에만 지원받을 수 있다.
▲재난적의료비 지원은 치료받은 경우에 받는다
병원비 감당이 불가능한 기초생활수급자 등을 지원하기 위한 정부의 재난적 의료비 제도에 허점이 있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돈이 없는 환자 유족에게 “병원비를 먼저 내야 의료비 지원이 가능하다”며 재난적 의료비 지원을 거절한 것을 두고 법원은 “경제적으로 어려울수록 지원을 못 받을 수 있어 입법 취지에 정면 위배된다”는 지적까지 내놨다.
최근 광주지법 행정1부(재판장 박상현)는 A씨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재난적 의료비 부지급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환자가 병원비를 먼저 내지 않으면 정부의 의료비 지원대상이 될 수 없다는 건강보험공단의 규정은 부적절하다는 취지다.
실제로 기초생활수급자인 B씨는 뇌졸증으로 2019년부터 약 2년간 한 대학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았고, 끝내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B씨의 유족인 A씨 또한 2년간 쌓인 병원비 2700여만 원을 감당하지 못했다. A씨는 환자 사망 책임 소재를 두고 병원과 민사소송까지 벌이게 됐다. 이 같은 소식을 들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구청은 A씨 대신 총 900만 원을 병원 측에 지원하기도 했다. 도움에도 병원비를 다 낼 수 없던 A씨는 건강보험공단을 찾아가 재난적 의료비를 신청하며 “민사소송이 확정된 이후 재난적 의료비가 지급될 수 있도록 지급 신청기한을 유예해달라”고 요청했다.
▲재난적의료비는 공단에 청구해야 받을 수 있다
본인이나 대리인이 퇴원 후 180일 이내에 건강보험공단 지사에 재난적의료비를 신청할 수 있다. 입원 중이더라도 의료비 부담 기준을 충족하면 신청할 수 있다. 신청 서류는 재난적의료비 지원 신청서와 입·퇴원 확인서, 진료비 계산서 및 영수증, 가족관계증명서 등이다. 재난적의료비 지원 신청서는 국민건강보험공단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앞에서 소개된 소송의 경우에 ‘지출’이란 단어의 해석을 두고 발생했다. 건강보험공단은 “A씨나 B씨가 병원에 실제로 납부한 의료비가 현재 전혀 없다”는 점을 들어 의료비 지원 대상이 아니라고 봤다.
하지만 재판부는 “건강보험공단의 주장대로 ‘지출’의 개념을 의료기관에 의료비를 납부한 경우로만 한정해 해석한다면, 의료비 일부를 당장 납부할 여력이 있는 사람은 공단으로부터 의료비를 지원받을 수 있고, 그보다 경제적 사정이 열악한 사람은 의료비를 실제 납부하지 못해 오히려 의료비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하는 모순된 상황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또 “지원법의 입법 취지는 과도한 의료비로 어려움을 겪는 경제적·사회적 약자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의료 접근성을 보장해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호하는 것에 있다”면서, “지원법이 규정하는 ‘지출’은 지원대상자가 의료기관 등에 실제로 의료비를 납부한 경우는 물론이고, 의료기관 등에 납부할 의료비 지급채무는 확정됐지만 아직 납부를 하지 못한 경우 등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과도한 의료비가 걱정되는 사람은 건강보험공단에 ‘재난적의료비’를 신청하기 바란다.
복지로 http://www.bokjiro.go.kr
이용교 <광주대학교 교수, 복지평론가> ewelfare@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