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이 만난 사람] 광주시 코로나 브리핑 수어통역사 김지영 씨
“모두의 언어가 함께 마주할 수 있는 세상 꿈꿔”
“장애인 정보 접근에 수어 통역사 반드시 필요”
호기심에 귀를 기울였던 19살 어느 날, 허공에서 하는 손짓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궁금했다. 끝없는 호기심에 노크를 했더니 오늘날의 직업이 되었다. 광주광역시 코로나 브리핑을 통해 방역 정보를 널리 알려왔던 전달자, 바로 김지영(43) 수어통역사다.
1999년 대학 진학을 앞두고 교사의 꿈을 꾸던 그는 우연히 장애인 야학에서 근무하는 이를 만났다. 그로부터 장애인들에게 공부를 가르쳐보지 않겠느냐는 권유를 받았다. 그렇게 장애인들에게 직접 찾아가서 검정고시 공부를 가르쳐주면서 사회복지학과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 길로 사회복지학과로 진학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수어를 처음 배웠던 그날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고등학생 시절, 수능이 끝나고 대학 입학 전까지 시간이 남아 처음 수어를 접하게 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이 길로 오려고 그랬나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어요. 첫 수어를 배운 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청각장애인을 만났는데 그 기억이 또렷하게 남았고 지금 생각해 보면 운명 같아요.”
언어기 때문에 늘 새로 태어나고, 공부하고
호기심에 시작했던 수어, 처음 만난 청각장애인 덕분에 동기가 폭발했고 의욕이 넘치면서 매일 수어에 빠져 살았다고 한다. 보통 일주일에 1회 교육을 한다면, 그는 매일 학교를 마치고 센터에 가서 빠져 살다 시피 하다 보니 세 달에 걸쳐 끝나는 교육을 한 달도 안 돼서 끝낼 정도로 재미를 느꼈다고.
손짓을 했을 뿐인데 상대가 나의 손짓을 보고 읽는 게 신기했고 그래서 더 많이 알고 싶었다는 김 통역사. 재밌게 배웠지만 기초 단계를 넘어서니 다음 단계는 또 어려웠고 그러면서 쉬운 언어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언어이기 때문에 늘 새로운 용어들이 생겨나고 늘 공부해야 하는구나”라는 생각들에 부담감도 커져갔다고.
하지만 수어의 한 문장을 완성해서 상대가 언어를 읽었을 때의 짜릿함을 잊을 수 없다.
“너무 신기했어요. 어떻게 손짓의 의미가 전달이 돼 음성 언어가 아닌 손짓 언어로 소통이 되는지 마냥 신기했고 기쁘고, 상대가 제가 알고 있는 단어를 사용하는 걸 보고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있는 제 자신이 신기한 거예요. 그런 재미 때문에 더 많이 수어에 빠지게 된 것 같아요”
2000년, 호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한 그는 사회복지학을 복수전공으로 수업을 듣기 위해 온 학우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학교 차원에서 청각장애인에 대한 지원책이 없다 보니 수업시간 내내 앉아있다가 돌아가는 걸 보고 내내 안타까웠다고. 그는 통역을 할 정도는 아니지만 조금이나마 수업시간에 도움을 주고 싶다고 전했다. 대신 잘못된 수어 표현법이 있다면 반대로 나에게 지도를 해달라고 일종의 협상(?)을 했다고 한다.
김 통역사는 “교수님께서도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 이런 상황이 알려지다 보니 주변에서 수어통역사 시험을 보라는 권유를 하기도 했다”면서 “사실 큰 자신감도 없었고 통역사의 길은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경험 삼아 해보고 그 뒤에 사회복지사를 준비해도 늦지 않다는 조언에 본격적으로 준비하게 됐다”고 말했다.
내 손짓을 언어로 이해하는 이들이 있어 감사
그렇게 경험 삼아 준비했던 시험에 합격해 자격증을 받게 됐고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늘 신기하고 그렇게 될 운명이었다는 생각이 든다는 김지영 통역사.
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자격증을 취득한 이들이 그리 많지 않았고 수어센터의 상황이 어려워 주변에서 많이들 말렸지만 고민할 새도 없이 자석에 끌려가듯이 “그냥 수어센터 갈래요”하고 대학교 4학년이던 2003년 10월, 수어통역센터에 입사를 했고 이후 프리랜서로 통역일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코로나가 전 세계로 확산되던 2020년 3월부터 광주시 브리핑 통역을 맡게됐다.
“기존에 한 방송국에서 오른쪽 하단 작은 원 안에 들어가, 비장애인들이 봤을 때는 티도 안 나는 조그만 원 정도의 크기에서 통역일을 해오다가 광주시의 제안에 고민이 앞서기도 했어요. 하지만 이게 나의 일이라면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고 발화자 옆에서 동일한 크기로 통역을 시작하게 됐어요.”
어수선한 상황과 감염병 위기상황, 확진자가 나오면 굉장히 촉각을 곤두세웠던 시기.
김 통역사는 “여기저기 통역일을 하고 다니다 보니 저로 인해 확진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걱정이 커서 가족 모임도 안 나가고 친구들도 안 만나고 통역일을 제외하곤 밖에 나가지 않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또 “통역을 하는 사람이 무슨 내용인지 알고 브리핑에 들어가야 더 수월하고 정확하게 전달을 할 수 있는데, 내용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 통역이 통역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브리핑을 맡았던 초반에는 어려운 점도 컸다”면서 “하지만 통역 현장에서는 대본이 의미가 없었고 브리핑 내용을 들으면 바로 수어로 옮길 수 있도록 사전에 관련 기사들을 체크하고 어디서 감염이 됐고 어떻게 발생하게 됐는지 등에 대한 정보를 미리 숙지해 두고 준비를 하곤 했다”고 덧붙였다.
김지영 통역사는 코로나 전과 후로 통역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코로나 전에도 방송에서 수어 통역이 계속 제공되고 있었지만 화면 하단에 있다 보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코로나 브리핑에서는 발화자 옆에서 똑같은 화면에 같은 크기로 나오다 보니 보는 이들이 많이 불편해했어요. 옆에서 수어를 하고 있으니 시선이 빼앗긴다는 이유에서죠. 작게 보여줘도 될텐데 왜 거슬리게 하냐는 시선이 많았어요.”
하지만 “통역사의 모습이 자주 보이다 보니 어느 순간 익숙해져 가는 게 보이더라고요. 이게 언론의 힘이라고 볼 수도 있겠죠. 브리핑 시 통역사가 함께 하는 걸 당연하게 여겨지고 거슬리지 않는 느낌인 거죠.” 코로나 전과 초반 그리고 3년이라는 코로나라는 시기동안 그가 느낀 시선들이다.
수어 통역사 많이 늘려야 그들에 힘 돼
최근에는 다양한 플랫폼으로 사용자가 원할 때 드라마나 영화를 보여주는 VOD 서비스인 OTT에서 제공하는 자막 덕분에 인식의 개선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고 한다.
예전에는 TV에 나오는 자막을 불편해하는 목소리가 컸었는데, 최근에는 비장애인들도 소리를 듣다 보면 놓치게 되는 부분들이 있는데 자막을 통해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어서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어서 자막에 대한 인식도 많이 개선됐다는 것.
하지만 여전히 언어의 부재에 대한 고민이 깊다고 한다. 청각장애인들은 언어 코드가 맞지 않기 때문에 사회에서 살아가는데 굉장히 불편함을 느끼곤 하기 때문에 통역이 필요하다고. 이들이 가는 곳에 통역으로 연결고리를 지어줘야 하는데 언어의 부재로 인해 비장애인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굉장히 많다는 것. 그래서 언어가 맞지 않으면 청각장애인들은 모든 정보에서 소외된다는 것이다.
김 통역사는 “청각장애인들이 정보에 접근할 때 수어 통역이 함께 할 수 있도록 대책이 필요하다”면서 “문화예술분야나 세미나 등을 가보고 싶어도 통역사가 있을지에 대한 고민부터 하게 되는데, 청각장애인들을 위해 수어통역사를 많이 양성하고 수어 사용자를 늘리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청각장애인들은 본인들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임에도 불구하고 소통이 되지 못하면서 언어소통에 대한 부분을 늘 걱정하고 살기 때문이라고.
사회에서 청각장애인들에게 말을 하라고 할 수 없지만 음성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에게 수어를 가르칠 수는 있다는 것. 그래서 수어가 가능한 사람이 늘어나면 청각장애인들도 어디서든 수어가 가능한 이들이 주변에 있으면 편히 찾아가서 의사소통 걱정 없이 본인의 언어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수어 사용자를 늘리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수어통역일을 20여 년 간 하다 보니 가장 많이 듣는 소리가 “좋은 일 하시네요”란다. 이게 못마땅하다.
“사실 모든 사람들이 가진 직업이 누군가에게 피해 주지 않는 이상 모두에게 좋은 직업이고 좋은 일을 하는 것일 텐데, 굳이 꼭 이 일을 통해서 좋은 일을 한다라는 말을 듣게 되면 그 내면에 누군가를 돕고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뉘앙스를 받게 돼요. 그런데 사실 수어 통역은 하나의 언어를 다른 언어로 바꿔주는 전문용어거든요. 그래서 전문적인 영역으로 봐주셨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많이 하죠.”
수어 배우기 우선 청각장애인에 관심을
그러면서 수어를 배우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조언을 했다.
“수어도 하나의 언어입니다. 내가 쓰고 있지 않은 다른 언어를 배우는 이유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과 소통하기 위해서에요. 수어에만 관심을 갖지 말고 수어를 배워서 사용할 수 있는 곳이 청각장애인들이 있는 곳이에요. 이들에게도 관심을 갖고 소통할 수 있도록 만남의 자리를 많이 가지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김지영 통역사는 앞으로도 쭉 청각장애인들의 언어를 대신 전달해 줄 수 있는 수어통역일을 꾸준히 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앞으로는 수어교육을 위해 계속 힘쓰지 않을까 싶어요. 점점 더 관심을 가져주시는 분들도 많이 계시더라고요. 억지로 시켜서 배우는 사람은 그냥 제자리에 있지만 내가 배우고 싶어서 선택한 이들은 늘 반짝반짝 빛나더라고요. 그래서 더 재밌고 수어교육을 위해 강의도 나가 장애인 이해 교육이 필요한 순간에 늘 함께 하고 싶어요."
또 “요즘 극단적인 상황들이 굉장히 많아 마음이 아프다”면서 “청각장애인들에게 ‘어떤 부분이 부족하니까 해줄게’가 아니라 동등한 관계에서 서로 사회 구성원으로 같이 배려하며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코로나 때 거의 비대면이어서 만나질 못했는데, 이제 코로나 종식 선언도 했기 때문에 ‘이제는 만나서 이야기합시다’라는 의미를 담아서 청각장애인들을 포함해 모두가 함께 서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면서 수어를 소개했다.
두 주먹의 1지를 펴서 마주 세웠다가 중앙으로 모아 마주대면 된다.
만나다, 누군가 가거나 와서 둘이 서로 마주 본다는 의미를 뜻한다. 비장애인과 청각장애인들이 함께 마주 볼 수 있는 순간, 김지영 수어통역사가 꿈꾸는 내일이다.
유새봄 기자 newbom@gjdrea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