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이 만난 사람]‘좋은 불평등’ 저자,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
“틀린 분석에 입각하니 정책 처방 오류”
“내 심장은 왼쪽에서 뛴다. 심장이 왼쪽에서 뛰는 사람이라면, 불평등 문제에 무관심할 수 없다.”
한국의 불평등에 관한 책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의 말이다.
공무원연금을 깨서 그 돈으로 버티며 5년여 동안 집필에 주력한 결과로 탄생한 책이 ‘좋은 불평등’이다.
그는 오랜 기간 진보정당에서 활동해왔고, 민주당에서도 정책 관련 일들을 해왔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마지막 정책보좌관, 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 부원장, 한국사회여론연구소 부소장을 맡아왔다.
이같은 이력의 최병천 소장은 지난 27일 한반도미래연구원 주관 여성비전네트워크 주최로 열린 북토크 콘서트에 참석했다.
본 행사 전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좋은 불평등’에서 전달하는 중요한 메시지는 “실제 현실은 1차 방정식이 아니다”는 것이다.
‘정책을 통해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 꿈’이라는 최 소장. 국회 보좌관으로 일하던 시절 민생 입법을 만들어 통과시킨 경험이 바탕이 됐다. 민생 입법의 경험이 축적되자 더 큰 의제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고, 연장선상에서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했다.
우리나라 불평등의 30년 지표
‘좋은 불평등’은 우리나라 불평등의 30년 지표를 보여주면서 한국경제 불평등 전반과 세계 경제 및 중국 경제와 연결하고 있다. 한국경제 불평등의 문제를 정책적 관점에서 접근한 것이다.
“불평등을 ‘인수분해’해야 한다”면서 “좋은 불평등과 나쁜 불평등을 구분하고 불평등의 상층 요인과 하층 요인을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책에서 말는 ‘좋은 불평등’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1년 중국의 WTO 가입 이후, 우리나라가 중국 수출로 대박이 날 시기에 증가한 불평등을 꼽는다. 이 시기 한국의 수출증가율은 연평균 30%에 달했는데 좋은 불평등의 대표적이라고 한다.
반대로 ‘나쁜 평등’은 이명박 정부 때인 2008년 발생한 글로벌 금융 위기가 대표적이다. 이로 인해 수출이 줄어들었고, 우리나라 불평등이 외부 조건과 연동되면서 한국의 수출과 고용, 투자, 불평등이 줄어들었지만 이는 나쁜 평등의 대표적인 사례라는 것이다.
최 소장은 이처럼 한국 경제 불평등에 관한 기존의 잘못된 통념 뒤집기를 목표로 한다. 틀린 분석에 입각해 틀린 정책 처방이 나왔다고 판단한 것으로, ‘올바른 분석’이 무엇인지 보여주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고 한다.
“저희 어머니는 1938년 해남 출신으로 평생 한글을 모르고 돌아가셨어요. 딱 한 가지 ‘윤길순’이라는 이름 석 자만 쓰실 수 있었는데, 1938년 일제강점기 시대였던 그때는 ‘여자는 글을 배울 필요가 없다’고 해서 글을 못 배우셨거든요. 태어날 때부터 스무 살까지 거의 전쟁 시대를 살아왔어요. 그 시대는 식민지에서 대한민국으로 바뀌던 전환기였고 여자는 글을 배울 필요가 없다는 강력한 가부장제 속에 우리나라 문맹률이 80% 가까이 됐던 시기였죠.”
1931년부터 1937년까지 일본이 만주를 침략한 만주사변과 중일전쟁, 1941년부터 1945년까지 태평양 전쟁에 이어 진주만 공습, 1950년부터 1953년까지 한국전쟁까지…. 최 소장은 “1938년부터 1953년까지 20여 년간의 시간은 제가 보기엔 현대사에서 가장 어두운 시대”라고 진단했다.
“우리 어머니 또래의 어르신들이 가장 힘든 시대를 살아왔고 이를 너무 늦게 알게 됐다고 생각하던 찰나에 공유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불평등 문제 해결 위해 본격적 연구해”
최 소장이 이 같은 기획 의도를 배경으로 책을 출판하게 됐다. 그래서였을까, ‘좋은 불평등’에선 ‘노년층’을 불평등 해소의 중요 계층으로 설정한다.
한국의 자살률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가장 높다. OECD가 2018~2020년 통계를 바탕으로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OECD 42개국 중 자살률 순위 1위를 기록했다. 우리나라가 2003년 이후 OECD 자살률 부문에서 1위 자리를 내준 것은 단 2개 연도(2016, 2017)뿐이다.
최 소장은 “노인 자살률이 대부분인 상황인데 그렇다고 다른 세대의 자살률이 낮은 건 아니지만, OECD 평균과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노인빈곤율과 노인자살률이 4~5배 정도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의 의문점은 여기서 출발한다.
그동안 왜 민주당과 진보는 이 부분에 주목하지 않았을까?
여기에 대한 답은 ‘표’다. 선거철 표가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노인들의 대부분이 ‘국민의힘 지지층’이라고 생각한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청년 표를 얻기 위해서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고 있다. 그렇다고 노인 정책을 반대까지는 아니지만 반면 적극적인 편은 아니다. 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라고 보여요. 그렇기 때문에 좋은 진보가 아니라는 거죠. 진보라는 말은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데, 그중에 하나는 ‘어떤 약자에 대한 연대’라고 생각해요.”
최 소장은 “우리 사회에선 노인 빈곤과 노인 자살률, 이 두 가지가 만나게 됐다. 빈곤은 연령의 문제뿐만이 아닌 한 세대의 문제이기도 하다”면서 “한평생 노동하다 돌아가신 어머니와 그 시대를 함께했던 어르신들에게 이 책을 바치는 이유”라고 밝혔다.
집필 집중 16개월, 준비기간 포함 5년
최 소장은 준비기간 포함해 5년 동안 ‘좋은 불평등’을 써냈다. 힘든점도 많았다고 한다.
“틀렸다고 지적하는 건 어렵지 않은데 제대로 된 분석이 훨씬 더 방대한 작업이에요. 실제로 제대로 된 분석이 무엇인지 규명하는 게 힘이 들었고, 또 다른 하나는 생계 문제가 가장 큰 문제였죠.”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었고 생계 문제로 인해 중도 하차하는 게 가장 공포스러웠던 일이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추진하게 된 건 “제가 아니면 이러한 일을 할 만한 사람이 많지 않을 거란 판단”이었다고.
그는 “중도하차하게 되면 우리는 어떤 이념적 편향 또는 잘못된 진단과 잘못된 분석, 잘못된 처방을 가지고 살아나갈 테니까 그 부분이 가장 공포스러웠던 일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최 소장은 “30여 년의 인생을 운동권에 몸담아 살아왔는데 어떤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에 대한 집념이 있었다”면서 “우리 공동체를 좀 더 좋은 사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권력을 잡아야 하고 또 다른 하나는 솔루션에 대한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솔루션에 대한 능력은 사회과학적 교양 능력과 여러 가지 추진력, 즉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사회과학적 교양 측면에서는 잘못된 진단과 틀린 진단, 틀린 처방을 하고 있기 때문에 경제학에 대한 이해, 정책, 정치, 담론의 역사 등을 알고 있어야 하는데…. 이같은 조건이 동시에 충족되고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글쓰기 능력까지 충족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는 것.
그래서 최병천 소장은 “내 인생에 일정 부분을 갈아 넣어서 쓰지 않으면 그냥 바뀌는 건 없을 것이란 생각을 했고 이 같은 부분이 집념과 애착 그리고 열정의 형태로 나타났고 ‘좋은 불평등’이 탄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일반시민을 위한 한국경제 불평등 교과서’를 목표로 집필된 ‘좋은 불평등’은 궁극적으로 대통령과 국회의원 등 정책 결정권자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서 집필됐다.
△한국경제 불평등 30년의 역사 △불평등과 경제성장의 관계 △한국경제와 세계경제 및 중국경제의 변화가 한국 불평등에 미친 영향 △한국의 노동 문제와 사회복지 △초고령화 문제 등을 다룬다.
“운동권 활동, 80년 광주서 큰 영향”
특히 그간 알고 있던 불평등에 관한 통념을 전복한다. 외환위기 이후 불평등이 시작됐고, 재벌, 신자유주의, 비정규직 때문에 불평등이 커졌고, 정치권의 정책적 요인 때문에 변동했고, 불평등은 경제성장에 해롭다고 알고 있었지만, 이러한 통념이 모두 사실이 아니거나, 거의 전부 사실이 아님을 논증하고 있는 것.
최 소장은 향후 계획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후속 책으로 정책 및 데이터에 근거한 정치 분석서인 총선 전략 제안서를 집필하고 있다. 진보의 혁신에 대한 문제의식의 연장이라는 것.
그는 “정치적, 정책적, 경제적 교양 수준을 끌어올리는 책을 쓰는 것이 향후 계획”이라면서 “출판이라는 매체를 통해 좋은 공론화 작업을 일으켜 우리들의 이념적 편향 정책적 편향들에 대해 우리 전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논쟁을 일으키는 것, 그게 미션이라고 생각하고 하나의 방법으로 출판을 생각하고 있다”고 계획에 대해 설명했다.
끝으로 최병천 소장은 “80년대 많은 운동권이 그랬던 것처럼 저도 운동권이 되는 과정에 80년 광주로부터 큰 영향을 미쳤던 사람”이라면서 “그래서 광주 시민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할 수 있게 되어서 매우 큰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유새봄 기자 newbom@gjdrea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