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주차장에 떨어져 있던 1000원짜리 지폐. ‘칠칠치 못하게 누가 흘리고 다닌담.’ 혀를 끌끌 찬 뒤 ‘어떻게든 해보자’며 주워 들긴 했는데. 주인이 누군지 알아야 돌려주지. 돌려준다고 좋아나 할까?
여러 가지 생각에 근처 차량에 올려놓고 돌아서는데 왠지 끌리는 느낌이….
가만 있자, 1000원짜리 실물 영접이 얼마만이냐. 갑자기 눈 마주친 화폐 속 퇴계 선생도 여러웠든지 얼굴이 파랗게 상기돼 있다.
1500원짜리 커피도 카드로, 페이로 계산이 자연스러운 시대다. 택시 운전사 잔돈 심려 끼치지 않으려고 천 원짜리 꼬박꼬박 챙겨 타려 애썼던 게 불과 몇 년 전 기억인데….
어쩌다 보니 1000원짜리 지폐 자체를 잊고 살고 있다.
가치의 연대·공유, 비용 분담
그렇다고 1000원의 가치가 하찮은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거룩한 계보’ 속 1000원의 가치를 확인한다.
광주 동구 대인시장에는 2010년부터 13년째 이어진 1000원짜리 식사가 있다. ‘해 뜨는 식당’, 이곳에서 1000원은 한 끼니로, 삶의 양분이다.
요즘처럼 치솟는 물가에도 단 한 번 가격 올린 법 없이 1000원을 고집했다. 힘들고 배고픈 이들에게 부담 없이 끼니를 제공하고자 함이다. 눈치 보지 않고 누구나 배불리 식사하라고 낮춘 문턱이다. 이곳을 처음 연 고 김선자 씨에 이어 지금은 딸 김윤경 씨가 주방을 지키고 있다.
국립5·18민주묘지 초입 ‘한백년식당’은 매주 월요일 1000원짜리 점심을 제공한다. 식당 주인 최선희 대표와 딸 김지혜 씨가 지역사회 봉사를 위해 매주 하루 쉬는 날을 반납했다.
1000원 점심을 제공하는 이유가 간단치 않다. ‘한 끼를 제공할 테니 드시고 5·18 민주묘지를 참배하시라’는 권유가 담겨 있다. ‘쌀 소비 촉진’이라는 의미도 더해진다.
지난 4월 24일 첫 식사를 제공한 뒤 이달 29일까지 6차례 1000원짜리 점심이 차려졌다. 매 끼니 100~150여 명이 다녀간다고 한다. 1000원 밥상의 의미가 잘 전달되고 있음이다. 식사 후 5·18묘지로 향하는 발걸음이 자연스럽다.
매 끼니 쑥떡과 삶은 계란, 짜장 등 10가지의 반찬과 과일, 복분자와 오디를 혼합한 발효음료 등 푸짐한 한 상이 차려진다. 실제론 절대 1000원 일수 없는 상차림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1000원으로 책정된 밥값은 가치의 공유이며 연대의 징표다.
의미에 동의하는 제공자와 손님, 지역 사회가 가치 비용을 분담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피해자 인권 보호’라는 공익
최근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을 향한 정부 여당과 보수 언론의 노골적인 해코지가 놓치고 있는 게 이 대목이다.
‘20% 약정’을 ‘반일 비즈니스’라고 비판하고 있는데, 가치(공익)를 공유하는 이들의 연대를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일제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 등 원고 5명이 전범기업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제기했던 2012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소송은 ‘민주사회를 위한변호사모임 광주전남지부’ 소속 변호사들이 대리인으로, (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의 전신 ‘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이 지원 단체로 함께 했다.
이때 약정이 맺어진다. ‘손해배상금·위자료·합의금 등 명칭을 불문하고 피고로부터 지급받은 돈 20%에 해당하는 금액을 ‘일제 피해자 인권 지원 사업, 역사적 기념사업 및 관련 공익사업’을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시민모임에 교부한다’는 조항이다.
예의 보수언론과 정부·여당은 이를 두고 “시민운동을 가장한 비즈니스이자 자신들의 일자리 창출의 도구”, “반일 브로커” 등의 무례한 언사로 비난을 퍼붓고 있다. 명확히 기록돼 있는 약정의 목적, ‘일제 피해자 인권 지원 사업, 역사적 기념사업 및 관련 공익사업에 사용’한다는 가치는 모른체하면서.
강제동원시민모임 측은 “변호사 단체, 시민단체, 시민들이 자신의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들의 인권 회복을 위해 함께 손을 잡고 힘을 보태왔다”면서 “10여 년 이상 긴 싸움을 해올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의 숨은 조력과 우리 사회의 선량한 힘이 보태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과정에서 ‘20% 약정’은 “누군가의 조력 없이는 권리 회복에 나설 수 없는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인권 피해자를 위한 공익적 활동을 위한 디딤돌”이라는 성격이 명확하다. 소송에 관여하는 주체들의 연대의 징표로 손색없다.
일제 강제동원 가해자를 빼고 피해자가 책임지는 ‘3자 변제안’을 확정하고, 피해자들에게 이의 수용을 설득하는 데 혈안 돼 온 이들만 이를 공격한다.
‘일제 식민지 지배 사죄·배상’이란 역사적 가치를 훼손하고, 훼방해 온 이들이 자신들의 부끄러운 민낯을 감추기 위한 ‘마녀사냥’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채정희 (편집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