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청일의 독서일기](38)산사나무 아래에서/ 마리타 콘론 맥케너/ 산하
필자는 그 동안 책을 읽고 조금씩 메모해 온 내용들을 독자들과 ‘공유하고 토론’하고자 글을 쓰게 되었다. 내용은 책 소개와 정리, 간단한 소감, 또는 깊이 있는 분석과 평가 등 책에 따라 달라진다. 읽기 편한 대화체 형식으로 서술하고 1차 목표는 100권이다. 100권을 쓸 수 있게 만드는 힘은 독자들과의 건강한 토론이라 믿고 있다. <편집자주>
한국보다 더 오랜 기간 식민지를 경험했고 독립 이후에도 국토의 일부 지역은 분리된 상태로 있는 분단 상황 국가. 바로 유럽의 아일랜드입니다
영국의 헨리 8세가 1536년 아일랜드를 정복하고 영국 국왕의 통치를 선언한 이후 아일랜드는 수백 년 동안 영국의 식민통치를 받았습니다. 1921년 영국-아일랜드 조약을 맺게 되고, 1922년 아일랜드 공화국이 탄생하였으나, 북아일랜드는 여전히 영국 영토로 남기도 하였습니다(아일랜드 역사, 위키백과).
흔히 영국과 아일랜드의 관계를 한국과 일본 관계와 비교하기도 합니다. 한국과 아일랜드 모두 식민지의 쓰라린 역사적 경험을 거쳤고 일본과 영국에 대한 국민감정이 좋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1998년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에서 영국과 아일랜드, 북아일랜드의 대표자들이 모여 평화협정을 맺으면서 아일랜드-영국 양국 관계에 일대 전환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이후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와 엘리자베스 여왕이 잇달아 아일랜드를 방문하기도 하였습니다(벨파스트 협정, 나무 위키).
아일랜드는 노벨 문학상에 빛나는 조지 버나드 쇼, 윌리엄 예이츠, 사뮈엘 베케트를 배출하기도 하였고, 오스카 와일드와 조너던 스위프트라는 세계적 문호들이 나오기도 하였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중가요 스타들도 있는데, 크랜 베리스, 웨스트 라이프, 엔야 그리고 세계적인 락 그룹 U2가 모두 아일랜드 출신입니다(아일랜드, 위키백과).
아일랜드의 종교는 가톨릭 인구 84%, 그리고 개신교인, 유대교인, 이슬람교인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가톨릭 교회의 정통 도덕성에 대한 도전과 낙태와 이혼에 대한 사회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2015년 세계 최초로 동성결혼을 대중 투표로 합법화 시키기도 했습니다(아일랜드 역사와 문화, 네이버 지식백과).
아일랜드는 1845년 ‘아일랜드 대기근’이라는 세계사적으로도 끔찍한 사건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감자가 주식이었던 아일랜드 국민들은 ‘감자역병’이라는 전염병이 돌게 되자 감자를 수확할 수 없게 되어 굶주리기 시작하였고, 아사자가 속출하였습니다. 당시 아일랜드를 식민 지배하고 있던 영국이 밀과 옥수수 등 다른 작물들을 영국으로 가져갔기 때문에 감자가 주식이 될 수밖에 없었던 탓도 있었습니다. 먹지 못해 면역력이 떨어지자 전염병에 쉽게 노출되어 질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이때 사망한 사람이 100만 명이 넘었는데, 살길을 찾아 아메리카로 이주한 사람 숫자도 100만 명이 넘었습니다(아일랜드 대기근, 위키백과).
‘당신은 전쟁을 몰라요’의 저자이자 러시아-우크라이나의 전쟁 지역에서 탈출한 ‘에바’와 할머니가 유럽 여러 나라를 거쳐 마지막으로 정착한 곳이 아일랜드이기도 합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세계적인 뮤지션들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연대를 표시했습니다.
아일랜드 출신 U2도 우크라이나의 키이우를 직접 방문해 방공호로 사용하고 있는 지하철역에서 공연을 하였습니다. U2의 리드 싱어인 보노는 현장에 있던 우크라이나 시민들에게 “우크라이나 국민은 단지 그들의 자유만을 위해 싸우는 게 아니다”, “자유를 사랑하는 우리 모두를 위해 싸우고 있다”며 격려를 하기도 하였습니다(경향신문, 2022. 5. 9).
수백 년 동안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아왔으며 세계사적으로 국가적인 굶주림과 이민의 대사건을 경험하기도 하였고 독립 이후에도 북아일랜드, 영국과 수십 년 동안 갈등을 빚어왔던 아일랜드. 이어진 평화협정. 영국 수상과 여왕의 아일랜드 방문과 사과, 이를 받아들인 아일랜드 시민들, 그리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아일랜드 출신의 세계적인 락 그룹 U2의 자유에 대한 외침과 우크라이나 시민들에 대한 연대의 표현.
여러 측면에서 아일랜드는 흥미를 끕니다. 오늘은 이런 맥락에서 ‘감자 대기근’이 밀어닥친 생사의 갈림길에서 고향을 떠나 이모 할머니댁을 찾아 가는 세 남매의 이야기를 다룬 『산사나무 아래에서』를 다루려고 합니다. 세 남매의 가족애에 뭉클하기도 하고, 생사의 갈림길에서 여러 위기들을 겪으며 성장해가는 모습에서 가슴 아픔과 의젓함을 느끼게도 됩니다.
어린이, 청소년 소설이지만 다루고 있는 내용과 이야기 구조, 메시지가 감동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삶에 대한 의지를 다시 다지게도 해 주고, 사회적 약자에 대해 돌아보게도 합니다. 무엇보다 아일랜드와 아일랜드인들에 대한 아주 조금의 이해가 오늘의 현실에서 인류애적인 차원의 연대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봅니다.
세 아이들, 길을 나서다
이야기는 감자마름병이 아일랜드를 덮친 1845년 다음 해에 시작됩니다. 아일랜드의 드럼니프 ‘더닌 마을’에 살고 있는 에일리는 지난 1년 동안을 돌아보면, “가끔씩은 이 모든 게 꿈이고 이제 곧 웃으며 잠에서 깨어날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배고픔, 마음 속 깊은 슬픔이 ‘현실’을 자각하게 합니다.
12살 에일리는 밑으로 9살의 마이클과 7살의 페기, 갓난아기인 브리짓이 있습니다. 1년 동안의 기아 상황은 아이들을 조금씩 성숙하게도 만듭니다. 마이클만 해도 처음에는 칭얼대기 일쑤였는데, 그때마다 나무 숟가락만 쥐어 주던 부모님, 그럼에도 불만이 누그러들지 않는 마이클을 보는 아빠의 눈에 어린 슬픔, 울음을 터뜨리는 엄마를 보며 “때로는 잠자코 있는 것이 더 좋을 때도 있다”는 걸 깨닫기도 했으니까요.
이제 먹을 거라곤 감자 세 알밖에 남지 않았고, 돼지기름과 옥수수 가루, 양파 조금, 딱딱한 사과 하나뿐입니다. 아빠는 마을에서 30킬로미터 떨어진 공사장으로 일거리를 찾아 떠난 지 2주가 되었지만 소식이 없습니다. 아기 브리짓이 기침을 하며 가쁜 숨을 쉬어도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저녁. 그렇게 누구도 잠들지 못한 새벽녘에 아기 ‘브리짓’이 죽습니다.
신부님도 앓아 눕고, 장의사도 이미 사망한 후라 장례식도 치르지 못한 채 이웃인 댄 아저씨가 집 뒤뜰에 있는 산사나무 아래에 브리짓을 묻어줍니다. 상심으로 아무 일도 하지 못한 채 집에서만 지내던 엄마는 며칠 후, 결혼식 때 할머니가 손수 짜 주신 레이스 숄과 회색 레이스 옷깃이 달린 웨딩드레스를 팔아 얼마 되지 않는 식량이나마 구해 옵니다. 날마다 길가에서 아빠를 기다리던 엄마는 닷새 후 아이들에게 단단히 당부를 한 후 아빠를 찾으러 나섭니다.
그런데 며칠 후 감독관이 찾아와 어른이나 생계 수단이 없는 집은 빈민 수용소로 보낸다며 데리고 갑니다. 에일리는 마이클과 페기를 설득하여 수용소로 가는 도중 탈출하여 캐슬태거트에 살고 있는 나노와 레나 이모 할머니를 찾아 길을 가게 됩니다. 아이들의 여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위기의 순간들
아이들은 풀밭을 걷다 강에 도착하여 안전한 곳을 찾아 건너게 되는데, 이때 마이클이 정강이를 다치게 됩니다. 며칠이 지나자 더 이상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붓고 고름이 차게 됩니다. 에일리의 지혜로운 처치로 다행스럽게 어느 정도 회복이 되자 아이들은 다시 길을 나섭니다.
자신들처럼 길을 떠나는 사람들을 만나 무료 급식소를 알게 되어 함께 찾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에일리는 좁은 길을 가득 메운 수백 명의 사람들, 퀭한 눈, 비쩍 마른 입술, 검은 그늘이 드리워지고 황달기 있는 눈, 유령같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풍경이 있는 이곳이 지옥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다음 날 자신들처럼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마을 끝 큰 집으로 들어가던 젊은 여인들이 나올 때는 혼자 나오는 걸 본 에일리는 아이들을 수용소로 데리고 가나 궁금해 하면서도 겁이 납니다. 여인들이 자신들에게 다가오자 멀리 서 있는 나이든 부부에게 손 인사를 주고 받으며 자신의 부모라고 속여 그 자리를 벗어나게 됩니다.
아이들은 좁고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따라 걸을 때 제정신이 아닌 개들의 공격을 받기도 합니다. 몸집이 크고 털이 까만 콜리가 페기의 팔을 물고 늘어지기 시작하고, 에일리가 콜리의 목덜미를 잡고 떼어 내려 하지만 콜리는 놓아 주지 않습니다. 페기는 쓰러지고 작은 테리어는 에일리의 발뒤꿈치를 물게 됩니다.
미친 듯이 도랑을 뒤지던 마이클이 구해 온 몽둥이로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콜리의 머리를 수차례 내리쳐 페기를 구하게 됩니다. 에일리는 충격을 받은 페기를 진정시키고 살아 있는 동물을 죽였다며 자책하는 마이클을 위로하며 다시 길을 나섭니다.
무덥고 습한 날씨에 굶주리며 걷던 아이들은 밤길을 이용해 좀더 멀리 걷기도 하고, 폭풍우를 만나 담요를 둘러쓴 채 무서운 밤을 보내기도 합니다. 그러다 페기가 온 몸에 열이 난 채 쓰러지게 됩니다. 에일리와 마이클은 풀밭 한가운데 커다란 산사나무 근처 키 작은 나무들이 우거진 숨어 있기 안성맞춤인 곳에 페기를 눕히고 돌보게 됩니다.
부싯돌로 마른 낙엽들과 가지들을 모아 불을 지피기도 하고, 시간에 맞춰 그나마 약을 먹이기도 하면서, 조금 남은 음식과 먹을 수 있는 꽃, 풀, 나뭇잎 등을 물에 넣고 끓여 먹어도 배고픔은 가시지 않습니다. 페기는 자다가 헛소리를 하기도 하고, 열이 가라앉지를 않습니다.
에일리는 고향에서 수용소로 갔더라면 날마다 스튜와 빵을 먹었을지 모른다며 자신을 자책하다, 근처에 수용소가 있을 것이고, 그곳에 가서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 거라는 데 생각이 미치게 됩니다. 자신은 페기 곁을 떠날 수 없지만 동생 마이클이라면 페기를 도와줄 사람을 불러 올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마이클은 사람들을 불러오려 길을 나서게 되고 필사적인 수색을 통해 마침내 수용소로 사용하고 있는 방앗간에 도착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곳의 현실 또한 지옥도의 한 풍경입니다. 현실을 깨닫고 정신없이 되돌아 뛰기 시작하던 마이클의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흐릅니다.
돌아오던 마이클은 누이들이 있는 근처에서 길을 잃어 가시나무에 갇힌 젖소를 발견하게 되고, 급히 돌아와 페기와 함께 쓰러져 자고 있던 에일리를 깨웁니다. 젖소의 피를 빼던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고는 누나와 함께 조심스레 똑같이 해봅니다. 다행이 젖소의 동맥을 다치게 하지 않고 어느 정도의 피를 구한 마이클은 지혈을 잘해준 후 젖소를 목동이 있는 방향으로 보내줍니다.
세 아이들, 식민지 폭동을 경험하다
세 아이들은 발리커베리 항구에 도착했을 때 광장에서 발생한 소동을 목격하게 됩니다. 물자가 그리 부족해 보이지 않는 항구 도시 풍경 사이로 여러 대의 수레들이 무거운 곡식 자루들을 싣고 항구 쪽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그 뒤를 사람들과 거지들이 따르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따라 숨을 몰아쉬며 아이들이 도착한 항구에는 두 척의 배와 커다란 창고, 커다란 통들을 굴리고, 수레에서 곡식들을 내리고 배에 싣는 인부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술렁이기 시작하고,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만 같은 분위기.
이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대화글만 인용해보겠습니다.
“그 곡식들을 어디로 가져가는 거요?”
“영국이요.”
“당신들은 장님이요? 여기 굶어 죽어 가는 동포들이 안 보입니까.”
“우린 굶주리고 있어요. 동포들이 굶고 있다고요.”
“동포들이 굶고 있다!”
“흩어지시오. 문제를 일으키지 말란 말이오. 이 곡식들은 돈을 받고 파는 것이오.”
“우린 아일랜드 사람들이오. 그런데 우리의 식량이 외국으로 나가고 있소 아일랜드 땅에서 기른 곡식으로 영국인들의 배를 채우다니, 그 동안 우리 동포들은 배를 곯며 굶어 죽어 가고 있단 말이오.”
“이젠 더 이상 참을 수 없소.”
앞으로 나서던 남자를 군인이 쳐서 땅에 쓰러뜨리고, 모여든 사람들처럼 에일리도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면서 움찍하던 그 순간, 깡마른 청년들이 수레 위로 뛰어올라 칼로 자루들을 자릅니다. 길바닥으로 곡식들이 쏟아져 내리고, 군인들은 몰려든 사람들을 곤봉으로 후려치면서 폭력적으로 진압합니다. 세 남매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 정신없이 곡식을 호주머니와 자루 속에 담고는 줄행랑을 칩니다.
수백 년 동안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아 오던 아일랜드인들은 1845년 독립운동을 벌입니다. 이걸 고려해 보면, 위에서 군인들 앞으로 나서던 남자와 청년들은 독립운동단체에 소속된 사람들일 수도 있겠습니다. 작품은 세 아이들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을 깊이 다루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아주 짧은 분량일지라도 오랜 시간 동안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아 왔던 아일랜드인들의 감정과 민족의식, 독립에 대한 열망과 의지와 실천들을 확인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성숙의 시간들
길을 가다 잠시 멈춘 곳에서 아이들은 감자 썩은 냄새보다 더 심한 냄새를 경험합니다. 그것이 죽은 사람에게서 나는 냄새라는 걸 알게 된 아이들은 구토하며 힘들어 하면서도 죽은 사람을 위해 십자가를 만들고 기도를 해 줍니다.
죽은 사람을 위해 기도한 후 길을 가다 잠시 쉴 때 아이들은 깊은 슬픔과 절망에 빠지게 됩니다. 자신들도 다른 사람들처럼 모르는 곳에서 죽게 될 거라는 두려움에 서로 껴안은 채 울기 시작합니다.
형들과 어울려 하키를 하고 싶었다는 마이클, 레이스 달린 예쁜 드레스와 머리핀을 갖고 싶었던, 그래서 어른이 되면 엄마처럼 결혼하고 아기도 낳고 싶었다는 에일리, 인형을 갖고 싶고, 학교에도 가면서 에일리 언니처럼 되고 싶었다는 페기.
그렇게 서로 부둥켜안고 가득한 슬픔으로 가슴이 터질 것만 같던 그때, 아이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기 시작합니다. 헝클어진 머리에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서로의 얼굴을 보니 절로 웃음이 났던 거지요. 그때 에일리가 동생들을 이끕니다. ‘살아 있음의 위대함’을 깨달은 에일리의 말을 인용해보겠습니다.
“우린 정말 바보들이야.” / “이렇게 살아 있잖아. 지치고 배고프고 엄마와 아빠도 안 계시지만 우리에겐 서로가 있어. 아직까지는 걸을 힘도 있고, 먹을 것을 찾으러 다닐 수도 있어. 우린 반드시 나노와 레나 할머니에게 갈 거야. 몇 달이 걸리더라도.”
페기가 열병으로 쓰러졌을 때 에일리는 페기를 돌보고 마이클이 사람들을 불러 오려 길을 나서게 된다고 했었지요. 누이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까, 도무지 알 수 없었지만, 그리고 혼자 가야 한다는 사실에 두렵고 낯설었지만, 9살 마이클은 길을 떠납니다.
한 시간 반쯤 걸어 다 쓰러져가는 오두막을 발견하고 숨어 있던 노인에게서 한참을 가면 있는 오리어리 방앗간이 수용소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두어 번 현기증을 느끼면서도 쉬지 않고 걷던 마이클이 마침내 오래된 방앗간 수용소에 도착합니다.
하지만 마이클은 수용소의 처참한 광경에 눈을 감아버립니다. 수많은 사람이 길거리에서 잠을 자며 수용소에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지만, 수용소 안에는 병자들의 역한 냄새와 신음소리, 울음소리가 가득합니다. 사람이 죽어야 자리가 나고, 먹을 것도 나눠 줄 수 없는 상황. 지금까지 겪은 경험들 또한 어린 마이클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찼는데, 이곳의 경험은 이전과는 전혀 새로운 깨달음을 줍니다.
“마이클은 뛰기 시작했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도 모르게 마구 달렸다. 마이클은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가슴 한 구석이 아파 왔다. 심장이 둘로 쪼개지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마이클은 자신의 어린 시절이 끝났음을 깨달았다. 마이클은 느릿느릿 걸음을 늦추며 생각했다. 그의 앞에 길고도 참담한 여정이 남아 있었다. 신은 없다. 만약에 있다면 그는 너무 잔인했다.”
산사나무 사이로 부는 바람
세 남매는 드디어 캐슬태거트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런데 빵과 케이크 등이 화려하게 전시되어 있는 가게들과 달리 이모 할머니들의 가게 안은 선반이 비어 있고, 썰렁합니다. 허리가 구부정한 늙은 부인이 느릿느릿 움직여 아이들 앞으로 나왔을 때 에일리가 “레나 할머니”를 부릅니다. 아이들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늙은 부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목숨을 부지하기에는 너무도 힘든 시기”였으니까요.
그 후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작품의 결말 또한 감동의 시간입니다. 직접 경험하기를 권합니다.
‘산사나무’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전통적으로 유럽에서 산사나무는 천둥이 칠 때 생겨 벼락을 막아준다는 전설 때문에 ‘울타리’로 많이 쓰인다고 합니다. 기독교에서는 예수의 관과 곽, 지팡이가 산사나무로 만들어졌기에 ‘성수’로 여긴다고 합니다. 동그랗고 붉은 열매를 맺는 산사나무는 5월에 하얀 꽃을 피우는데 꽃말은 ‘유일한 사랑’입니다(산사나무, 나무위키). 예수와 붉은 색, 하얀 색, 사랑이 자연스레 연결되며 고개가 절로 끄덕여집니다.
작품에서는 ‘고향’, ‘고국 아일랜드’를 의미하겠지요. 작품에서 산사나무는 처음과 중간, 끝, 세 번 나옵니다. 작품 초반 아기 브리짓이 죽었을 때 산사나무 아래에 묻습니다. 중반에서 페기가 열병으로 생사를 오갈 때, 산사나무 아래에서 치유의 시간을 갖습니다. 여정의 끝에서 나노, 레나 이모 할머니 집에 도착해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도 에일리는 고향의 오두막집 뒤뜰에 있는 산사나무를 회상합니다.
각각 죽음 이후 안식의 장소로, 병이 났을 때 치유의 공간으로, 결국에는 돌아가야 할 그리움의 터전으로 여겨집니다.
태어나서 자라고 성장하면서 상처와 위기의 순간 따뜻한 보살핌으로 극복하다 죽음을 맞이 하는 장소를 보통 ‘고향’으로 부릅니다. 고향을 떠나 타지를 떠돌아도 항상 돌아가고 싶은 곳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곳으로 여겨지는 곳이 바로 ‘고향’입니다.
에일리가 고향과 오두막집에서의 생활을 회상할 때, 그곳은 굶주림과 질병이 없고, 웃음과 위로, 평안, 여유, 행복함이 있었습니다. 물론, 회상에서 떠올리며 감동에 젖곤 했던 고향은 감자대기근이 발생하기 이전의 고향 풍경입니다. 고향을 좀더 확장해 보면, ‘고국 아일랜드’로 이해해도 되겠지요. 아메리카로 이주한 100만 명이 넘는 아일랜드인들과 그 후손들에게 고향은 곧, ‘고국’이니까요.
바람이 산사나무 사이로만 부는 건 아닐 거고, 산들바람만 있는 것도 아니겠지요. 생사의 갈림길을 걸었던 세 남매 또한 이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닐 겁니다. 당연히 우리 또한 세 남매처럼 하루하루 힘든 현실을 살아갈 때 서로의 위로와 격려가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산사나무 아래에 머물게 된 ‘에바’ 또한 ‘에일리’와 ‘마이클’, ‘페기’를 만날 수도 있겠지요. 그러한 만남의 시간은 위로와 격려가 시대와 역사를 뛰어넘는다는 걸, 그리고 서로에 대한 지지와 연대가 삶을 살아가게 하는 힘을 준다는 걸 확인하고 깨닫게 하는 시간이 되겠지요.
백청일(논술학원장)
■ 참고문헌
산사나무 아래에서, 마리타 콘론 맥케너, 도서출판 산하.
록밴드 U2,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서 ‘깜짝 공연’, 경향신문, 2022. 5. 9.
벨파스트 협정, 나무위키.
산사나무, 나무위키.
아일랜드, 위키백과.
아일랜드 대기근, 위키백과.
아일랜드 역사, 위키백과.
아일랜드 역사와 문화, 네이버 지식백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