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책방 작은책들]‘고양이인 척 호랑이’ 버드폴더
작년 5월, ‘첫사랑’(2019, 움직씨)이라는 그림책을 통해 사랑하는 퀴어, 차별금지법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것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항상 나의 일부로서 마음속에 자리매김 하고 있는 주제였다. 23년이 돌아오고, 6월에 두 번의 글을 기고할 기회가 생기면서, 꼭 말하고 싶은 주제가 둘 있었다. ‘나의 삶에 중요한’ 것을 말하고 싶었다. 호국보훈의 달, 그리고 자긍심의 달.
6월은 전세계가 Queer Pride Month로서 축하하고 기념하는 달이다. 6월이 되면 퀴어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말하고, 말해지지 못하던 것들을 조명하고 기억한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지만 6월엔 괜히 어깨를 펴게 되고, 괜히 한 번 더 웃게 되고, 괜히 더 떳떳해지게 된다. 한 달 정도는 보이지 않는 울타리가 넓어진 기분을 느끼게 된다.
버드폴더 작가의 ‘고양이인 척 호랑이’(2015, 다산북스)는 자신이 호랑이인 줄 아는 고양이와 고양이인 척 하는 호랑이가 자신의 울타리를 찾는 이야기다. ‘퀴어’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는 한 번도 나오지 않으나, 내가 아닌 것을 나로 생각하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가 주요 골자다.
어릴 적 할머니에게 거두어져 살아온 호랑이는 내도록 자신이 고양이인줄로만 알았다. 무언가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송곳니와 몸집, 울음소리를 알아챈 뒤에도 그는 고양이로 살고 싶었다. 그래서 실제로 그렇게 했다. 울음소리를 바꾸고, 몸집이 크지 않게 하기 위해 채소를 먹었다. 그렇게 ‘조금 특이한 고양이’로 받아들여진 삶을 살았다.
고양이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에게 난 무늬 때문에 자신이 호랑이인줄로만 알았다. 그의 세계에서 그는 호랑이가 맞다. 하지만 남들은 그를 고양이로 본다.
고양이와 호랑이는 각자 세상과 일치하지 않은 채로 살아가다 서로를 만난다. 그리고는 자신 아닌 다른 존재와 최초로 이러한 불안과 두려움을 나눈다.
얼큰하고 즐거운 대화가 이어지던 중
고양이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어요.
“이건 비밀인데……”
나 실은 호랑이가 아닐지도 몰라. 키가 더 안 커.
이도 작고…… 턱도 약해.
그저 내가 조금 큰 고양이일까봐 무서워……
고양이가 엉엉 울자 호랑이도 마음이 아팠어요.
‘고양이인 척 호랑이’ 중에서.
호랑이는 고양이의 불안을 이해했다. 그래서 둘은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가르쳐주고, 이야기를 나누고, 친구가 된다. 고양이가 조금 더 편해질 수 있는, 호랑이가 좀 더 편해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며 ‘연대’한다.
서커스단에 잡혀가 문제가 생길 때도 마찬가지다. 고양이와 호랑이가 가장 힘이 나고 무언가를 헤쳐나갈 수 있을 때는 ‘나’를 알아주는 상대가 있을 때다. 유명한 시인 김춘수의 ‘꽃’처럼,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 그 자신이 된다. 제대로 된 이름을 불린 자는 세상과는 불화할지언정 스스로와 불화하지 않을 수 있다.
마지막 장에서는 호랑이의 할머니가 돌아가신다. 슬퍼하는 호랑이 곁을 지키며 고양이는 점점 늠름하게, 굵직하게 변해갔다. “지금은/누가 커다란 고양이인지/누가 조그만 호랑이인지/아무도 모르”게 되었다. 고양이와 호랑이는 그러한 상황에 행복하다. 평온하다. 그리고, 그러한 평온을 적당히 자랑스러워 할 것이다.
퀴어 정체성은 어떤 틀에 들어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세상 모든 사람은 다른데, 대체 어떤 틀을 벗어났기에 다들 이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느냐의 문제다. 그들이 세상과 어떻게 불합하고 또 저항하면서 힘겨워하는지를 들여다보면 세상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면 이제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다. 그게 그렇게 큰 문제일까?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퀴어라 함은 많은 사람에게 익숙한 정상성의 틀을 좀 벗어난 것뿐이다. 이 틀이 무너지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에 눈 앞에서 치워버리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틀은 유연할수록 많은 사람을 포용할 수 있고,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고, 더 많은 자긍심과 행복을 담을 수 있다.
나의 존재를 잘못이고 오류라고 여길 때 사람의 마음은 조용히 삭아 없어진다. 고양이인 줄 안 호랑이와 호랑이인줄 안 호랑이가 자꾸만 움츠러든 것은 나의 삶이 착각이면 어떡하냐는 불안에서였다. 그들처럼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불안을 공감하고, 함께 살아가면 아무 문제 없을텐데 너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삭아버리고 있다.
자긍심의 달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틀 없음에, 계속해서 생각함에, 질문을 던지고 고심함에 자긍심을 느끼는 달이 되었으면 한다. 호랑이와 고양이의 일상처럼, 우리들의 일상도 그저 당연하기를.
문의 062-954-9420.
호수 (동네책방 ‘숨’ 책방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