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더라”

동족 상존의 비극인 6·25 전쟁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이런 말을 해도 수긍을 하겠지만 그런 세대도 아니면서 이런 표현을 한다면 뭐라고 할까?

저녁 여덟 시가 넘어서 퇴근했다가 한 시간 반 만에 다시 사무실에 나왔다. 장대 같은 빗줄기 속에 마을로 나가면서 드는 생각은 달밤에 집 앞에 있는 공원에 나와서 체조하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지난달 27일 저녁 식사 시간 무렵부터 불과 서너 시간 사이에 쏟아진 강우량이 150mm라는 것이다. 그래, 이런 경우를 때아닌 난리에 비유를 하나 보다.

수일이 지났기에 하는 말이지만, 그날 밤부터 다음날 동이 트기 전까지는 솔직히 무서웠다. 강풍에 천둥·번개 속에 퍼붓는 빗줄기는 한 치 앞을 분간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앞이 보여야 감(感)이라도 잡고, 어디까지가 논이고, 어디까지가 밭인지를 알 수 있을 텐데! 하기야 1000억 원대 슈퍼컴퓨터도 예측 못한 국지성 호우였으니 말을 해서 무엇을 하겠는가?

6월 초부터 작동이 매끄럽지 못한 방조제의 수문으로 골머리가 아팠는데, 결국 오밤중에 비바람을 맞으며 네다섯 시간을 떨게 했다. 그리고 다시 사무실에 돌아왔다. 다음날 날이 밝으면 현장을 누벼야 하기에 읍내(집)까지 나오는 것을 포기했다.

‘먹는 것은 아무 데서나 먹어도 잠은 집에서 자라’는 말이 있다. 젊었을 때는 사무실 소파 쪽잠을 밥 먹듯 했어도 다음날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나이(?)를 먹어 가는지 다음 날 하루를 버틴다는 것이 어렵게 느껴졌다.

전날 내린 비와 간밤에 내린 강우량을 합치니 175mm라는 것이다.

우리 지역(현경)이 이렇게 최고(?)일 때도 있구나! 덕분에 오전 내내 비 맞은 수탉 꼴로 피해 신고가 들어온 마을들과 들판을 헤집고 다녔다.

고구마밭과 제초제를 쳐서 논 밭둑을 없애버린 곳들이 문제더라는 것이다. 물론, 고구마라는 특정 작목을 한정하여 얘기한다는 것이 모순일 수 있다. 하지만, 토사 유입으로 말썽이 생긴 곳을 찾아가 보면 위쪽에는 으레 고구마밭이다.

물 빠짐을 좋게 하려고 그랬는지! 작업을 수월하게 하려고 그랬는지! 경사진 밭을 위에서 아래쪽으로 둑을 짓고 비닐 피복 후 고구마 순을 꽂다 보니, 집중호우 시 빗물이 토양에 스며들기도 전에 황토와 마사토를 아래쪽으로 흘러 보내는 것이다.

토사가 흘러들어 붉게 변한 곳 전체가 다 그렇고, 고구마 재배 농가들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또, 남이야 어찌 되든지! 내가 상관할 바 아니고 나만 살고 보겠다는 것도 분명 아닐 것이다.

혼자 사시는 어르신네 집을 뒤편 고구마밭에서 밀려온 토사가 중간에 있는 콩밭을 덮치고 가옥의 담벼락을 밀고 있는 것이다. 금방이라도 덮칠 것만 같다.

순간 고향집에 혼자 계시는 우리 어머님을 보는 것 같아 ‘응급 복구’라도 먼저 해드려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옆에 있는 직원은 “아스팔트 도로에 흘러내린 토사보다 여기가 급한 것 같습니다. 당장 (중)장비를 들이대야겠습니다”라고 말한다.

인지상정이라는 말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인지 싶다. 다들 생각이 있고 감정이 있기에 눈앞에 보이는 현상을 보고 느끼는 것이 똑같으니 말이다.

17년 전, 평직원 때 이곳에 와서 집중호우 뒤끝에 사무실을 찾아와 하소연하는 어르신의 목소리를 쫓아 가보면 제초제를 쳐서 논 밭둑을 없애버린 농경지에서 흘러내린 토사가 아래쪽에 있는 농경지를 덮친 것이 대부분이었다.

또, 고구마밭의 둑을 수평이 아닌 수직으로 만들어 달라는 부탁도 그때 했었다. 그것이 어렵다면 최소한 아래쪽 한두 둑 정도는 수평으로 만들어 달라는 주문을 했었는데, 17년이 지난 지금도 그런 얘기를 해야 하는 현실이라니!

그래, 때론 제재(制裁)도 필요하겠지! 제초제를 쳐서 논 밭둑을 없앤 곳과 토사유출에 대한 대비책 없이 쉬운 농사만을 고집하는 부류들이 있다면 군민 혈세를 관리하는 사람으로서 고민도 해야겠지!

장마와의 싸움은 현재 진행형이지만, 참으로 길고도 힘들었던 6월이었다.

이재광 시민기자 (무안군 현경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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