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년 벽두부터 안철수의 국민의당이 호남에서 심상치 않은 바람을 일으켰다.
광주·전남 민주당 의원들이 너도나도 신당으로 달려가던 어느 날, 신문에 이개호 의원 관련 기사가 떴다.
“탈당설이 나왔던 이 의원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을 국부로 호칭하는 안철수 신당 측 발언에 분노를 느끼며 함께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사실상 잔류선언으로 해석된다.”
그날 지역구에 머물던 이 이원은 ‘탈당해서 같이 살길을 찾자’며 격렬히 항의하는 열혈 당원들을 피해 부인과 함께 모처로 피신해야 했다.
사실 그때까지도 이 의원의 고민은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다. 왜 아니겠는가. 자고 나면 생각이 바뀌는 정치적 격변기였는데….
이 의원은 그때까지 국회 기자회견장을 두 번이나 예약했다 취소하기도 했다. 탈당 기자회견이었다.
“여보, 김 기자가 당을 지킨다고 기사를 써버렸는데 이제와서 탈당을 하면 세상이 당신을 어떻게 보겠어요.”
이 의원이 민주당 잔류가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 투표일이 다가오면서 광주에서 시작된 국민의당 태풍은 전남·전역으로 확산됐다.
하루 전 ‘최후의 격전지’라는 영광지역 취재를 하다 이 의원 선거사무실을 찾았다. 분위기가 침울했다. 아슬아슬하게 리드하던 판세가 2~3일 전부터 뒤집혔다는 것이다.
식당에서 캠프 사람들과 눈칫밥을 먹고 있는데 침묵하던 이 의원의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자네 때문에 말이야… 응? 다들 이게 무슨 고생인가?”
개표 당일, 예상대로 광주·전남은 모두 국민의당 후보가 당선됐다. 딱 두 곳, 이 의원과 순천의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만 빼고.
출구조사마저 패배한 것으로 나왔던 이개호 의원은 국민의당 바람이 본격적으로 불기 전 투표를 마친 부재자 투표함이 열리면서 기적적으로 신승했다.
다음 날 이 의원은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민주당 당선자 대회에서 마이크를 잡고 눈물을 쏟았다.
“동지들을 모두 잃고 저만 이렇게 살아 돌아와 죄송합니다.”
# 36년간 지속된 ‘87년 체제’가 흔들리면서 정치권이 요동치고 있다. 벌써 내구연한이 지났는데 6월항쟁의 역사성 때문에 오래 버텼다고 봐야 한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이미 ‘윤석열 후보-이준석 대표’라는 초유의 실험을 거친 바 있다. ‘탄핵’이라는 핵폭탄을 얻어맞고 살기 위해 발버둥 친 결과다.
이제 야당 차례.
지금부터 내년 총선과 다음 대선을 거치는 동안 엄청난 소용돌이가 예상된다.
민주당의 뿌리인 호남 유권자들도 암중모색에 돌입했다. 당 지지율의 추세적 하락은 그 전조로 해석된다.
이제 광주.전남 정치인들은 나침판도 정답도 없는 미로 속으로 진입하게 될 것이다.
돌아보면 ‘대세’라는 것도 허망하다.
6년 만에 언론계로 복귀, 국회를 둘러보니 2016년 20대 총선에서 당선된 광주·전남 국민의당 의원들이 한 분도 안 보인다.
민주당에 남았던 네 명의 현역 중 이개호 의원은 중진이 됐고 김영록 의원은 전남지사로 활동 중이다.
정치적 변동기엔 눈치 보지 말고 대한민국과 호남의 미래에 대한 본인의 ‘경세방략’대로 방향을 잡는 게 정답인 것 같다. 그래야 만에 하나 실패하더라도 자존심과 명분이 남는다. 물론 재기의 발판이기도 하다.
소신 대신 대세만 따라가다 미아가 된 몇몇 정치인들의 회한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 민주당에도 이른바 ‘대세’가 있다면 그 흐름 역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서울본부장 겸 선임기자 kdw34000@gjdrea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