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유진 무대읽기]연극 ‘흉터’
낡고 흉흉한 분위기, 주인공 내면 공간이자 흉터

연극 흉터.
연극 흉터.

 2023년 6월 22일부터 유스퀘어 문화관 ‘동산 아트홀’에서는 ‘공포 심리 미스터리 연극’, ‘흉터’가 상연 중이다. ‘흉터’라 하면 상처가 아문 후에도 남은 자국을 일컫는다. 어떤 상처가 있었길래 자국이 남아 있는지가 관극 포인트였다. 또 ‘공포 연극’이라 하니 대체 얼마나 무서울지도 자못 궁금했다.

 극장 문을 열고 들어서면 폐가의 느낌이 나는 무대 세트가 관객을 맞는다. 먼지 가득한 문은 여기저기 부서져 있고, 오른편에는 더러운 싱크대가 있다. 가운데는 제 기능을 할지 의심스러운 벽난로가 있고, 왼쪽에는 역시 더럽고 낡은 안락의자가 있다. 세트 옆과 위는 한때 건물을 든든하게 받쳤을 널빤지가 그대로 드러나 얼기설기 뻗쳐 있다. 널빤지 주변으로는 식물이 덩굴을 타고 올라가 있지만 말라 죽은 상태다.

 이 무대 세트는 연극 <흉터>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이 더럽고, 오래되어 낡아서 흉흉한 분위기의 방은 바로 주인공의 내면의 공간이고 흉터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벽난로에서 나오는 정체 모를 손과 붉은색 창문으로 방안을 보려고 시도하는 얼굴(윤곽만 나오는 것이 더 무섭다), 별 물리적 자극이 없이도 벽에서 툭툭 떨어지는 물건들은 이제 더는 스스로 자신을 통제할 길이 없이 무너져내린 주인공의 무의식이자 공포 그 자체다.

 ‘흉터’에 나오는 인물은 총 세 명이다. 대학교 등산 동아리 멤버였던 재용과 동훈 그리고 지은이다. 재용은 소심한 성격으로 갈등 상황에서 항상 한발 물러서며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려고 애쓰는 인물이다. 본인의 욕망이나 욕구를 표현하는 데 서툴고 그래서 찌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동훈은 성공을 삶의 최대 목표로 여기는 의사다. 지은과 사귀는 사이이지만 지은이가 임신을 하면서부터 갈등이 있다. 지은이는 미술학원 원장이다. 동훈을 사랑하고 동훈의 아이를 지우지 않겠다는 강단을 지닌 여자다. 하지만 재용과 의미 없는 하룻밤을 지낸 적이 있고 그 일로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극은 재용과 동훈이 8년 전 지은과 올랐던 산을 다시 찾으면서 시작한다. 8년 전 지은이는 둘과 함께 등산하다가 사고사를 당했다. 재용과 동훈은 친구가 죽은 산을 왜 다시 찾은 것일까? 재용은 왜 유독 특정한 삼나무 한 그루를 찾는 것일까? 극 초반에는 이 질문을 길잡이로 연극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극이 끝나면, 관객은 삼나무의 의미와 두 사람이 지은이가 죽은 산을 다시 찾은 이유도 알게 된다.

 지은이의 죽음에 얽힌 사연은 일면 그럴듯해 보이지만, 관객에게 공포를 주어야 한다는 작가의 강박관념에 여성 캐릭터가 소비된 것은 아닌가 싶은 마음도 든다. 지은이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사람이 가지는 죄책감(흉터)을 위해서 너무 작위적인 서사를 만든 것은 아닌가 싶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사건의 인과성을 잘 짜 맞추어 서사를 쌓았다. 또 마지막 반전을 위해 달려가는 연출의 힘도 나쁘지 않았다. 사람을 해하는 일이 주는 공포를 보여주기 위해 연출은 조명과 음향, 무서운 장면(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여배우가 어둠 속에 서 있다거나) 등을 최대한 이용한다.

 그렇지만 ‘흉터’의 일등 공신은 재용 역의 배우라고 할 수 있다. 재용 역을 맡은 배우는 주기적으로 심리치료를 받아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연극이 끝나면 든다. 성격 변화가 심하고 그에 맞춰 행동에도 디테일한 요소가 많이 들어가는 어려운 역할인데 그만큼 열정적으로 연기한다.

 ‘흉터’는 공포를 내세워 관객에게 주제를 심어주려는 의도가 강해서 아주 무서운 연극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교훈극’ 느낌이었다. 하지만 사실 국가 질서나 법, 규율을 강조하는 기능이 공포물에 있다는 점에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할 수 있겠다. 사람을 죽이는 일이 사람에게 얼마나 크고 무서운 흉터가 되는지를 똑똑히 보여주니까 말이다. 연극 ‘흉터’는 7월 23일까지 공연된다.

 임유진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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