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유진 무대읽기]연극 ‘화평 시장’
‘제4의 벽’을 허무는 특별한 공연
7월 18일부터 22일까지 예술극장 통에서는 ‘화평시장 CCTV’(선욱현 작, 오설균 연출)가 무대에 올랐다. 관객과 무대 사이가 아주 가까운 소극장이어도 무대와 관객 사이에는 늘 ‘제4의 벽’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극단 청춘은 처음부터 작정하고 이 ‘제4의 벽’을 허물어버리는 특별한 공연을 기획했다.
관객은 매표소를 겸하는 극장 로비에서 작은 손수레에 차와 커피를 싣고 다니면서 파는 뽀글이 정을 만나게 된다. 번쩍거리는 의상에 광대 분장을 한 사내(뽀글이 정)가 장년층의 향수를 자극하는 음악에 맞추어 탬버린을 요란하게 흔들면서 관객을 맞는다. 이때부터 벌써 흥성거리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관객은 연극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을 가진다. 그러니까 연극은 관객들이 극장이 있는 건물에 들어서면서부터 이미 시작된다고 봐야 한다.
공연 시간이 임박하여 무대가 있는 공간으로 들어가면 관객석을 제외한 무대 대부분이 재래시장 한 부분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세트로 구성되어 있다. 주축이 되는 것은 무대 왼쪽을 넓게 차지하고 있는 화평분식집인데 이 식당은 성업 중이다. 배우들은 관객에게 주문을 받고 있고, 분식집 주방에서는 연신 순대를 썰고, 어묵을 끓이면서 약간은 어리둥절한 상태로 음식을 주문하는 관객에게 떡볶이와 순대, 어묵을 나른다. 심지어 술도 준다. 진짜 술이다.
연극을 보러 가면 늘 듣는 공지사항이 있다. 핸드폰을 꺼라, 음식물을 섭취하지 마라, 공연 도중 화장실에 갈 수 없다 등이다. ‘화평시장 CCTV’ 공연에서는 이 세 가지가 다 허용된다. 관객은 공연 중에 음식물을 먹을 수 있고, 화장실도 갈 수 있으며, 핸드폰을 꺼내어 무대를 촬영하고 그 사진을 개인 SNS에 올릴 수 있다. 관객은 새롭고 야릇한 열기에 휩싸인다. 지금까지 일상적으로 봐왔던 ‘연극 무대’ 혹은 ‘공연’이 아닌 전혀 다른 형식의 공연이 관객을 그렇게 만든다.
그렇게 관객은 소주에 순대를 씹으면서 떡볶이에 어묵 국물을 곁들여 먹으면서 화평시장을 들여다본다. ‘CCTV’를 통해 보듯이 그 시간에 벌어지는 일이 여과 없이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술값을 서로 내겠다고 싸우는 사람들과 시장의 발전을 위해 하려는 일이 진짜로 시장과 시장 상인을 위한 것인지를 두고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 외국인 아내를 학대하는 나쁜 한국 남편이 있고, 서로 보듬으며 위로와 공감을 나누는 다른 외국인 노동자들이 있다.
웃음과 눈물과 분노와 다툼이 그리고 사랑이 화평시장을, 무대와 관객석을 질펀하게 흐른다. 난장(亂場)이다. ‘제4의 벽’은 이 순간에 스스로 형성된다. 보통의 경우라면 허용되지 않는 규칙들이 다 허물어졌다지만, 이 난장을 대하는 관객들은 저도 모르게 어느새 관찰자의 시선을 가지게 된다. 생리적 욕구를 느끼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참는 것인지는 몰라도 공연 중에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관객은 없다. 관객은 씹던 순대와 어묵을 질겅거리는 것도 멈춘다. 뽀글이 정이 등장하여 핸드폰을 꺼내어 촬영을 하라고 독려하기 전까지는 자발적으로 핸드폰을 사용하는 사람도 없다. 오히려 관객은 숨죽여 무대에 집중한다. 화평시장을 보여주는 (CCTV의) 영상에 집중한다.
새로운 형식의 연극을 준비하면서 극단이 애초 바랐던 것이 이 집중이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관객은 집중했고 그 순간만큼은 여전히 ‘제4의 벽’이 무대와 관객 사이에 있었다. 그래도 연극은 연극이기 때문일까?
난장을 펼칠 수 있는 것은 무대에 있는 사람들이고, 그것을 보는 사람들까지 난장을 펼친다면 연극이라는 것 자체가 이루어질 수 없기에?
공연이 끝나면 관객은 나가면서 로비에 마련된 모금함에 음식값을 집어넣는다. 정해진 금액은 없다. 아마도 관객들은 연극을 즐긴 만큼, 신선한 공연에 취해 거나해진 기분만큼 돈을 넣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 금액은 좀 더 다른 연극을 만들기 위해 힘을 기울였던 극단과 배우들을 기쁘게 하는 수준이지 않았을까 싶다. 즐겁고 또 따뜻한 시간이었다. 화평시장에서 보낸 잠깐의 그 시간이 말이다.
임유진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
